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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May 22. 2024

낚시와의 사랑과 전쟁

지난 주말에는 아들과 남편이 낚시터에 갔다. 부자(父子)가 낚시를 처음 시작한 건 2020년 코로나가 막 시작했을 때였다. 2학년이 된 아들이 갑자기 낚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대부도에 정착한 할아버지 영향이 컸다. 우리도 바닷가 근처에 살고 있지만 막상 바닷가에 가려면 차를 타고 가야 하고 딱히 갯벌이나 모래사장이 없기 때문에 바라만 봐야 했다. 친정집은 걸어서 2분이면 탁 트인 갯벌을 만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단독주택인 할아버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꽃게가 뛰노는 갯벌이 놀이터가 되며 자연스레 바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섬 오가는 길 방파제에 가로등처럼 줄지은 낚싯대들도 아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처음 시작은 분명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직 어려 미끼로 제대로 못 끼고 낚싯줄도 엉키기 일쑤여서 남편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첫 낚시는 집 근처 바다였다. 아저씨들이 밤에 삼삼 오오 모여 낚시하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인터넷에서 급히 구한 싸구려 낚싯대를 어깨에 메고 출발했다. 두어 시간 후 그들이 돌아왔다. 망둥어 한 양동이와 함께!!! 생애 첫 낚시에서 무언가 잡아 올렸다는 기쁨에 남편 어깨가 끝을 모르고 승천했다.


축하도 잠시, 망둥어들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먹보 출신답게 오래전부터 오징어 내장 분리하기, 생닭이나 꽃게 손질하기 등 나름 안 해본 건 없지만 그렇다고 그 일을 즐기거나 엄청 능숙한 것은 아니다. 망둥어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하고 물고기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다른 생물들에 비해 만지기 몹시 꺼려지는 비주얼이라 가까이하기 망설여졌다. 게다가 그들은 툭 튀어 난 온 눈알로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놓아주고 오지 왜 가지고 왔냐는 말에 남편은 망둥어 튀김을 해 먹으면 맛있다고 들었다 했다. 도대체 이런 말을 남편에게 해주신 당신은 누구신지요? 실체 없는 누군가를 원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장하게 말했다.

"집도를 시작하지."

드라마 하얀 거탑의 BGM이 절로 흘러나왔다.

‘뚠뚠뚜루루 뚠뚠뚜루루’

두려움을 노래로 덮어버리겠다는 의지로 우렁차게 부르며 칼을 쥐어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한 손으로 양동이 안에 있는 망둥어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첨벙, 철퍼덕'

나 같은 허술한 인간에게 잡힐 리 없는 망둥어들이었다. 역시 호락호락하지가 않군. 지금이라도 바다에 놓아주면 안 되냐고 눈빛을 발사했지만 남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힘이 넘치는 망둥어들에게 놀라 얼어붙은 나를 보다 못한 남편이 나섰다. 내가 기절시켜 줄게. 그의 등 뒤에서 천사의 빛이 비치는 듯했다. 사실 그 후는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필름이 끊긴 것처럼 새까맣게 지워진 십여분의 기억.  내 손으로 망둥어를 기름에 튀기고 있는 모습만 기억날 뿐이다.


하루는 낚시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인 남편이 친정집에 간 김에 근처 탄도항으로 원정을 나갔다. 반나 절 후, 승전보를 울리며 전어 떼를 잡아왔다. 사실 십여 마리뿐였지만 나에겐 떼거지나 다름없었다. 새까만 망둥어보단 은빛 비늘이 있어 사랑스러운(?) 비주얼이었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는 물고기 손질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친정아빠에게 물었다. 아빠가 전어 다 드실래요. 아빠는 어림도 없다는 목소리로 답했다.

"손질하기 구찮어. 너희가 가져가."

전어가 가득한 양동이를 트렁크에 비린내 풍기는 바닷물을 흘려가며 싣고 집으로 왔다.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이건만 우리 집 며느리는 집 나가게 생겼다. 남편의 손을 억지로 끌어다 평소 없는 강력한 손가락 스킨십을 시도했다. 새끼손가락 꼭 걸고 약속해~ 물고기 데려 오지 않겠다고~


그 후 길고 긴 코로나 시절을 지나오며 낚시는 그의 유일한 취미가 되었다. 낚싯대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당근소리가 수시로 울렸고 새로운 장비를 수줍게 들고 돌아왔다. 낚시 가게에서 다양한 채비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급기야 007 가방처럼 생긴 낚시 전용 가방이 생기더니 그물망이 생기고, 알 수 없는 도구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유료 낚시터는 비싸고, 고수들이 낚시하는 장소들은 좀처럼 손맛을 보기 어려워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낚싯대들이 외로이 방치되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절 불같이 타올랐던 낚시를 향한 열정의 불씨가 꺼져가고 있었다. 이제 그의 낚시 취미는 막을 내린 것인가. 낚시 도구들이 주인을 원망하며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창고의 반을 차지하고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 몇 주전 소문난 낚시꾼 지인이 새벽 낚시에 남편을 초대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낚싯대를 던져놓고 사람들과 수다 떨며 먹는 고기가 일품이었다고 침 튀기며 말하는 남편을 보며 곧 낚시를 가겠다 생각했다. 역시 예상처럼 다시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지난 주말 남편은 아들, 지인들과 함께 유료 낚시터를 오랜만에 찾았다. 가기 전날 집 곳간을 털어 라면, 햇반, 식기를 챙기는 그의 손이 춤추는 듯했다. 야심 차게 출발하였으나 불안하게도 하루 종일 연락이 없었다. 촉이 왔다. 못 잡았구나. 밤 9시가 넘어서야 아들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들, 물고기 잡았어?"

"응, 같이 간 사람들 다 잡았는데 아빠만 못 잡았어."


하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며칠 후, 낚시 장비가 창고 깊숙이 다시 들어가 있었다. 낚시를 향한 그의 사랑도 급랭하여 함께 처박혔다.


계속되는 그의 낚시와의 사랑과 전쟁. 몇 해 전부터 집에 어항을 들이고 싶다는 남편의 청을 이제는 못 이기는 척 들어줘야 할 때가 왔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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