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8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우리 막내 천재 아니야?

by 헤이즐 Feb 08. 2025
우리집에 아이패드가 세개 있지, 엄마?
99밤 중에 두밤 잤으니까 이제 97밤 남았어.
나는 자석이고 엄마는 철이야. 꼭 붙어있어야해.


우리 막내는 천재다! 한글을 가르치려고 크게 노력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주차장 벽에 써 있는 글을 읽어서 부부를 깜짝 놀라게 했는가 하면 그 흔한 학습지 한 장 같이 풀어본 적 없는데 갑자기 덧셈 뺄셈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얼마전에는 영어 유치원을 가고 싶다길래 경험삼아 레벨테스트라는 것을 하러 갔는데 이미 파닉스를 어느정도 알고 있더란다. 물론 하루 6시간씩 꼬박 보내는 유치원 교육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똑같은 유치원을 졸업한 첫째는 학교 입학 직전까지 한글도 버벅거렸다. 애초에 여섯살짜리가 영어 유치원을 보내달라는 것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요구였다. 우주비행사가 되려면 영어를 잘 해야한다나...


막내는 매일 일정 시간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본다. 궁금한 것이 많고, 귀찮아서 단답형으로 대답해주면 ' 더 자세한 정보'를 달라며 캐묻는다. 가끔 아이가 내 휴대폰으로 영상을 찾아보는데 내 알고리듬의 유일한 교육적 콘텐츠 유입은 거기에서 온다. 어쩌다가는 우주에 처음 간 사람은 유리 가가린이 맞냐고 묻거나 달에 처음 간 사람의 이름이 뭐냐고 퀴즈를 내서 우리 부부의 뇌정지를 잃으킨다. 


어느 날에는 문득 우리 가족들을 모두 모아서 우주 통제실을 만들어야 하니까 아이패드를 충전해달라고 한다. 이모, 엄마, 본인 이렇게 세명이 사용해야 하니까 큰 아이패드까지 세개를 충전하라며. '그걸 알고 있었다고? 아니, 그걸 기억했다가 이렇게 써먹는다고?' 내심 놀랐다. 의도적으로 방전된 상태로 방치해서 관심을 잃은지 오래인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작전 실패인가.


아이들과 강원도 여행 중에 들른 숙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몇 밤이나 자고 갈것인가 물었더랬다. 하루만 자기는 너무 아쉬우니 99밤을 보내고 가자고 한다. 이튿날 조식을 먹으면서 이제 98밤 남았다고 해서 흠칫했는데 체크아웃하는 날 주차장 가는 동안 내내 아직 두밤밖에 못 잤으니 아직 97밤이 남은 것 아니냐며 아주 서럽게 울어댔다. 원래 6살이면 두자리수 뺄셈을 할 수 있는건가?


얼마전 첫째 아이 잠자리 독립에 성공해서 둘째만 데리고 자는데 깜깜한 밤 더블 침대에 오붓하게 둘이 누워서 폭닥한 손을 품속으로 쑤셔 넣으면서 말한다. '엄마는 내거야. 나는 자석이고 엄마는 철이야. 꼭 붙어 있어야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막내는 천재야! 내 인생따위 가볍게 희생하겠어!


우주 덕후 막둥이의 최애 장난감 애칭은 큐리오시티 이다. 나중에 자기 전에 책을 읽어 주다가 화성탐사선 이름이 큐리오시티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둘째에게 사주는 책은 무조건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하찮은 인생따위 희생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는 일이구나.

숭고한 희생을 이루려면 먼저 숭고해져야하는 거였어.




월요일 연재
이전 19화 재미있으신데 좀 부담스러워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