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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May 11. 2024

김밥엔 라면이죠


아이 둘을 낳고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올해부터 큰맘 먹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병원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철근처럼 뭉쳐서 종종 두통을 유발하는 어깨 통증과 하루 종일 뻐근함이 지속되는 허리를 치료하기 위한 도수 치료다. 일주일에 한 번 치료받는 날은 힐링 중 최고봉에 속한다.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근육과 관절을 고려해 정확한 손놀림으로 뭉치고 눌린 부분을 풀어주면 그때만큼은 무거운 몸뚱이가 참새처럼 가벼워지는 듯하다. 한 번씩 몸을 반 접어 우두둑 소리를 내주면 헉소리 나게 아프면서도 기분 좋은 시원함에 중독된다. 몸의 조각들이 다시 맞춰지는 느낌을 받으며 치료를 끝내니 튼튼한 어른이 된 것 같다.


한껏 건강함을 되찾고 난 후 찾은 곳은 바로 분식집이다.  샐러드 같은 건강식을 먹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힐링의 완성은 분식이다. 시간 없을 땐 김밥만 후다닥 포장해 가지만 여유가 있는 날은 라면까지 시키는 호사를 부린다.  김밥과 라면을 두고 무엇을 먼저 먹을지 쓸데없지만 설레는 고민을 해본다. 나의 선택은 역시 라면이다. 분식집 라면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꼬들파(?)인 나는 소중한 라면이 불기 전에 사십살 넘도록 잘 못하는 젓가락질을 분주히 시작했다. 엑스자(X)로 겹쳐진 젓가락이 위태위태하게 라면을 국물에서 구해낸다.  후루룩. 옆 자리 손님에게 마음속의 양해를 구하고 면치기 시작했다. 아뿔싸. 오늘도 어김없이 옷에 주황빛 국물이 튀었다. 이러다 내 옷이 모두 도트 무늬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잠시 휴지로 대충 닦아 내고 한층 조신해진 자세로 라면에 집중했다. 이 집 라면 잘하네. 별거에 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딱 알맞은 농도의 짭짤한 국물에 포슬하게 익은 계란의 고소함이 한데 뭉개지며 면발과 함께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어 냈다. 만족한 얼굴로 꼬마 김밥을 집어 들었다. 빈약한 재료들로 최고의 맛을 내는 녀석. 한입 베어 물자 적당히 꼬들한 흰밥이 계란, 당근, 단무지 삼총사와 함께 라면의 자극적인 맛을 몰아내고 입안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꽃갈비살도 아닌데 씹을수록 고소한 매력적인 김밥으로 힐링의 정점을 찍었다.


역시 김밥엔 라면이다. 그 둘은 각자여도 훌륭하지만 함께 하면 매력이 더욱 차오른다. 김밥과 라면처럼 살아가고 싶다.  나 홀로도 충분히 세상에서 한몫을 해내는 사람. 혼밥도 즐기는 사람. 하지만, 짝꿍 같은 김밥과 라면처럼 누군가와 함께일 때 반짝이고 좋은 맛을 내는 사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휴대폰을 꺼내 다음 주 점심 약속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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