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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첫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를 바라보며

by 남킹


망각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경고: 역사의 망령은 어째서 되풀이되는가

서론: 시간의 강물 위에 떠오른 새로운 유령

시간은 스스로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강바닥을 따라 흐르는 물과 같다. 강물의 흐름은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거세지만, 그 물결 아래에는 늘 변치 않는 지층이 존재한다. 바로 역사라는 이름의 지층이다. 2025년 가을, 일본의 정치 지형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한 것이다. 헌정사 140년 만에 등장한 여성 지도자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환호와 기대의 목소리 뒤편에서는 깊은 우려와 경계의 그림자가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과거, 한국을 향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하니 기어오른다"는 식의 극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실언이나 개인적 신념의 표출을 넘어, 일본 사회 저변에 흐르는 위험한 역사 인식의 발로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역사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그 흐름의 근원을 파헤치고, 강바닥에 켜켜이 쌓인 퇴적물의 성분을 분석해야 한다. 새로운 총리의 등장은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거대한 서사의 한 장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만주국의 산업 개발을 주도하며 '쇼와의 요괴'라 불렸던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잿더미 속에서 일본을 재건하려 했던 더글러스 맥아더의 구상과 그 한계,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역설적으로 일본에게 안겨준 기사회생의 기회와 자위대 창설의 배경까지. 이 모든 과거의 편린들이 현재라는 거울 속에 어른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야스쿠니 신사라는,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산 자들의 욕망을 제사 지내는 거대한 제단이 자리 잡고 있다. 야스쿠니는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광을 추억하고,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며, A급 전범들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살아있는 역사 왜곡의 현장이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망각의 심연에 가라앉은 역사의 파편들을 길어 올리고, 그것들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불길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지 명확히 직시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한 명의 정치인이 아니라, 일본 우익이라는 거대한 망령의 새로운 현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제1장: 괴뢰의 심장에서 잉태된 야욕 - 만주국과 기시 노부스케의 망령

역사의 아이러니는 종종 혈연이라는 질긴 끈을 통해 되풀이된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 DNA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라는 인물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쇼와의 요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일본의 패전과 전후 부흥기라는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인물이다. 그의 정치적 야망과 통치 철학이 잉태된 곳은 다름 아닌 만주국, 일본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한 괴뢰 국가의 심장이었다.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의 산업부 차관과 총무청 차장을 겸직하며 사실상 만주의 산업 정책 전체를 총괄했다. 명목상의 장관은 만주인이었으나 실권은 모두 일본인 차관들이 쥐고 있었기에, 그의 손끝에서 만주의 자원과 노동력은 오롯이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동원되었다. 그는 '만주국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민간 자본을 유치해 독점적 특수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관료 주도형 경제개발 모델을 실험했다. 이는 훗날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모델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끈 관료 주도 경제 시스템의 원형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경제적 수완이 아니라, 그 기저에 깔린 제국주의적 통치 철학이다. 만주국은 기시에게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그는 국가가 경제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국민을 총동원하여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 전체주의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훗날 그가 일본의 총리가 되어 추진했던 정책들, 특히 미일안보조약 개정과 같은 국가주의적 행보의 사상적 뿌리가 되었다.

A급 전범 용의자로 투옥되었으나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극적으로 풀려나 일본 정계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기시 노부스케의 삶은, 일본 우익 세력의 끈질긴 생명력과 역사 수정주의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패전의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전범들과 손잡고 자유민주당을 창당하며 일본 보수 정치의 기틀을 다졌다. 그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가 전후 체제의 탈피를 외치며 평화헌법 개정을 시도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며 주변국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만주국의 망령, 즉 제국주의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뒤틀린 욕망이 할아버지에게서 손자에게로 이어진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일본의 새로운 여성 총리가 과거 한국에 대해 쏟아냈던 망언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녀의 발언은 단순히 개인의 편향된 시각을 드러낸 것을 넘어,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시작되어 아베 신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 우익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역사 수정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들은 과거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반성하기는커녕, 그것을 '아시아 해방'이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하고, 오히려 피해자였던 국가들이 역사를 문제 삼는 것을 '내정간섭'이자 '은혜를 원수로 갚는 행위'로 치부한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 사회 전반에 만연한 '피해자 코스프레', 즉 자신들이야말로 원자폭탄의 피해자이며 서구 열강의 압박에 맞서 싸운 희생양이라는 자기 연민적 서사와 맞물려 더욱 공고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의 새로운 지도자를 평가할 때, 그녀의 성별이나 참신함과 같은 피상적인 요소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녀의 언행 뒤에 도사리고 있는 기시 노부스케의 망령, 만주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해야 한다. 역사는 단 한 번도 저절로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간 적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과거와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힘겹게 전진해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 망각의 강물에 역사의 진실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제2장: 푸른 눈의 쇼군과 꺾인 칼 - 맥아더의 딜레마와 일본의 기사회생

