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남는 사람

by 남킹

끝까지 남는 사람 — 중봉 조헌과 나의 옛 상관에 대하여

1.

회색 빌딩 숲, 유리와 강철로 짜인 거대한 기계 장치 속으로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내 안에는 미명(未明)의 기대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성장이란 이름의 계단, 성취라는 훈장, 안정이라는 이름의 견고한 울타리, 그리고 언젠가는 내 존재의 가치를 오롯이 인정받으리라는 막연하지만 간절한 희망. 차가운 금속성 책상 하나가 나의 영토로 주어지고, 빳빳한 질감의 명함에 내 이름 석 자가 박히고, 거대한 전산망의 한 노드로 나의 존재가 입력되던 순간, 나는 이 거대한 세계의 진정한 일부가 되었다는, 어쩌면 순진했을지 모르는 믿음의 첫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숨결은 차가운 현실의 공기 속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희미하게 흩어졌다.

조직이라는 생태계는 교과서의 도표나 이상적인 청사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의 그물망이었고, 때로는 얼음장처럼 냉정했으며, 보이지 않는 저울 위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달고 비교하는 계산적인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일의 본질보다 사람의 관계도를 먼저 살폈다. 한 개인이 지닌 역량의 깊이보다, 그가 누구의 그림자 아래 서 있는지,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지를 먼저 가늠했다. 실력은 분명 통행료와 같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었다. 성실함은 미덕으로 여겨졌으나, 과도한 성실함은 때로 순진함으로 치부되거나 이용하기 좋은 약점으로 간주되어,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빠르게 터득했다.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침묵의 문법과 에둘러 말하는 화법, 적절한 시점에 한 발 물러서는 거리 감각을 익혔다. 필요한 만큼만 목소리를 내고, 분위기를 읽어 몸을 낮추고, 때로는 입을 굳게 다무는 것으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그것이 이 세계의 불문율이며, 모두가 암묵적으로 따르는 생존 방식이라 여겼다. 그렇게 나 자신을 조금씩 지워가며, 조직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맞춰 노 젓는 법을 익혀갔다. 내 안의 각진 부분들은 마모되었고, 뜨거웠던 열망은 적당히 식어갔다.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 혹은 이 세계에 적응하는 방식이라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2.

그러던 어느 날, 메마른 땅에 단비처럼, 혹은 예상치 못한 폭풍처럼, 그가 나의 상관으로 부임했다.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 특별할 것 없는 또 한 명의 관리자였다. 회색 슈트, 적당히 피로해 보이는 얼굴, 간결한 업무 지시. 다만 몇 가지 사소한 지점에서 그는 기존의 풍경과 미묘한 불협화음을 냈다. 그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좀처럼 시선을 피하는 법이 없었다. 그의 눈빛은 상대의 말을 온전히 담아내려는 듯 깊고 고요했다. 또한 그는 문장의 끝을 흐리지 않고 명료하게 맺었으며, 딱딱한 회의 시간에도 불필요한 농담이나 사적인 이야기로 분위기를 환기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존재는 때때로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히는 듯했다.

이러한 '다름'은 초반에 나에게 적잖은 불편함과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기보다는 원칙을 고수하려 했고, 흔히 말하는 '융통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의 태도는 때로 고지식하다 못해 답답하게 느껴졌고, 조직 내 암묵적인 규칙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를 두고 '벽창호 같다',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는 식의 뒷말이 오갔다. 나 역시 그의 경직성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말에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때조차, 그 말 속에 담긴 단단한 논리와 흔들림 없는 태도는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것은 단순한 고집이나 아집과는 다른, 마치 잘 벼린 칼날 같은 날카로움, 혹은 건물의 하중을 묵묵히 지탱하는 기둥과 같은 '뼈대' 같은 것이었다. 그의 말은 때로 불편했지만, 결코 가볍거나 공허하지 않았다. 그는 존재 자체로, 우리가 애써 외면하거나 잊고 지내던 어떤 가치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듯했다.

3.

그의 책상 한쪽 구석에는 늘 낡고 손때 묻은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표지가 해지고 책장이 누렇게 바랜, 누가 보아도 오래된 책이었다. 그 책의 제목은 '중봉집(重峯集)'이었다. 평소 그가 책을 가까이한다는 소문은 어렴풋이 들었지만, 하필이면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문집이라니. 현대 경영학 서적이나 트렌드를 다룬 책이 아닌, 수백 년 전 역사의 편린을 담은 고전이라니. 나로서는 의외였다. 그의 이미지와 쉽게 연결되지 않는 조합이었다.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어느 날 퇴근 무렵, 나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장님, 그 책… 중봉집이라고 쓰여 있던데, 어떤 책인가요? 왜 그 책을 읽으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의 질문은 다소 섣부르고 개인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의 대답이 궁금했다.

