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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너의 개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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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Sep 03. 2024

너의 개

단편소설

너의 개 (5화)



  “지난 8년 동안 집에 불을 세 번 지르셨어요. 라이터를 숨겼다가 제가 나가면 커튼에 불을 붙이는 식이었을까요?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가끔은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이상하지 않을 짓들 말이죠.”


  그는 단숨에 너의 공감을 얻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물론 요양원에도 모셔봤습니다. 국가의 지원과 제도를 활용해 본 거죠. 하지만 기대 이하였어요. 특히 배설을 위한 복지는 한계가 있더군요. 화장실 대신 기저귀에 배설하던 어머니는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재산을 가로채고 당신을 버렸다고 저를 경찰에 신고하셨습니다. 믿어지십니까?”


  달아나고 싶었다는 고백에 너는 목이 타서 앞에 놓인 물 한 잔을 쭉 반쯤 들이켰다. 백부 덕분에 너도 잠시 그래 보았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코로나로 요양원 면회가 금지되고 할머니가 확진되었다는 연락까지 받은 너는 초조한 생활을 이어갔다. 전담 병원으로 옮겨져 격리 치료하고 다시 두 달이 지나서야 비대면으로 면회가 허용되었다.

  침대째 밀고 나온 요양보호사에 의해 일으켜 앉혀진 할머니가 너를 알아본 눈으로 유리 벽에 손을 붙였다. 체구가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머리를 감기고 말리면 방방하게 뜨는 곱슬머리는 내내 누워만 있었는지 한쪽이 납작했다. 윤기 없는 하얀 털의 늙은 개 같았다. 유리 벽을 두고 수화기를 잡은 너와 할머니는 5개월 만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태경아.”


  할머니는 너의 이름을 부를 줄만 알았지 네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고 너는 할머니의 혼란과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전화기를 놓았다. 할머니는 다시 침대째 옮겨졌다. 돌아가는 길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누워만 계시려 드니 자주 뒤집어드리고 운동도 시켜드려야 하는데, 그런 분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신경은 못 써요. 왼쪽으로 눕히면 이렇게 웅크리고 있고 오른쪽으로 눕히면 또 이렇게 나무토막처럼 있다가 그런 상태로 돌아가시는 거예요. 결국, 입관마저 힘들어지죠.”


  그는 구부린 양팔을 이리저리 옮기며 시연을 해주었다. 너는 어릴 적 시장에서 보곤 했던, 뻣뻣한 네 다리가 하늘을 향한 채로 죽은 개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개들이 화장터로 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울부짖는 대혼란 속에서 나무토막이 된 할머니를 찾아 헤매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너는 할머니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임종을 앞둔 것처럼 축 처져있던 할머니는 놀랍도록 기력이 되살아나 잘 먹고 잘 쌌다.

 


 “자기한테서 똥 냄새 나.”


  어느 날인가 오민정은 태연히 말하며 웃었다. 너는 그게 농담이 아니란 걸 즉각 알아챘다. 그날 할머니가 오랜만에 기저귀가 아니라 변기에 앉아서 똥을, 그것도 많이 쌌다. 그런 날은 너도 녹초가 되었다. 의료용 라텍스 장갑을 끼고 청소하고 샤워도 하지만 냄새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당혹감을 감추며 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할머니 똥이 조금 되직하면 좋을 텐데 번번이 묽어서 엉덩이며 변기에 칠갑하고 뒤처리하느라 전쟁을 치른다고 말이다.


  “개 사료처럼 수분이 적은 음식을 드시게 하지 그래?”


  오민정은 진저리난 눈빛이며 표정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수분을 줄였다가 변비가 오면 그것도 큰 문제거든.”


  너는 괜한 말을 꺼냈다고 후회하면서 그걸 무마하려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회사에도 양해를 구하고 억지웃음을 지어야 할 일이 늘어났고 대놓고 핀잔을 듣는 경우도 흔해졌다.

 

 “태경 씨는 핑계가 많네. 개인적인 사정도 한두 번이지. 사회생활은 그런 게 아니야. 오민정 대리가 그런 건 안 가르쳐줬나 보지?”


  너는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했다. 오민정은 ‘듀오’로 연결된 법무사와 연애를 시작했고 가벼운 만남에는 이제 지쳤다고 회사 사람들에게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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