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킹 현대 코미디 액션 장편소설
1. 예지몽
아주 오래전, 유럽의 어느 조용한 시골에 파벨이라는 80대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양들을 몰고 길을 가던 중, 따가운 햇볕에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젊은 마태오 신부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좋은 한낮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파벨 아저씨! 오늘도 여전히 들판으로 가는 중이군요?” 신부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노인을 바라봤다.
“네, 저야 늘 변함이 없습니다. 10살 때부터 해 오던 양치기를 70년이 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제 은퇴하고 쉬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마태오 신부는 구부정한 모습에 걷는 것조차 다소 힘들어하는 그에게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쉬면 뭐 하겠습니까? 그저 저는 주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제 자식과 다름없는 이 양들을 돌보며, 삶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멘.”
“늘 변함없는,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신부와 파벨은 동시에 눈을 감고 성호를 그은 다음 기도를 복창하였다.
“아, 그런데 안 그래도 신부님께 한 가지 여쭈어볼 게 있었는데, 늘 깜빡깜빡하다가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뭐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고, 어쩌면 별스럽다고 흉보지 않을까 하여 사실, 좀 조마조마하기도 합니다만….” 파벨은 주춤거리며 말을 멈추었다.
“제게는 어떤 질문도 소중하기만 할 뿐입니다. 파벨 아저씨. 그러므로 허심탄회하게 가슴속에 품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으셔도 좋습니다.” 신부는 지극히 낮은 모습으로 파벨의 푸른 눈을 쳐다봤다.
“그러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이렇게 이해해주시니 저로서는 한결 마음 편합니다. 그러니까…. 음…. 제 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파벨은 기억을 차분히 정리하는 듯 눈을 위로 치켜뜨고 잠시 머뭇거렸다.
“아 꿈요?”
“네, 꿈입니다. 최근에 늘 반복적으로, 똑같은 악몽을 꾸다가 깨곤 합니다. 늙은 육신이다 보니 기력이 쇠하고 피로를 늘 달고 살기는 하지만 정신만큼은 젊은이 못지않게 여전히 강하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지만, 이 악몽은 그저 불길하기 짝이 없고 불편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신부님.”
“어떤 꿈이기에 그러한가요? 파벨 아저씨.”
“어떤 장례식입니다. 그 장면이 생생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물론 저의 장례식은 아닙니다. 무척 고귀하시고 높으신 분의 장례식입니다. 왜냐하면 낮고 어두운 하늘 아래 수많은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로 운구 행렬이 이어집니다. 분명 한 사람의 죽음일 텐데, 그 뒤를 따르는 이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리고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는 곧 쓰러져 까무러칠 정도의 슬픔이 담긴 눈물이 맺혔습니다.”
“혹시, 운구 행렬의 맨 앞에 펄럭이는 휘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이 나시는가요?” 신부는 흥미가 당기는 듯한 눈빛으로 파벨에게 물었다.
“네, 물론 당연히 생각이 납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꿈을 열흘간 하루도 빠짐없이 꾸었습니다. 이제는 꿈속의 거리를 장식하는 가로수의 이파리 개수까지 셀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음…. 그 첫 휘장은 붉은 바탕에 녹색과 푸른 수로 만든 용이 등장하고 그 뒤를 따르는 다섯 휘장은 세 갈래로 찢어진 면에 각각의 사자가 포효하는 형상입니다. 신부님.”
“그럼, 왕입니다. 왕의 장례식입니다.” 신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파벨을 쳐다봤다.
“왕이라고요?” 파벨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으로 믿기지 않는 눈빛을 반짝였다.
“네, 지금의 왕이신, 빌헤름 표도르 7세는 카사카르와 누바스키의 군주이신 아드롬 2세의 장남으로, 시조이신 당탈르 9세가 젊은 시절 세 마리의 사자를 때려눕히고 나라를 건설하였다 해서 널리 퍼진 휘장이고, 표도르 국왕이 취임하는 그 해, 하늘에서 갈라지고 용의 형상을 한 번개가 천지 사방을 메아리쳤다고 해서 만들어진 왕의 으뜸 휘장입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파벨은 눈을 동그랗게 떤 채 신부를 쳐다봤다.
