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내일은 크메르 새해, *쫄츠남(Choul Chnam Thmey)*의 첫날이다. 이번이 벌써 나의 네 번째 새해. 한국에서 신정, 구정, 선생님들의 새해를 지나, 이젠 캄보디아에서 또 하나의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현지인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 걸까. 무슨 마음으로 새해를 준비하고 있을까?
"근처 사원 갈래? 분위기 좀 살펴보자."
나의 제안에 H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크메르 새해는 캄보디아에서 음력으로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사람들은 말끔한 흰옷을 차려입고 사원을 찾고,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며, 집과 마을을 쓸고 닦고 전통 장식으로 단장한다. 모래탑을 쌓고, 볏짚으로 만든 장식품을 매달고, 커다란 음식상을 차리며 정성껏 새해를 준비한다.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의 평안을 빌며 축복을 나눈다. 이 모든 게, 새로운 해를 정결하게 맞이하려는 마음의 몸짓 같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거의 한 달 내내 한 방울도 내리지 않던 비가, 크메르 새해를 하루 앞둔 밤에 천둥번개와 함께 폭포처럼 쏟아졌다. 마치 이 땅을, 그리고 나를 정화하듯이.
사실 지난 몇 해 동안 내 마음속에는 짙은 구름이 하나 있었다. 명상도 해보고, 민간요법도 시도해 보고, 책 속 문장들에 매달려 보기도 했지만… 구름은 그저 옅어질 뿐,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푸른 하늘이 있었고, 마지막 구름 한 점만 사라지면 될 것 같았지만…..
그게 어려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난해 마지막 날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고 나와 거리를 걷던 중, 불현듯 마음속 기류가 달라졌다. 무겁고 어두운 것들이 스르르 걷히며, 나를 감싸는 공기가 가볍고 유쾌하게 바뀌었다.
동전이 뒤집히듯, 그렇게 갑자기 바뀌었다. 이유 없이 웃음이 나오고, 어깨가 가벼워졌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마음의 상태가 한순간에 내게 왔다.
그래.
앞으로는 나의 유쾌함과 천진함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지. 한국에서 새해를 맞으며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그리고 어젯밤엔, 그 폭우로 다시 한번 확실히 씻어냈다. 더는 나에게 없을 짙은 색의 구름들을.
사원 앞, 흰옷을 곱게 차려입은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손에는 4~5단의 도시락통이나 음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신발을 벗고 사원에 들어가, 스님 앞에 발이 보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앉아 조용히 순서를 기다린다. 스님께 공물을 바치고, 합장한 채 말씀을 듣는다. 그 눈빛엔 가족의 평안, 세상의 평화, 그리고 새해의 축복에 대한 간절함이 담겨 있다.
헌납한 음식들은 절 안의 식당으로 옮겨진다. 쌀밥은 밥통에, 커리는 커리통에, 디저트는 디저트통에. 정갈하고 넉넉하게.
그 광경을 보며, 나는 또 말도 안 되는 식탐이 도졌다.
“저 음식들… 다 어떻게 먹는 거야? 저걸 스님 한둘이 다 드신다고? 아니, 분명 공짜 점심이나 저녁을 줄 것 같아. 나... 초대받고 싶은 건 아닌데… 그냥… 너무 많잖아. 봐봐, 저 산더미 같은 디저트를!!”
H가 피식 웃는다.
“어이구, 하루 종일 도인님은 배고파요~ 음식을 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음식을 낭비하면 안 되잖아. 내가 좀 먹어줄 수 있다는 거지…”
다시 돌아보는 음식 산.
내 마음속 구름은 걷혔지만, ‘식탐’이라는 구름은 여전히 찰지게 나와 함께다.
나는 오늘도, 배가 고프다.
“커피나 마시러 가자. 오늘은 호텔도 옮겨야 하잖아.”
“흠… 그래도 저 음식들 좀 아깝긴 하다…”
뒤돌아서며 한 번 더 사원을 힐끔 바라본다.
어쩌면, 다음 해엔 나도 도시락통 하나쯤 들고 그 사원 안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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