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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Nov 09. 2024

그녀의 점심 - 4

그가  왔다. - 김치찌개밥.

종종 집에서 김치찌개를 한 날은 찌개를 조금 가져와서 찬 밥을 넣고 펄펄 끓여 먹는다.

진정한 게으름의  음식이며 사람들이 "꿀꿀이 죽"이라고 일컫는 그것. 상당히 편한 음식이며 어떤 걸 먹어도 그냥 그런 식사를 대신하기엔 그만한 것이 없다.

그날도 오후 세시 넘어서 김치찌개밥을 끓여서 먹고 있었는데

그가 왔다.

'왜 하필이면 지금 와? 꼭! 하필이면 이거 먹을 때"

"식사하시나 봐요"

그녀는 당황한 빛을 그대로 발산하면서 먹던 것을 치우고 그를 맞았다.

'그냥 모른 척해주면 좋으련만'

그는 씨익 웃었다.

그녀는 그가 좋다.

스무 살 때 눈 오는 날 안성탕면 한 박스 창밖에서 던져 준 오빠에게 반해서 십 년 넘게 애달프게 지낸 이 후로 이성에 대한 모든 관심은 고이 접었었는데 그  한 자락이 펴진 듯 그가 좋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왔었는데 마냥 좋다.

그 좋음을 감추느라 선방하려 애썼는데 아마도 실패했을 터였다.

그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항상  웃었고

좋음을 감추려고 퉁명스레 말하는 그녀에게 웃으며 말을 했었다.

그녀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급하지 않은 어투와 삐 다닥하게 서있는 그가  마냥 좋다.

가게 도착하기 3,4분 전에 도착 알림 전화를 하곤 했는데

도무지 왜 전화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와서 서있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가 도착하기 4분 전에 그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싶었으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미소는 감출 수 없었다.

일 년 동안 그녀의 이쁜 손님이었다가 그는 서울로 갔고 그녀는 이따금씩 무척 그리워했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녀는 그로부터 연락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으며 다 차단되었다.

마지막 연락은 그녀 아픈시기에 복숭아 보내주셔서 과자 보내드릴까요 했더니 ㅠㅠ 더이상 연락 하지말라고. 코메디 같기도 했고 현실감이 없었다.

- 그녀 나이 오십에 왜?

  그냥 연락을 씹으면 되는 게 아닌가?

  굳이 나에게 연락을 하지 말라 말을 왜 하지 심정 상하게? 도대체 복숭아는 왜 보낸거라니 ??

연락을 자주 했다면 이해되었을 텐데 당혹스러웠고 지난했었다.


아무튼 그녀는 삶이 고단 했는데 그는 살만한지가 궁금하다.

이상한 건 그보다 그녀이다.

그녀도 '응 알았어 내가 뭘?" 하면서 툭툭 털면 될 것을 여운이 깊게 파이고 아린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쉴틈없이.


그에게 손님이상의 호감을 가졌다는 걸 인지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차단 이후였다.

일찍 알만도 했는데.

그의 물건을 포장하다가 그녀가 오후에 혼자 먹으려고 아끼고 아꼈던 노란 사과를 냉큼 그의 봉투에 넣은 기억이 있다. 의식하지 못한 그녀의 호감이었다.

그녀가 감추고 감추었던 그녀의 맘이 삐져 나아가 그를 진저리 치게 만들었는지

그의 맘을 무디게 받은 그녀에게 토라져 돌아 앉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일 년이 지나 그에게 진심이었던 그녀 자신을 만났다.

안성탕면 한 박스에 십 년이었는데 그는 복숭아가 두 박스다.

어쩐다.

지난여름 과외 학생이  건네준 마이쮸 복숭아 맛도 못 먹겠더라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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