“저는 출신은 미혹하고 고아로 세 살 때까지 자랐으나 운 좋게 대관자의 양아들로 입양이 되어 늘 가까이에서 왕족을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게다가 표도르 국왕의 다섯째 아드님이신, 나르히르 왕자님은 저와 둘도 없는 절친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시골에 신부님으로 부임하셨는지요?” 파벨은 안타까운 표정이 되어 신부를 바라봤다.
“그건, 순전히 저의 뜻입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글 읽기와 쓰기, 그리고 주님의 경배에 보내는 시간만이 진정한 제 삶의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바람이 온순하고 풍경이 목가적인 세상에 빛을 쏘이며 앎의 경이에 다다르기를 늘 갈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그야말로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고요.”
“아,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네, 하여튼 감사합니다. 늙은이의 주책맞은 꿈을 들어주셔서…. 그럼 이만 저는 가는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
“아, 그런데 혹시 아저씨 꿈에 나타난 곳을 이전에 실제로 가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에구, 저는 제 팔십 평생 이 마을을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꿈에 보는 모든 도시와 풍경,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이 저에게는 모두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어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를 정도였습니다. 신부님.”
“거참, 이상하고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혹시 이전에도 이렇게 반복적으로 꿈을 꾼 적이 있으신가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신부님. 저는 대체로 일찍, 깊이 잠드는 편이라 사실 꿈을 잘 안 꾸었습니다. 꾸더라도 흐릿하여 잊어버리거나 짧고 황당한 것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생생하게 꿈을 꾼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신부님.”
“아, 네, 잘 알겠습니다. 파벨 아저씨. 아무튼 이후라도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저에게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당연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부님. 그럼 이만….”
그렇게 헤어진 파벨은 양을 몰고 신선한 목초가 무성하게 자란 들판으로 갔다.
그리고 보름 뒤, 이 작은 마을의 유일한 관공서이자 마을 회관에 검은 깃발이 게양되었다. 실제로 빌헤름 표도르 7세가 서거하신 거였다. 이 소식을 접한 신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주 전 파벨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래서 신부는 급하게 파벨을 찾아갔다.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파벨의 집은 오두막에 가까웠다. 마당에는 닭, 오리, 고양이, 개가 뛰어다녔고 뒷 마당에는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날은 어느새 상당히 무더워져 신부는 땀이 흠뻑 젖은 채 대문을 두드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인기척이 들리며 노인이 문을 빼꼼히 열었다. 그리고 신부를 보고는 깜짝 놀라 달려 나왔다. 사실 지금까지 이 동네 사람 누구도 파벨의 집을 방문하는 이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파벨 아저씨.”
“오! 신부님께서 어떤 일로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네, 한가지 전할 말씀이 있어서 들렀습니다. 일전에 저에게 들려주신 꿈 말입니다….”
“아, 네. 꿈. 제가 자주 꾼다는 그 꿈 말씀인가요?”
“네, 맞습니다. 그 장례식 꿈…. 그런데 사흘 전 실제로 국왕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서거했다면?”
“네, 왕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파벨은 뭐에 맞은 듯 비틀거리며 한걸음 물러났다.
“이런, 불경스러운 짓을 내가 저질렀다니….” 파벨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신부님께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신부는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건, 파벨 아저씨의 잘못이 절대 아닙니다. 단지 주님의 뜻이 반영된 결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심려하시지 마시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이 무지렁이로 살아온 저에게 일어난단 말입니까?”
“어찌, 어리석은 인간이 높으신 주님의 뜻을 한치라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받아들이시고 기도하심으로 정성을 보살피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신부님, 그럼 그렇게 알고 간절한 기도와 참회의 묵송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하신 분이 이곳까지 애써 오셨으니….”
“아닙니다. 파벨 아저씨. 제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질문을 드리자면….”
“네, 신부님. 무엇이 궁금합니까?”
“혹시, 아직도 그 꿈을 계속 꾸시는 가요?”
“아이고, 아닙니다. 신부님. 요즈음은 아주 편하게 잘 자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신부님께 말씀을 드린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저는 어떤 꿈도 꾸지 않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무척 다행입니다.”
“네, 안 그래도 한번 찾아뵙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저의 악몽을 싹 고쳐주셨으니깐요. 신부님.”
