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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Oct 13. 2022

명상과 글쓰기.

Red mug. Portrait of Ekaterina Popova by Nikolay Niolaevich popov




산후 우울증을 겪지 않았더라면 명상을 하지도 글쓰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명상과 글쓰기는 아주 조금씩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환경을 바꾸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하나만 바꾸면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을 배웠다.  


어디에선가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고 굳이 시간의 개념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면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미래와 과거가 쌍으로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미래 때문에 과거가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는 산후 우울증을 겪어서 명상과 글쓰기를 하게 된 것이 아니라 명상과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 산후 우울증을 겪은 것이 된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 남자운이 없어야 했고 이미 존재하는 미래의 정확한 시점에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하나 이루지 못하는 좌절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는 말이 된다.




나는 어느 날 도저히 양치를 하지 않는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아무리 기다리고 달래도 말을 듣지 않자 무섭게 겁을 줘서 양치를 시키는 방법 말고는 도저히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오랫동안 미워했던 엄마를 용서했다.


보다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더라면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보다 나은 방법으로 부모에게 사랑받고 컸다면 엄마는 나를 그렇게 상처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양치를 하지 않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는 미래의 나를 좋은 엄마로 만들기 위해 나의 인생에 악역으로 존재해야 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먼 훗날 내가 아이의 이를 닦다가 엄마를 이해하고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엄마는 나에게 그토록 매정한 말을 하고 나를 때리고 문을 닫고 나가버렸을까.




언젠가 인도의 수도사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책에서 신은 미리 응답한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의 의지 뒤에는 실패할 수 없는 신의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 그것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면 그 의지 속에 이미 신의 응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지를 게으름과 저항의 에너지에 내어주지 말고 스스로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의지는 절대 이유 없이 그냥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참 아름다운 말이지 않은가. 의지 속에 이미 신의 응답이 있다는 것이.


나는 매일 꾸준히 명상과 글쓰기를 한다. 명상을 한다고 매일이 평화롭거나 상처받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글을 쓴다고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느낌을 따라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것들을 한다. 미래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위해 나는 지금 명상과 글쓰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예상치 못한 가슴 뛰는 장소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매일의 일과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매일이라는 그 작은 점들이 모여 길고 긴 길을 만든다.


만약 과거와 미래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의 과거에게 그리고 과거의 모든 잘못과 고통과 엄마와 인연들에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미래의 나의 무한한 가능성들에게 미리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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