1945년 8월, 두 개의 섬광과 함께 일본 제국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잿더미가 된 도쿄에 입성한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사실상 일본의 새로운 통치자, '푸른 눈의 쇼군'이었다. 그의 손에 일본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맥아더의 초기 점령 정책은 일본을 다시는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평화로운 국가로 개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던 군대는 해체되었고, 전쟁을 기획하고 수행했던 전범들은 국제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화족 제도가 폐지되고 천황의 신격화가 부정되었으며, 재벌 해체와 농지 개혁과 같은 급진적인 민주화 조치들이 단행되었다. 이 모든 개혁의 정점에는 '평화헌법' 제정이 있었다. 전쟁 포기와 군대 불보유를 명시한 헌법 제9조는 일본이 군국주의와 영원히 결별하겠다는 상징적인 선언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한 개인의 이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전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거인의 대립, 즉 냉전이라는 새로운 질서 속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한반도에서는 남과 북이 이념의 칼날을 맞대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급변 속에서 미국의 대일 정책은 근본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일본을 철저히 비무장화하고 민주화하려던 초기 구상은 퇴색하고, 일본을 '아시아의 병참 기지'이자 '반공의 보루'로 재건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정책 전환의 결정적인 계기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이었다. 한반도에서 터진 열전(熱戰)은 역설적으로 패전국 일본에게는 '신이 내린 선물(神風)'과도 같았다. 전쟁 특수를 통해 일본 경제는 기적적으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미군의 군수물자 조달과 수리를 위한 주문이 쇄도했고, 일본의 공장들은 24시간 내내 쉴 틈 없이 돌아갔다. 한국인의 피와 눈물이 일본의 경제 부흥을 위한 자양분이 된 셈이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일어났다. 한국전쟁에 주일미군이 대거 투입되면서 일본 열도의 방위 공백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맥아더는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는 결단을 내린다.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경찰예비대가 창설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 조직은 이후 보안대를 거쳐 1954년, 육상, 해상, 항공 자위대로 확대 개편되며 오늘에 이른다. 평화헌법 제9조의 숭고한 이념은 '자위'라는 교묘한 수사 뒤에 가려진 채, 사실상 무력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맥아더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일본을 군국주의의 망령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지만, 냉전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현실 앞에서 자신의 이상을 스스로 꺾어야만 했다. 그의 손에 의해 칼을 내려놓았던 일본은, 역설적으로 그의 용인 하에 다시 칼자루를 쥐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A급 전범을 포함한 구 일본 제국의 엘리트들은 대거 사면, 복권되어 정계와 재계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그들은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오히려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했다.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와 재무장 움직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평화헌법을 '점령군이 강요한 족쇄'로 규정하고, '보통 국가'로의 회귀를 외친다.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전환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며, 유사시 적 기지를 선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 한다. 이러한 행보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틈타 기사회생하고, 냉전의 논리 속에서 재무장의 길을 걸어온 일본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일본의 평화는 온전히 그들 스스로의 성찰과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변국의 희생과 냉전이라는 특수한 국제 정세가 만들어낸 위태로운 균형의 산물이다. '푸른 눈의 쇼군'이 남기고 간 꺾인 칼은 결코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 다시 날을 세우고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위협이다.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던지는 망언은 바로 그 칼날이 우리의 목을 겨누고 있음을 알리는 섬뜩한 경고음이다.

제3장: 신들의 나라, 그 뒤틀린 제단 - 야스쿠니 신사와 역사 수정주의의 심장

도쿄의 심장부, 황거가 내려다보이는 구단자카 언덕 위에는 거대한 도리이(鳥居)가 하늘을 향해 굳건히 서 있다. 이 문을 지나면 마주하게 되는 공간,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는 단순한 종교적 성역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 근현대사의 영광과 치욕, 그리고 뒤틀린 욕망이 응축된 상징적 공간이자, 일본 우익 사관의 살아있는 심장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기원은 1869년, 메이지 천황의 명으로 세워진 '도쿄 초혼사(東京招魂社)'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신 전쟁에서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시설은,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며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함께 그 위상이 격상되었다.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의 '야스쿠니'라는 이름은 1879년 메이지 천황이 직접 하사한 것으로, 이때부터 신사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英霊)'들을 신(神)으로 모시는 국가신토의 핵심 시설로 자리매김했다.