“네, 그럼 안심입니다. 파벨 아저씨. 그럼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이만….”
“네, 감사합니다. 신부님….”
신부는 파벨에게 작별을 하였고 그해 겨울이 오기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위가 막 시작되어 마을이 얼어붙기 시작한 새벽에 파벨은 급히 성당 옆 성직자 숙소의 문을 다급히 두드렸다.
“신부님! 신부님!” 어둡고 조용한 마을을 깨우는 듯한 소리에 동네 개들이 하나둘씩 짖기 시작했다. 신부는 자정 미사를 막 끝내고, 깊은 잠이 들었지만 계속되는 소음에 겨우 눈을 떴다. 그리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뼛속을 뚫는 찬바람이 쏜살같이 쏟아졌다. 그는 파벨을 알아채고 서둘러 문을 열어 그를 맞이했다.
“아, 네, 파벨 아저씨! 이 야심한 밤에 어쩐 일이십니까?” 신부는 칼칼한 목을 억지로 다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네, 신부님, 아무래도 지금 말씀드리지 않으면 또 까먹을 것 같아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을 깨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아, 네, 괜찮습니다. 파벨 아저씨. 뭔가 틀림없이 중요한 일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에구, 뭐 이게 중요한지 아닌지는 신부님의 뜻에 따르겠지만…. 제가 워낙 기억이 오락가락하는지라…. 지금 생각날 때 말씀드리지 않으면 또 한 며칠을 까먹을 것 같아서 이렇게 불편한 자리를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신부님.”
“네,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아저씨. 그래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꿈 이야기인가요?”
“네, 맞습니다. 제가 같은 꿈을 또 꾸기 시작했는데, 매일 아침이 되면 신부님께 말씀드려야지 하고선 오후가 되면 그만 까먹어버리고 또 다음 남 아침이면 생각나고…. 이러기를 사흘 내리 하다가 오늘은 새벽에 깨자마자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신부님.”
“아, 네, 어떤 꿈입니까? 또 왕과 관련된 꿈인가요?”
“아닙니다. 이번에는 우리 동네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동네?”
“네, 그렇습니다. 함박눈이 내린 날 아침입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색칠한 듯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신부는 궁금한 듯 고개를 파벨 아저씨에게로 바싹 다가가며 물었다.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한 무리의 군인이 마을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리곤 요?”
“우리 마을에 사는 모든 주민과 동물을 다 죽였습니다. 그 군인들이….”
“악몽이군요….”
“네, 저는 내리 사흘 동안 아침이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깼습니다. 추운 방에서 말입니다.”
“음…. 그 꿈이 현실이 된다면 불행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군요…. 하지만…. 아저씨도 잘 아시다시피 이곳은 지난 300년 동안 훌륭한 성품의 군주가 다스리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나라이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저는 전설에서나 전쟁을 들어 봤지 제 평생 전쟁은커녕 분란조차 일어나지 않은 소박하고 정겨운 마을에 살고 있다는 즐거움에 살고 있기는 합니다.”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마을을 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이렇게 어두운 새벽에 먼 길을 손수 오셔서….”
“아, 아닙니다. 괜히 신부님의 잠만 깨우고 또 괜한 걱정을 일으키게 한 것 같아서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아무튼 저는 오늘부터 또다시 꿈을 꾸지 않기를 바라며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오셨으니,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드시고 몸을 충분히 녹인 다음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찬 바람을 너무 많이 쐬시면 몸이 상할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혹시라도 모르니 꿈 이야기는 저와 아저씨만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파벨이 떠나고 난 뒤, 그날 아침, 꿈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린 신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파발마를 수도에 띄웠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접한 소식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성군으로 알려진 왕의 장례식이 끝나고 새 왕으로 등극한 하빈괘찬 17세는 나이가 겨우 일곱 살이었다. 그래서 왕의 섭정을 두고 친어머니와 왕비 간의 알력이 다툼으로 번지고 급기야 두 가문 간의 전쟁으로 확산하고 말았다는 거였다. 더욱 불안한 거는 이 마을을 호령하는 귀족이 바로 왕비의 가문이었다.
