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이상한 나라의 엄마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해 보지 못했다. 아이에게 멕시코 요리를 해주고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어로 화를 내는 엄마라니. 살면서 단 한 번도 예측해 본 적 없는 전개였다.
그렇게 삶은 언제나 우리를 예상치 못한 장소로 데려다준다.
언젠가 미국에서 백만장자라고 불리는 사람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어떻게 해서 백만장자가 되었냐는 질문에 삶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고 말했다. 그래, 이왕 데려다 줄 거라면 삶은 왜 백만장자라는 목적지로 나를 데려다주지 않은 것일까. 왜 이곳일까. 미국의 시카고. 단 한 번도 내가 이곳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곳에 오기 몇 년 전,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나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을 호주에서 놀고먹는데 다 써버리고는 빈털터리가 되어 꿈도 직장도 애인도 모아둔 돈도 하나 없이 부모님 집에 빈대처럼 붙어서 기생했다. 그런 내가 감히 어떻게 결혼을 하고 미국에서 살게 될 거라고 꿈꿀 수 있었을까? 게다가 살면서 제대로 된 연애는 해 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그저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남편 자랑을 하는 언니와 여동생의 대화를 듣다 혼자 방으로 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방구석을 긁어대는 처량한 늙은 개 같은 신세로 마냥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묵묵히 견뎌 낼 수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행복의 시간이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먹먹한 시간들을 잘 견뎌냈고 어느새 살면서 꿈꿔 보지도 못한 미국 시카고에서 멕시코인 남편과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딸 아라와 함께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나의 이상한 인생처럼 삶은 언제나 이상하게 흘러가 나를 예상치 못한 장소에 데려다 놓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단 한 번도 내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도착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그것이 빈털터리 노처녀이든, 시카고의 이상한 엄마이든, 내가 지금 이 순간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의 장場에 나는 언제나 완벽하게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나의 글은 그런 장場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신을 위해 삶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당신이 있는 그 이상하게 보이는 나라가 당신에게 얼마나 완벽한 곳인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참 이상한 인생을 살았고 한국인지 미국인지 멕시코인지 모를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엄마와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봉박두.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