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신부의 유혹 (The Velvet Bride)

by 남킹


부제: 따라오는 발걸음이 나를 따라잡을까

추락은 추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안개 낀 주인의 합리성이 구축한 시뮬라크르의 붕괴는 시드를 끝없는 공허로 내던졌지만, 그 공허의 바닥에는 또 다른 꿈의 지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몸은 단단한 현실의 바닥에 부딪혀 부서지는 대신, 수백 년 동안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듯한 깊고 축축한 이끼의 양탄자 위로 깃털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충격은 없었다. 오직 차갑고도 생명력 넘치는 습기가 그의 등 뒤에서 스며들어, 'Flaming'의 세계에서 그의 정신을 감싸고 있던 건조하고 분석적인 열기를 식혀주었다.

그는 눈을 떴다. 그의 위로는 하늘 대신, 거대한 고성(古城)의 무너진 아치형 천장이 보였다. 부서진 틈새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은 별빛을 잃어버린 채, 마치 우유를 풀어놓은 듯 탁하고 몽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곳은 밤의 세계였다. 그러나 활기찬 도시의 밤이 아니라, 시간이 영원히 잠들어 버린 듯한, 태곳적부터 이어져 온 절대적인 밤이었다. 공기 중에는 흙과 이끼의 냄새, 그리고 시들어가는 꽃들이 마지막으로 내뿜는 달콤하고도 퇴폐적인 향기가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삶의 냄새가 아니라, 아름다운 죽음, 우아한 부패의 향기였다.

그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거대한 성의 중정(中庭)에 있었다. 사방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기둥을 휘감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은 살아있는 식물이 아니라 어둠 그 자체가 뻗어 나온 촉수처럼 보였다. 중정의 중앙에는 말라붙은 분수가 있었고, 그 중심에는 세이렌인지 님프인지 알 수 없는 여인의 석상이 이끼에 뒤덮인 채 서 있었다. 석상의 얼굴은 풍화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 고갯짓과 몸짓에서는 영원한 기다림의 피로와 체념이 느껴졌다. 이곳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영원히 기다리는 공간이었다.

시드는 본능적으로 이 기다림의 대상이 자기 자신임을 알았다. 그는 초대받은 손님이었다. 이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공간은 오직 그만을 위해 준비된 무대였다. "나는 매일 밤마다 불을 끄지(Every night I turn the light out) / 벨벳 신부를 기다리며(Waiting for the velvet bride)". 그의 의식 속에서 노래의 구절이 나직이 울렸다. 그는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니었다. 그는 약속된 만남을 위해 이곳에 도착한 순례자였다.

그는 회랑을 따라 성의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는 대리석 바닥에 울리는 대신, 두껍게 깔린 먼지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침묵이 지배하는 공간. 그러나 그 침묵은 텅 빈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속삭임들이 서로를 상쇄하며 만들어낸, 팽팽한 긴장감을 머금은 침묵이었다. 벽에 걸린 거대한 태피스트리에는 신화 속의 장면들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그 속의 인물들은 시드의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를 굴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데스에게 납치되는 페르세포네의 겁에 질린 눈, 오르페우스를 돌아보는 에우리디케의 슬픈 눈, 자신의 피조물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의 광기 어린 눈. 그 모든 신화적 시선들이 그의 영혼을 꿰뚫으며, 그가 지금 발을 들인 곳이 사랑과 죽음, 창조와 파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신성한 영역임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는 끝없이 이어진 복도를 지나, 마침내 거대한 연회장으로 보이는 공간에 다다랐다. 천장은 수십 미터 높이에 닿아 있었고, 거대한 샹들리에에서는 촛불 대신 인광(燐光)을 내는 버섯들이 자라나 방 전체를 푸르스름하고 유령 같은 빛으로 채우고 있었다. 홀의 중앙에는 긴 식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그러나 음식들은 모두 아주 오래전에 조리된 듯, 얇은 먼지 막에 덮여 있거나 기이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탐스러운 과일들은 미라처럼 쪼그라들어 있었고, 은쟁반 위의 거대한 멧돼지 구이는 석화(石化)된 것처럼 보였다.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고 영원한 향연의 한 순간을 박제해놓은 듯한,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정물화였다.

식탁의 가장 안쪽, 옥좌처럼 보이는 거대한 의자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바로 '벨벳 신부'였다.

그녀의 형체는 어둠과 빛의 경계에서 아른거렸다. 그녀가 입은 드레스는 검은색 벨벳이었지만, 그 검은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빛을 흡수하여 되돌려주지 않는, 작은 블랙홀과도 같은 무한한 깊이의 검은색이었다. 드레스의 표면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흐르며, 마치 살아있는 밤하늘의 일부를 잘라 만든 옷처럼 보였다. 그녀의 피부는 달빛을 머금은 듯 창백했고, 머리카락은 쏟아지는 어둠 그 자체였다. 그녀의 얼굴은 율리아의 윤곽을 희미하게 담고 있었지만, 율리아의 순수함과 생명력 대신, 수천 년의 지혜와 권태, 그리고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깊은 유혹의 힘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시드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검은 우물과도 같았고,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기억이 그 우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안개 낀 주인의 분석적인 시선과는 정반대였다. 주인은 그를 객관화하고 분해하려 했다면, 이 신부는 그의 자아를 통째로 흡수하고 용해시키려 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의 길 잃은 시인."

