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해외여행에서 올린 결혼식

어쩌다 미국에 살게 된 한국 남자 (ep. 2)

나는 스물일곱 살이 돼서야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전까지 가까운 일본도 간 적이 없었고, 제주도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두 번 타 본 게 전부였다 —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과 회사에서 보낸 단합대회. 어릴 때는 형편이 어려워 못 가는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게 더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대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갈 수 있었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로도 며칠 휴가를 내서 갈 수 있었던 해외여행이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여유가 있지만 차로 한 시간 거리만 돼도 생각을 접는 나를 보면 그때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돈도 시간도 아닌 그냥 나의 성향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내가 생애 첫 해외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멀고도 먼 미국이었다. 사실 선택이라기보단 반드시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왜냐면 그건 나와 미국인 와이프의 결혼식을 위한 여행이었으니까. 결혼 후 놀러 가는 걸 신혼여행이라 하는데, 결혼을 위해 떠나는 여행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런 이름 모를 여행은 명확한 목적이 있었고 일정도 빡빡했다. 물론 내가 일정을 짜진 않았다. 한국이랑 비슷한 가까운 아시아권 나라도 아니고, 당시 내가 아는 것이라곤 뉴욕 정도뿐인 미국이었기 때문에 나보단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와이프가 여행 계획을 세우는 편이 나았다. 그렇다고 내가 여행을 많이 다녔던 것도 아니라서 비행기표 예매 같은 여행 전 필요한 준비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그저 내 몫의 비행기표 가격만 지불한 게 내가 기여한 전부였다.


결혼식을 위해 떠난 여행도 신혼여행이라 해야할까?

8월 둘째 주에 우리는 한국을 떠나 미국 서부의 엘에이에 도착했다. 와이프에게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엘에이를 가냐고 물어보니 내가 언젠가 엘에이에 코리아타운이 궁금하다고 말했던 적이 있더란다. 해외여행 첫날 가장 신기했던 건 날씨였다. 한 여름인데도 그늘에 앉으면 시원하다 못해 약간 서늘했고, 밤이면 춥기까지 해서 우리 둘 다 겉옷을 사야 했다. 그렇지만 한낮에 햇볕은 피부가 따가울 만큼 강렬해 맘껏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어차피 처음 경험하는 시차 때문에 낮에 피곤이 몰려와 관광도 힘들어서 나는 낮잠을 제안했고 와이프도 동의했다.


엘에이에서 이틀을 머문 뒤 다시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왜 샌프란시스코냐고 물으니 내가 실리콘밸리를 얘기한 적이 있어서라고, 와이프는 대답했다.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 참여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점점 이 여행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책임감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또한 햇볕이 좋았지만 기온은 이미 한국의 가을 같았다. 날씨야 엘에이에서 구매한 겉옷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이번엔 신발이 문제를 일으켜 신발을 사야만 했다. 해외여행을 나보단 많이 다녀본 와이프였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는 나와 별반 차이가 없음에 약간 안도할 수 있었다. 새 신발을 신고 이틀 동안 명소들을 구경한 뒤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위해 또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텍사스의 오스틴이란 도시에 와이프의 친척이 있었던 덕분에 우리는 일반 가정집에서 편히 사흘을 보낼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와 오스틴이 같은 나라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더웠지만 그 집엔 언제나 에어컨이 켜져 있어 지내기에 편했다. 우리의 방문 때문에 에어컨을 쉴 새 없이 켜 둔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켜 둔단 사실을 알게 되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외출 시에도 에어컨을 그냥 켜 뒀다. 길을 걸으면 사막에서나 보일 법한 관목들이 종종 보일 정도로 더운 지역이라 에어컨을 켜 두지 않으면 돌아왔을 때 집안이 덥다는 게 이유였다. 어쨌든 우리는 주로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다음 일정을 준비했다. 준비랄 거야 특별한 게 아니라 마음의 준비 정도였다. 텍사스의 친척은 거리감이 있는 친척일 뿐이고 이제 만나게 될 사람들은 와이프의 가족이었다.


몇 시간에 걸쳐 텍사스에서 뉴욕의 버팔로란 도시로 날아갔다. 공항엔 와이프를 키운 것과 다름없는 조부모님이 나와계셨다. 이전에 수차례 화상통화를 했지만 직접 보니 더 반가웠다. 워낙 연로한 분들이고 뉴스에 나오는 건 곧이곧대로 믿는 분들이라 걱정했던 부분이 있었다. 미국에서 영주권을 목적으로 결혼하는 외국인들이 많단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나 또한 이런 부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부모님은 날 보자마자 안아주셨다. 말 그대로 꼭 끌어안아서 난 당황하기까지 했다 — 난 지금까지도 미국식 포옹에 적응하지 못했다.


와이프의 고향집은 미국에서도 심각할 정도로 인구감소가 일어나고 있는 작은 동네였다. 밤이 되면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어두웠고 공기가 참 맑았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거의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그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할아버지께서 한국전쟁에 대해 많이 물어보셨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대답하려 노력했다. 그 사이 와이프는 결혼식 준비로 바빴다. 주로 차로 이동하며 물건을 받아오는 일이 많았는데, 한국에서조차 운전면허가 없던 나는 별 도움이 되질 않았다.


며칠이 지나 결혼식 당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업체에서 조부모님 집 마당에 세워둔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음식들도 속속 도착하며 여러 사람들이 장식품을 옮기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야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분이 느껴져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미 혼인신고를 한 뒤였던 터라 부부가 된다는 그런 긴장감은 아니었다. 한국인은커녕 아시인조차 보기 힘든 미국의 시골 어딘가에서 내가 주인공이란 게 큰 부담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워낙 내성적인 와이프 또한 나만큼 많이 긴장돼 보였다. 그렇게 우린 둘 다 결혼식 내내 덜덜 떨면서 빨리 이 뜻깊은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일주일 뒤 우리는 3주 동안의 여행을 마치며 결혼식을 올린 부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고, 내가 유부남이란 걸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됐단 사실 말곤 변한 건 없었다. 혼인신고만 한 상태로 같이 살고 있진 않았던 결혼식 이전엔 법적 혼인관계에 대해 굳이 떠들고 다니진 않았다. 그렇게 좀 더 형식적인 부부가 된 우리는 그 이후에도 해외여행을 했다. 직장 때문에 멀리는 못 가고 일본과 대만을 여행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8월 우리는 다시 미국을 가게 됐다. 이번엔 돌아오는 비행기표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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