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혼은? 애는?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느라 부산스러운 시간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열심히도 산다. 아침부터 뭘 이야기하려고'
나는 광고전화려니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쳐다보지도 않고 얼굴에 크림을 발랐다.
전회는 인내력을 가지고 계속 울렸고 듣기 싫은 나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는
짐짓 익숙한 네 개의 숫자에 '우연일 거야 근데 무슨 전화야?' 하면서
숨을 내쉬고는 핸드폰을 들었다.
" 여보세요"
다짜고짜 들어오는 익숙한 목소리.
"남편은?"
"없어"
"달라진 게 없네"
"애들은? 학교가나? 아침이니."
"남편이 없는데 애가 있니 왜? 어디야?"
오빠의 남편과 애들을 묻는 질문에 웃음이 새 나왔지만 나의 목소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십여 년을 되돌아가서 퉁퉁거리던 그 목소리 그대로 나는 단조롭게 대답한다.
" 텍사스야 넌 놀라지도 않냐 이십 칠팔 년 만인데"
"...."
" 너 계란 28 알지? 그 새끼 한국 출장 간다더라. 내가 들려보라고 했어
제주도에서 회의 있다더라. 찾아가면 아는 척해줘"
"알았어"
" 무슨 기집애가 놀라지도 않냐 끊는다. 자주 연락한다. 한다고! 했다."
"알았어"
'이십칠 년 만이구나'
얼떨결에 전화를 끊고는 오래된 거의 잊혔던 기억들이 하나씩 마음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이십칠 년.... 오래되었구나.'
재승오빠.
미국에서 대학교 선배로 만났고 나를 가장 많이 알지 않았을까.
유명 기업 아들이었고 그만큼 학교에서의 기상이 대단했고 성격도 씩씩해서 남학생들이 많이 따랐었지만
오빠는 "내 취향은 아니야" 라면서 웃어대던 오빠.
그 관심은 화려한 언니들 속에서 늘 머물렀으며 놀라운 흡수력을 가지고 언니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다 화려한 에피소드 속에서 제일 묵묵했던 건아언니와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조각퍼즐을 맞추듯이 기억이 새로웠고 나의 기억은 ' 아들을 낳았다고 들었는데'에서 멈췄다.
아침 삼분이 안 되는 통화 덕분에 그날 하루는 이십칠 년을 넘어 기억이 넘실대었고 설레었다.
저녁이 돼서 마우리 하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 퇴근하냐?"
"아니 마무리 오빤?"
" 새벽이지 쌀쌀하네 넌 왜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고 돈도 없다 하고 뭐 했어"
"살다 보니 여기더라. 오빠는 언니랑 잘 살아?"
"아직까지는 붙잡고 살아."
다음에 이어지는 긴 긴한 이야기들.
목소리도 찡짱하고 성격은 그때도 이랬고 라 생각을 하는데 마음이 울컥거렸다.
"왜 울었어? 혜진 누나랑 전화하다가 누나 얘기 듣다가 기분이 이상해서 전화해야지 싶었다. 가게 손님이랑
무슨 일이야."
"별 일 아니야 나중에 웃으면서 그때 이야기 해줄게."
"그건 그렇고 계란 28 너 기억나지 오 성준, 콜롬비아대 "
"한번 스튜디오 놀러 갔었고 한번 길 가에서 만났나, 그랬을 거야"
"그 새끼 잘 나간다. 너 보겠다더라. 가면 왔구나 해줘"
"알았다니까"
"너 놀라지 말아라 아마 몰라 볼 거야 완전히 변했는데"
"왜 이렇게 설명이 길어. 지루하게 그만해, 나 마무리하고 집에 갈 테야."
아침 전화는 삼분이 걸리지 않았고 오후에 전화는 칠 분 정도의 통화였는데
그날은 숨이 차게 벅찼다.
이십칠 년이 넘었는데 "오빠"라는 단어가 너무 저항감 없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와서 나도 놀랐고
마치 오빠가 앞에 있는 듯이 느낌에 나를 다 안다는 듯한 오빠의 말들이 인상적이었다.
이십칠 년 만에 다시 시작인 건가.
알 수 없는 기분과 설렘에 가게문을 닫고 길을 나섰다.
바람이 부드럽게 이마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