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미국의 독립 기념일이 다가오면 여기저기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어릴 때는 마냥 불꽃놀이가 즐거웠지만 작년 독립기념일에 불똥을 맞아 본 나는 이제 폭죽이 터지는 소리만 들려도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어깨를 잔뜩 움츠리게 된다.
올해 7월에도 4일이 되기 전부터 주변에서 밤이면 밤마다 폭죽을 터트리기 시작했는데 아라는 까치발을 들고 창밖을 보며 미소 띤 얼굴로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리고 대망의 독립기념일 밤, 우리 가족은 접이식 의자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 화려한 불꽃이 사방에서 피는 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는데 남편은 아라를 안고 불꽃이 더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며 즐겁게 밤하늘을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너무 큰 소리가 무서워 폭죽이 터질 때마다 숨기 바빴는데 행여나 불똥이 아라에게 떨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본 아라의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어둡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불과 어젯밤까지만 해도 폭죽 소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잠에 곯아떨어졌던 아라는 갑자기 불꽃놀이가 무섭다며 이불속에서 나를 꼭 안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아라에게 두려움을 물려줬다.
아라가 작은 실수를 하거나 살짝 넘어지면 남편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크게 웃어버린다. 그러면 아라도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가 이내 웃는 아빠를 보고는 따라 웃어 버린다. 하지만 아라가 조금만 다쳐도 겁에 질리는 나를 보면 아라는 언제나 펑펑 울어 버린다.
어쩌면 학문적인 교육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그대로 아이의 모습이 된다. 내가 불꽃놀이를 무서워하면 아이도 불꽃놀이는 무서운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내가 작은 일에 겁에 질리면 아이도 세상엔 무서운 것이 많다고 느끼게 된다.
언젠가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난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한 적이 있는데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언젠가는 놓이게 된다는 것을 두려워하던 엄마의 모습처럼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깨달았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나의 일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 내 안에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도 나의 모습, 방긋 웃는 아이의 모습도 나의 모습이다. 꼴 보기 싫은 직장상사도 나의 모습, 나와는 너무 다른 남편도 나의 모습이다.
우리는 언제나 나를 이해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아이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위해 좋은 옷을 사거나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모습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명상을 한다. 생각과 감정이 사라진 공간을 내 안에 만들어 그곳에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위해 나를 사랑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항상 타인과 문제가 생길 때면 누구에게나 각자의 길이 있다는 말을 가슴에 새긴다. 나의 옳은 것이 그 사람의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 그 사람에게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 앞에 똥물이 있다고 돌아가라고 했다가 산사태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오로지 아이에게 배울 수만 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 절대 알 수 없다. 단지 아이가 똥물을 건너는 것을 보며 비켜가라고 길을 막아서고 싶은 나의 마음만을 다스릴 수만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명상을 한다.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 두려운 것, 무서운 것. 모든 꼬리표를 떼어버린 공간 안에서 미소를 짓고 앉아 있는다. 그렇게 명상을 하고 아이의 얼굴을 보면 언제나 그 안에서 나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너와 나의 꼬리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년 독립기념일에는 너무 피하지만 말고 기쁜 마음으로 불꽃놀이를 구경해야겠다. 그러면 두려움을 극복한 나의 모습을 아이는 가슴 안에 담아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