문제는 야스쿠니가 추모하는 '영령'의 범위에 있다. 이곳에는 보신 전쟁의 전사자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14명의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배하에서 강제 징용되어 전쟁터로 끌려가 희생된 한국인과 대만인 5만여 명의 위패 또한 유족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합사되어 있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가 단순히 전몰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아니라,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들을 영웅으로 둔갑시키는 역사 왜곡의 현장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위치한 전쟁박물관 '유슈칸(遊就館)'은 이러한 역사 왜곡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유슈칸의 전시 내용은 태평양 전쟁을 '서구 열강의 압제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기 위한 자위적 전쟁'으로 규정하고, 난징대학살과 같은 명백한 전쟁범죄는 축소하거나 부정한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행위를 영광스러운 역사로 배우고, 전범들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로 추앙하게 된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이러한 역사 인식을 국가적으로 공인하고, 나아가 주변 피해국들의 상처를 헤집는 행위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들은 "전몰자에 대한 추모는 어느 나라에서나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강변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기만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독일이 히틀러의 묘에 참배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전범과 희생자를 한곳에 모시고,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시설에 국가 지도자가 참배하는 행위는 결코 '보편적인 추모'의 범주에 속할 수 없다.

새롭게 등장한 일본의 여성 총리가 과거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던 것은, 그녀가 이러한 우익 사관에 깊이 동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그녀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과거사에 대한 성찰의 대상이 아니라, '자주 국가' 일본의 당연한 권리이자 자존심의 문제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이 어정쩡하니 한국이 기어오른다"는 식의 망언으로 이어지며, 한일 관계를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몰아간다.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라는 거울을 통해 일본 사회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곳에는 패전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퇴행적 민족주의,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고 역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구성하려는 이기적인 역사 수정주의, 그리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힘의 논리로 재단하려는 위험한 제국주의적 향수가 뒤섞여 있다. 야스쿠니의 제단에 피어오르는 향불은 죽은 자들을 위한 진혼의 연기가 아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미래를 암흑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망령들의 귀환을 알리는 불길한 봉화다. 우리가 이 봉화의 의미를 직시하고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는 한, 역사의 비극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결론: 깨어있는 파수꾼의 눈으로, 역사의 지평선을 감시하라

역사의 강물은 결코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때로는 역류하고, 때로는 소용돌이치며, 때로는 잠잠한 수면 아래 위험한 암초를 숨기고 있다.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그녀의 과거 망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거대한 변곡점 위에서, 깨어있는 파수꾼의 눈으로 일본이라는 배가 나아갈 항로를 예리하게 주시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역사의 심층을 탐사했다. 만주국의 괴뢰적 심장에서 잉태된 기시 노부스케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어떻게 그의 외손자 아베 신조에게로 이어졌으며, 패전의 잿더미 속에서 일본을 '개조'하려던 맥아더의 이상이 냉전과 한국전쟁이라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좌절되고 변질되었는지를 목도했다. 그리고 그 모든 뒤틀린 역사의 귀결점이자 현재 진행형의 위협인 야스쿠니 신사라는 제단이 어떻게 일본 우익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일본의 새로운 지도자가 과거의 망언을 되풀이하며 우경화의 길로 폭주할 것인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모색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의 선택이 일본 국내 정치의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감정적인 대응이나 섣부른 낙관론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역사적 인식에 기반한 냉철한 현실 감각과,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잃지 않는 단호한 외교적 자세다.

첫째, 우리는 역사 교육을 강화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 지배가 남긴 상처를 잊지 말아야 한다. 망각은 역사의 가장 큰 적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진부하지만 엄중한 경구를 다시금 가슴에 새겨야 한다.

둘째, 우리는 일본 내 양심적인 시민 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일본이 모두 우익적인 것은 아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촉구하는 건강한 목소리 또한 존재한다. 그들과 손잡고 우경화의 흐름에 맞서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셋째, 우리는 국제 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일본의 역사 왜곡과 재무장 시도를 견제해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은 단순히 한일 양국 간의 과거사 문제를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과 평화의 문제임을 국제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 한다. 튼튼한 안보와 안정적인 경제, 그리고 성숙한 민주주의는 그 어떤 외교적 수사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일본이 우리를 감히 얕보지 못하도록, 그리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우리의 내실을 다지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그러나 이 새벽이 희망의 빛으로 가득 찰지, 아니면 다시금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역사의 지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우리의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준엄한 사명이다. 망각의 잠에서 깨어나, 깨어있는 파수꾼의 눈으로 역사의 지평선을 감시하자. 그리하여 다시는 이 땅에 통한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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