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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Jul 07. 2022

웃음과 울음.

EL MARIACHI by John Moyers






멕시코에서 태어난 남편은 미국에 온 지 25년이 지났지만 미국의 문화에 절대 휩싸일 수 없는 진정한 멕시코인이다. 그리고 그런 머리부터 발끝까지 멕시코인인 남편과 멕시코의 반대편에 위치한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크고 작은 문화 충돌을 겪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소화해 내기가 어려웠던 것은 바로 모든 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남편의 낙천적인 태도였다.


멕시코 사람들은 거의 모든 말이 농담으로 시작해서 농담으로 끝난다. 한국 사람들에게 한恨의 정서가 있다면 멕시코인들에게는 낙樂의 정서가 있다. 모든 것을 가볍고 즐겁게 해석한다. 그래서 남편은 우울이나 괴로움 같은 감정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감정이 몸속 DNA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만 같다.




우리의 딸 아라가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안겨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에 실려가 2주 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을 때도 나는 펑펑 울면서 괴로워했지만 남편은 집에 가서 아라가 아팠던 것을 나중에 아는 것보다 태어나자마자 아픈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라며 나를 위로했고 나는 이런 재앙과도 같은 상황까지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남편이 신기하면서도 크게 의지가 되었다.


또 한 번은 남편의 가족들과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밥을 다 먹고 짐을 챙기는 나에게 시아버님이 대뜸 빨리 접시를 가방에 넣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님이 접시를 훔치라고 지시하는 것에 깜짝 놀라 토끼 눈을 하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런 나를 보며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나는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고 농담을 던지는 멕시코인들의 순발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높은 자살률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 비해 멕시코는 부족한 경제와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살률이 매우 낮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가 아마도 모든 것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작고 단순한 것들 속에서 웃음과 행복을 찾는 그들의 국민성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하지만 그런 웃음의 국민성을 가진 남편은 사실 우는 것도 잘한다. '미생'이나 '이태원 클라쓰'같은 한국 드라마를 보며 별로 슬프지도 않은 장면에서까지 펑펑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나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주다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많은 한국 사람들의 마음이 아픈 이유는 웃지 않아서가 아니라 울지도 않아서이지 않을까?


어쩌면 웃음과 울음은 겉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몸속 깊숙이 쌓여 있는 불순물 같은 에너지들을 밖으로 분출시키는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픈 감정을 너무 가슴 깊이 한恨으로 꽁꽁 싸매어 남겨두지 말고 웃음으로든 울음으로든 밖으로 풀어내야 한다.


모든 것들을 너무 진지하게도 심각하게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하다. 행복한 순간도 불행한 시간도 때가 되면 지나가는 것들일 뿐인데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붙잡고 있으면 집착이 된다. 그냥 웃고 울면서 약간 이상하고 운 포코 로코 (Un poco loco 약간 미친)한 사람처럼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삶이란 가볍게 즐기면서 사는 것이 가장 깊이 있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종종 어깨와 팔이 아픈 나에게 남편은 이런 농담을 던지곤 한다.

"그럼 내가 장모님한테 전화해서 새로운 어깨랑 팔 주문할게."

그리고 이런 농담에 예전 같았으면 토라졌을 나도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주문할 때 작은 얼굴이랑 날씬한 배도 같이 주문해 줘."


농담도 하면 는다.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하다 보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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