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시간

by 익명의 에세이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자.

하나... 둘... 셋... 넷...


그런데 이러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아니야, 그래도 다시.

넷... 다섯... 여섯...


그런데 고양이들 물은 줬나?

이따 줘도 되겠지, 다시.

일곱... 여덟... 아홉...


오늘 무슨 일 해야 하지?

집에서 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열... 열하나...


그때 그 친구 아프다고 했는데

지금은 괜찮나? 다 나았을까?

보고 싶네.

열... 열하나... 열둘...


머릿속이 분주할수록 틀에 넣어진 듯 바른 자세로 앉아 있던

내 등은 점점 굽어지고, 왜소한 어깨는 앞으로 말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머리는 무거워진 것 같아 바닥으로 쳐졌다.

열하나... 열둘...

수많은 생각들이 채 읽히기도 전에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이제는 막을 수도 없어, 그대로 같이 무너질 일만 남았다.

기억 속에서 싫었던 것들, 잊고 싶었던 것들을 어쩔 도리 없이 마주하기로 했다.

열하나... 열둘... 열셋...


순간적으로 따끈하고 보드라운 것이 내 품 안으로 왈칵 쏟아졌다.

긴 꼬리를 잔뜩 말아 넣고, 머리부터 내 작은 몸 사이를 비집어 넓힌다.

작은 발끝에는 더 작은 발톱이 내 생살을 찢으려 했지만,

꾹 참고 자리를 다 잡기를 기다렸다.


고양이는 사람보다 심장 박동이 빨라 체온이 더 높다고 한다.

따끈한 솜뭉치가 마침내 턱을 괴었다는 것은, 이제 자리를 다 잡았다는 의미다.

이제 나는, 휘청이던 깃발에 무거운 돌을 얹어놓듯이

무너진 중심을 이 따끈한 솜뭉치가 잡아주고 있었다.


온 신경이 이 다정한 고양이를 느끼고 있으니,

이제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시 시작해 볼까?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자.

하나... 둘... 셋... 넷...

그런데, 숨은 쉬어졌는데... 너 좀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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