신부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마을 이장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동네 청년들을 소집했다. 우선 마을 입구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마을 곳곳에 꽹과리를 두었다. 그리고 마을 주민을 산속으로 이끌 선발대를 훈련하고 피난처에는 최소한의 양식을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언대로 함박눈이 펑펑 내린 다음 날 아침, 군인들이 쳐들어왔다. 마을 주민들은 연습한 데로 신속하게 피신하였다. 그리고 산속 피신처에서 자신들의 마을이 불타오르는 장면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그렇게 다들 목숨을 부지한 마을 주민들은 신부님께 무한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파벨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신부는 파벨이 예언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삽시간에 소문이 퍼질 것이고 그러면 그의 평화로운 삶도 깨질 게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신부는 매주 두 번씩 은밀히 파벨을 찾아가서 그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태오 신부는 여전히 파벨의 꿈이 정말 예언이 맞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에 대해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더욱 궁금한 것은, 이러한 예언을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였다. 그리고 그러한 신부의 궁금증은 이내 확신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파벨은 또다시 신부를 찾아와 다급한 사연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선한 왕비가 독살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신부님!”
“감히 누가 왕비를 시해한단 말입니까?”
“시종입니다. 이마에 붉은 점이 박힌 시종이 독초를 끓인 차를 대령합니다. 신부님!”
신부는 그 즉시 가장 빠른 말을 몰아 수도로 갔다. 그리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나르히르 대군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시종은 즉시 잡혔고 그의 숙소에서 증거물이 나왔으며, 문초 끝에 모든 게 사실이라는 자백을 받아 내었다. 신부는 안심하고 떠나면서 친구에게 이 사실을 절대로 발설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파벨은 예언가이며 그의 예언은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진실을….
그렇게 세월은 흘러, 어느덧 아흔이 된 파벨은 신부의 축복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신부의 비밀 서재에는 파벨의 꿈을 기록한 10권 분량의 책이 쌓였다. 그 속에는 수많은 예언이 적혔다. 그리고 신부는 생각했다.
혼자 힘으로 이 모든 예언을 해석하고 준비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하기란 정말 힘들다는 사실을…. 그래서 은밀히 바티칸에 편지를 보냈다. 몇 주 후, 바티칸에서 온 답장에 따라 신부는 로마로 향했다.
바티칸에서 교황을 알현한 신부는 그간, 파벨에 관한 그의 경험을 모두 사실대로 들려주었다. 그리고 책을 내밀었다. 그는 그동안 발생한 사건과 관련하여 책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을 하나씩 비교해가며 설명했다. 교황은 놀라움과 당혹함을 감출 수 없는 얼굴로 신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신부가 지적한 예언은 모두 12가지로 하나도 틀리지 않고 사실로 드러났다. 그중에는 전임 교황의 갑작스러운 서거도 실려 있었다.
곧이어 긴급 비밀회의가 열렸다. 바티칸에서 기적 혹은 설명할 수 없는 현상 그리고 영매, 퇴사를 담당하는 극소수의 추기경들이 소집되었다. 그들은 사흘 낮 사흘 밤을 지새우며 파벨의 꿈을 모두 훑어보고, 놀라움과 동시에 불안감 그리고 신에 대한 경외를 논했다.
나흘째 되던 날, 마침내 이 예언서들은 모두 지하 깊숙이 은밀한 장소에 봉인이 되었다. 그리고 파벨의 예언서를 연구하는 7인의 학자가 선발되었다. 그들은 침묵의 서명을 한 뒤, 매달 1회 모여서 예언서의 해석과 대비책을 정하고 교황에게 조언하도록 명 받았다. 이 모임의 이름을 <파벨코란데오>로 명하였고, 책임자는 마태오 신부가 맡았다. 만약 7인의 학자 중 누군가가 죽게 되면 나머지 6인이 의논하여 새로운 학자를 뽑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비밀회의는 천 년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교황과 극소수 추기경을 제외한 누구도 이 비밀 모임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교황에서 전하는 조언은 오직 말로만 전달하였고, 비밀을 누설하는 학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의 가족에게조차 발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염려하고,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준비하였다. 파벨의 꿈 중 가장 충격적인 예언이 곧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발점은, 로마에서 9,000km나 떨어진 대륙의 동쪽,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어느 초라한 원룸에서 비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