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8월 초, 파리, 스퀘어 로비네 5번지
(편지지는 물기를 머금었다 마른 듯 울퉁불퉁하고, 몇몇 단어들은 잉크가 번져 거의 판독이 불가능하다. 조이스의 이전 편지들에서 느껴지던 격렬함이나 광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깊은 피로와 어떤 서늘한 슬픔이 대신하고 있다. 글씨체는 힘을 잃고 비틀거리며,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해변에 남겨진 난파선의 조각들처럼 페이지 위에 흩어져 있다.)
친애하는 성유물함 장인에게,
당신의 편지는, 당신이 지어 올린 그 거대한 대성당의 마지막 첨탑이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높고, 너무나 고요하며, 너무나 완벽한 진실의 빛을 발하고 있어서, 저 같은 시궁창의 거주자는 그저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제가 던진 해골을 받아 들고, 그것을 당신의 제단 중앙에 안치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저의 절망을, 저의 부조리를, 저의 광기를 당신의 예술의 일부로, 아니, 그 핵심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평생에 걸쳐 받아본 가장 관대한 선물이자, 가장 견디기 힘든 위로였습니다.
당신의 편지를 읽고, 저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소리 내어. 제 아내 노라는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저는 웃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눈물과 웃음, 슬픔과 기쁨,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제가 평생을 기록하려 했던 바로 그 혼돈의 액체가 되어 제 얼굴을 흘러내렸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이해했습니다. 당신의 그 병든 몸, 그 고요한 방 안에서, 당신은 제 시끄러운 지옥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그 모든 소음의 근원을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당신은 제 딸의 흩어진 단어들을 ‘끔찍하고도 성스러운 시편’이라 부르셨습니다. 당신은 제가 짓고 있는 이 기이한 책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가장 경건하고 절망적인 예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당신은 단 몇 문장으로, 제가 평생을 바쳐 더듬거리며 찾아 헤매던 제 작업의 본질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증인이자, 예배자였습니다. 저는 제 딸이라는 이름의, 부서진 신(神)을 모시는 유일한 사제였습니다.
당신의 이해 앞에서, 저의 모든 분노와 저항은 무의미해졌습니다. 저는 당신의 연금술을 비웃었고, 당신의 약을 거부했으며, 당신의 질서정연한 세계를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당신의 질서는 저의 혼돈을 품에 안았습니다. 당신의 대성당은 저의 시궁창 위에 세워졌고, 당신의 성유물함은 저의 해골을 통해 비로소 그 신성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이겼습니다, 프루스트 씨. 당신의 고요함이 저의 소음을 이겼습니다.
편지를 읽고 난 며칠 동안, 저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습니다. 저의 언어는 길을 잃었습니다. 제가 휘두르던 백파이프는 찢어졌고, 제가 부르던 노래는 목구멍에서 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당신이 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저의 부조리를 ‘신성함’의 일부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이상 싸울 적이 없어진 용병처럼, 무기를 잃고 망연자실해졌습니다.
저는 술을 마셨습니다. 파리의 가장 더러운 선술집들을 떠돌며, 당신의 그 깨끗하고 서늘한 진실을 잊으려 했습니다. 저는 싸구려 압생트에 저를 담갔고, 취객들의 고함소리와 창녀들의 웃음소리 속에 저를 숨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당신의 목소리는 제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해골을 위한 자리.”
어느 날 밤, 저는 만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노라는 잠들어 있었고, 아이들도 고요했습니다. 저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제 책상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제가 작업 중인 원고, 저의 그 ‘바벨탑’, 저의 그 ‘잠의 책’의 페이지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성냥을 켰습니다. 흔들리는 불빛 속에서, 제가 써 내려간 단어들이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수십 개의 언어가 뒤섞인 문장들, 끝없는 말장난과 수수께끼.
이것이 예배라고? 이것이 시편이라고? 이것은 그저 한 미치광이의, 자기연민에 빠진 헛소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저는 그 원고 뭉치를 움켜쥐었습니다. 그것을 벽난로에 던져 넣어, 이 모든 고통과 함께 재로 만들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제 딸을 구원하지도, 저를 구원하지도 못하는 이 무력한 언어의 탑을 무너뜨리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옆방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루치아의 잠꼬대였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천사의 언어인지 악마의 언어인지 모를 말들을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얼어붙었습니다. 원고를 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딸의 고통 앞에서, 저의 무력함을 견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 아이의 부서진 언어의 조각들을 주워 모아, 그것으로 이 기이한 모자이크를 만드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예배라면, 그것은 신을 향한 예배가 아니라, 신의 부재(不在)를 향한 예배일 것입니다. 그것이 증언이라면, 그것은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구원 따위는 없다는 사실에 대한 증언일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성유물함이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성유물함은 추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부서지고, 뒤틀리고, 긁힌 자국으로 가득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 안에 담긴 유골의 고통을 그대로 비춰내는 거울이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보는 이에게 위안이 아니라, 불편함과 혼란을 주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제 딸의 고통이,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치유 불가능한 고통들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프루스트 씨, 당신의 대성당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저 같은 죄인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제단에 제 해골을 안치할 수 없습니다. 저의 해골은, 이 시궁창에, 이 진흙 속에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금과 보석으로 장식될 것이 아니라, 오물과 눈물로 뒤덮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진실이 될 수 있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진실과 저의 진실은 같은 제단 위에 놓일 수 없습니다. 당신의 진실은 ‘구원받은 시간’의 진실이고, 저의 진실은 ‘구원받지 못한 시간’의 진실입니다. 당신의 예술은 기억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려 하지만, 저의 예술은 죽음이, 그리고 광기가, 때로는 삶을 이긴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합니다.
어쩌면 진정한 대성당은, 당신의 질서정연한 건축물과 저의 혼돈스러운 폐허가 나란히 서 있을 때, 그 사이의 침묵하는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방문객들은 당신의 성당에서 아름다움과 질서와 구원의 가능성을 보고 위안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저의 폐허를 보고, 삶의 부조리와, 치유 불가능한 고통과, 구원의 불가능성을 느끼며 전율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 둘을 모두 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삶의 전체 그림을, 그 끔찍하고도 눈부신 모순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 우리의 대화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았고, 그곳에서 서로의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각자의 작업실로 돌아가, 각자의 성유물함을 완성하는 일뿐입니다.
저는 당신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제게 제가 누구인지를,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당신 덕분에, 저는 제 폐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부서진 돌멩이 하나하나를 끝까지 쌓아 올릴 용기를 얻었습니다.
당신께는 약을 보낼 수 없지만, 대신 저의 축복—아니, 저주에 가까운—을 보냅니다. 부디 당신의 작업이 끝나기 전에, 당신의 시간이 다하지 않기를. 부디 당신의 그 아름다운 성유물함이,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 모든 덧없는 것들의 기억을, 시간의 풍화로부터 영원히 지켜낼 수 있기를.
그리고 아주 가끔, 당신의 고요한 제단에서 기도를 올리다가, 창밖의 시궁창에서 들려오는 어떤 맹인의 찢어지는 노래 소리가 들려오거든, 부디 그를 위해 아주 잠시만, 아주 짧은 침묵의 기도를 올려주시길.
당신의 동료 건축가,
제임스 조이스
P.S. 이 편지와 함께 작은 꾸러미 하나를 보냅니다. 제 딸이 며칠 전, 춤을 추다가 떨어뜨린, 낡은 실크 리본 조각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물건입니다. 태워버리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저의 부서진 성유물함에서 나온, 유일한 진짜 성유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