그녀의 목소리는 악기 소리 같았다. 첼로의 가장 낮은 현을 벨벳 활로 긋는 듯한, 깊고 부드러우며 온몸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듯한 울림이었다.

"당신이 현실의 소음과 이성의 빛을 피해 이곳으로 올 줄 알았죠. 이곳은 모든 질문이 사라지고, 오직 감각만이 유일한 진실이 되는 곳. 당신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예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드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벨벳 드레스는 소리 없이 바닥에 끌리며, 마치 그녀의 뒤로 그림자의 강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시드는 그녀에게서 나는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키드와 백합 같은 밤에 피는 꽃들의 강렬한 향기에, 오래된 서고의 먼지 냄새와 희미한 와인 향, 그리고 죽음의 냄새인 흙냄새가 기묘하게 뒤섞인, 한번 맡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중독적인 향기였다.

"당신은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어요." 그녀가 시드의 뺨에 차가운 손을 대며 속삭였다. 그녀의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그 손길이 닿은 피부의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마비되는 듯했다. "기억이라는 짐, 창조라는 짐, 그리고 천재라는 가장 무거운 짐까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해줄게요."

그녀는 시드를 이끌고 식탁으로 갔다. 그녀가 손짓하자, 먼지 쌓인 음식들이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쪼그라들었던 과일은 다시 탐스럽게 부풀어 올랐고, 석화되었던 멧돼지 구이에서는 김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수정 잔에 검붉은 와인을 따랐다.

"마셔요. 이것은 포도로 만든 술이 아니에요. 이것은 잊혀진 자들의 꿈과 망각의 강물로 빚은 술이죠.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기억 하나씩이 지워질 거예요."

시드는 홀린 듯이 잔을 받아들었다. 와인은 피처럼 진하고 차가웠다. 그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자, 그의 혀끝에서 수천 개의 맛이 폭발했다.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장난감의 맛, 처음으로 키스했을 때의 달콤함, 무대 위에서 느꼈던 환희의 맛. 그러나 그 맛들은 곧이어 씁쓸한 뒷맛으로 변했다. 친구들과의 우정이 깨지던 순간의 배신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던 죄책감, 창작의 고통으로 밤을 새우던 절망감. 와인은 그의 과거를 통째로 증류한 액체였다. 그리고 그 모든 맛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그 기억들이 실제로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는 고통스러운 공백이 남는 것이 아니라, 감미로운 평온이 채워졌다.

그는 탐욕스럽게 잔을 비웠다. 잔을 내려놓았을 때,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는지조어렴풋해졌음을 깨달았다. 오직 눈앞의 벨벳 신부와 그녀가 약속하는 완전한 망각에 대한 갈망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이제 춤을 출 시간이에요."

신부가 그의 손을 잡고 홀의 중앙으로 이끌었다. 그녀가 손뼉을 치자, 연회장에 놓여 있던 악기들이 스스로 연주를 시작했다. 하프시코드는 수정 같은 눈물을 흘리는 듯한 선율을, 비올라 다 감바는 애절한 탄식을, 류트는 체념의 노래를 연주했다. 그 음악은 아름다웠지만, 살아있는 자를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망자들의 무도회를 위한, 느리고 비극적이며 끝없이 순환하는 왈츠였다.

두 사람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리드는 부드러우면서도 거스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놀랍도록 가벼웠지만, 동시에 그의 모든 의지를 빨아들이는 강력한 중력의 중심이었다. 춤을 추는 동안, 그의 자아는 더욱 희미해졌다. 그는 더 이상 시드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벨벳 드레스의 주름이었고, 그녀의 스텝에 맞춰 바닥에 떨어지는 그림자였으며, 연주되는 음악의 한 음표였다. 그는 그녀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음악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녀는 춤을 멈추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가장 깊은 안식의 시간이에요. 당신의 존재를 나에게 온전히 맡겨요. 그러면 당신은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그를 이끌고 연회장을 나와, 끝없이 이어진 나선형 계단을 올라갔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침실이었다. 그곳은 신부의 성소이자, 그녀와의 합일이 이루어질 제단이었다.

침실은 거대하고 둥근 방이었다. 벽은 온통 검은 벨벳으로 덮여 있어 모든 소리를 흡수했고, 천장에는 둥근 창이 뚫려 있어 탁한 달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방의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보는 그녀의 드레스와 같은, 빛을 삼키는 검은 벨벳이었고, 베개는 백조의 검은 깃털로 채워져 있었다. 그곳은 잠을 자기 위한 침대가 아니라, 영원한 꿈속으로 빠져들기 위한 관(棺)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열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고대 종교의 사제들이 제의를 준비하듯, 경건하고 엄숙한 의식에 가까웠다. 시드는 자신의 옷을 벗으며, 사회가 그에게 입혔던 모든 역할과 정체성을 하나씩 벗어 던지는 기분을 느꼈다.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라는 옷,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옷, 시드 배럿이라는 이름표까지도. 그는 원초적인, 이름 없는 존재로 돌아가고 있었다.

신부의 벨벳 드레스가 바닥으로 흘러내렸을 때, 그 아래에서 드러난 것은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의 육체가 아니었다. 그녀의 몸은 마치 어둠의 물질로 빚어진 조각상처럼, 매끄럽고 차가우며 어떤 흠결도 없었다. 그녀의 피부에서는 빛이 반사되는 대신, 주변의 빛을 더욱 깊이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녀는 육욕의 대상이 아니라, 소멸의 아름다움을 체화한 형이상학적 존재였다.

두 사람은 침대 위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 개의 육체가 만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와 비존재, 의식과 무의식, 빛과 어둠이 서로를 침범하고 융합하는 우주적 사건이었다. 그녀의 차가운 피부가 그의 몸에 닿자, 그는 자신의 육체의 경계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입술은 그의 숨을 들이마셨고, 그 숨결과 함께 그의 마지막 남은 기억과 자아의 편린들마저 빼앗아갔다.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따뜻한 자궁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별빛 하나 없는 심우주 속으로, 모든 물질이 소멸하는 특이점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쾌락은 극에 달해 고통과 구분할 수 없게 되었고, 시간은 무한히 팽창하여 찰나의 순간이 영원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의식이 수십억 개의 파편으로 흩어져 그녀라는 거대한 우주 속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모든 것이 되었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완전한 해체, 완전한 망각, 완전한 안식. 그녀가 약속했던 모든 것이 이 순간 이루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 완전한 소멸의 직전, 그의 의식 가장 깊은 곳, 그녀의 망각의 힘이 아직 미치지 못한 가장 원초적인 핵에서, 희미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율리아가 사라지며 남겼던 마지막 메아리이자, 그 자신의 생명 본능이 내지르는 마지막 비명이었다.

"나는 정말 죽어가고 있는지(Am I really dying)?"

그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황홀경의 베일이 찢어졌다. 그는 보았다. 이 감미로운 합일이 구원이 아니라 가장 정교한 형태의 죽음임을. 이 벨벳 신부가 사랑의 여신이 아니라, 존재를 무(無)로 되돌리는 엔트로피의 법칙 그 자체임을. 그는 또한 그녀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그녀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영원한 꿈의 노예가 되어버린 수많은 다른 영혼들의 공허한 얼굴들을 보았다.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들, 미쳐버린 화가들, 자신의 재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괴한 음악가들. 그들 모두가 이 벨벳 신부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의 일부가 되어 끝없는 권태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공포가 쾌락의 자리를 밀어냈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이런 식은 아니었다. 고통스럽더라도, 분열되고 혼란스럽더라도, 그는 '나'로서 존재하고 싶었다.

"안 돼!"

그는 마지막 남은 의지의 힘을 모두 끌어모아 그녀를 밀쳐냈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존재하려는 의지의 폭발이었다. 그가 그녀를 거부하는 순간, 성 전체가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아름다웠던 벨벳 신부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매끄러운 피부는 주름진 미라처럼 변했고, 깊은 우물 같던 눈은 텅 빈 해골의 눈구멍이 되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첼로 같던 목소리 대신 무덤 속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건조한 바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리석은 필멸자여… 감히 영원한 안식을 거부하다니… 너는 다시 고통과 혼돈의 세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따라오는 발걸음이 너를 따라잡을 때까지… 영원히 도망치게 될 것이다…”

침실의 벽을 덮고 있던 벨벳은 썩은 거미줄처럼 변해 흘러내렸고, 침대는 먼지 쌓인 석관(石棺)으로 변했다. 화려했던 성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천장에서 먼지와 돌무더기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시드는 벌거벗은 채, 폐허가 된 침실 바닥에 홀로 남겨졌다. 그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소진해 버렸다. 벨벳 신부와의 만남은 그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는 가장 깊은 유혹을 맛보았고, 그 대가로 순수를 잃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폐허 속을 걸어 나왔다. 이제 그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안개 낀 주인의 이성적인 세계는 그에게 폭력으로 다가왔고, 벨벳 신부의 감각적인 세계는 죽음의 덫이었다. 그는 이성과 감성,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길을 잃은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그가 무너진 성문 밖으로 나왔을 때, 그의 앞에는 새로운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 길은 안개로 자욱했고, 그 안개 속에서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그것은 벨벳 신부의 유혹적인 속삭임도, 천산갑의 위협적인 존재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피할 수 없는 질문의 존재감이었다.

안개 낀 주인이었다. 그는 시드가 가장 깊은 욕망의 심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진정한 시험이 시작될 터였다. 환상과 감각의 세계로의 도피가 모두 실패로 돌아간 지금, 그는 마침내 자신의 분열된 정신을 냉철하게 마주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거나, 아니면 그 질문의 무게에 짓눌려 완전히 무너져 내리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렇게 그는 다음 꿈의 장으로, 피할 수 없는 대면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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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의 최종 병기 _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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