그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책에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평소의 그 고요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중봉 조헌 선생 말이군요. 저는 그분을… 개인적으로 존경합니다. 그는, 결국에는 패배를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패배를 선택한 사람. 그 생경한 표현이 망치처럼 내 머릿속을 울렸다. 이 아귀다툼 같은 조직 속에서, 아니 어쩌면 인생이라는 여정 전체에서, 우리는 늘 승리를 갈망하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승진이라는 더 높은 자리, 더 넓은 입지, 타인의 부러움을 사는 평판, 더 두둑한 연봉. 이 모든 것이 승리의 다른 이름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승리가 아닌 패배를, 그것도 '선택한' 패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미처 그의 말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는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낮고 진중해졌다. "세상에는 누군가는 이겨야만 하는 싸움도 있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되는 싸움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겨서는 안 되는 싸움일지도 모르죠. 조헌 선생은 바로 그런 싸움에서, 모두가 승산 없다고 등을 돌릴 때, 홀로 남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킨 사람입니다. 그는 현실적인 계산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려 했죠. 저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만, 결국 승리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승리 앞에서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잔잔한 파문처럼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승리한 자의 부끄러움. 그것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를, 그의 고지식함과 불편함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의 경직성은 더 이상 단순한 답답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파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굳건한 '의지'의 다른 표현이었고, 그의 불편함은 타협하지 않는 '방향'의 제시였다. 그는 나침반처럼, 늘 흔들림 없이 자신이 믿는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4.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부서는 실제로 거센 폭풍우의 한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새로 제정된 경영 방침과 윤리, 관련된 해석 문제로, 회사의 고위층과 우리 부서 간에 심각한 마찰이 발생했다. 문제는 복잡했고, 책임 소재는 불분명했으며,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회색 지대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우리 부서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윗선에서는 암묵적으로 우리 부서의 희생을 요구하는 듯한 압박을 가해왔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눈치를 살피던 그때, 그가 나섰다. 그는 관련 회의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 문제의 최종 책임은 부서장인 저에게 있습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망설임이나 계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그런 자세로 다음 회의를 준비했고,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우리 부서원들은 당황했고, 불안했다. 우리는 그를 만류했다. 그것은 명백히 승산 없는 싸움이라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설득했다. "팀장님,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괜히 정면으로 맞서지 마시고, 적당히 타협해서 실리를 챙기시는 게 현명합니다." "괜히 팀장님만 다치십니다. 조직이 원래 그런 곳 아닙니까." 여기저기서 걱정과 회유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진심 어린 걱정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가 무너지면 우리에게 닥칠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의 만류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그는 우리를 둘러보며 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 싸움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아마 질 확률이 높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적어도 이기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옳지 않은 것에 눈 감고 스스로를 속이며 진 사람들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패배하더라도, 우리가 왜 패배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분명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이상주의자의 공허한 외침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말은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어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 그의 말 속에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어떤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5.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직으로 밀려나듯 인사이동 조치를 당했고, 우리 부서는 공중분해되듯 구조가 변경되었다. 나는 다른 팀으로 흩어졌고, 다른 부서원들 역시 각자의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조직은 언제나 그랬듯, 표면적으로는 다시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조용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침묵과 미묘한 공백이 남았다. 누구도 그의 결정이나 행동을 대놓고 흉보지 않았다. 그의 고지식함을 비웃던 이들조차 그의 마지막 모습 앞에서는 말을 아꼈다. 그렇다고 누구도 감히 그를 흉내 내거나 따르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마치 조직이라는 흐름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외로운 섬처럼, 기억 속에 부유했다. 그의 존재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우리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나는 그 후로도 종종 그를 생각한다. 그가 업무적으로 눈부신 성과를 창출했거나, 남다른 수완으로 조직 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어찌 보면 평범한 관리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단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끝까지 자신의 자리에 서 있으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행동은 누군가에게는 극도의 비효율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고집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모한 용기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나 자신을 비춰보게 만드는,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 거울이었다. 그의 모습은 내가 현실과 타협하며 외면했던 내 안의 어떤 목소리를 끊임없이 되살려냈다.

6.

중봉 조헌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칠백 의병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관군조차 외면했던 싸움터에서, 그는 문신(文臣)의 몸으로 칼을 들고 나섰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그의 싸움은 무모했고, 결과적으로는 처참한 패배였다. 그의 죽음으로 전세가 뒤바뀐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과 그의 의로운 죽음은 패배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역사 속에 깊이 새겨져 남아 있다. 그는 전쟁에서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시간 속에서, 역사 속에서는 패배하지 않고 굳건히 남아 있다.

그는 후세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이겨서 살아남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자신의 문집에 "의(義)를 따르다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從容就死是當然)"라고 담담히 적었을 뿐이다.

나의 옛 상관도 그러했다. 그는 조직 내 권력 투쟁이나 현실적인 계산에서 이기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기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분명 우리들 기억 속에, 그리고 내가 나아갈 길을 고민하는 순간마다 어김없이, 남아 있다. 그가 잠시나마 우리 곁에 있었기에, 우리는 효율과 실리라는 단어 앞에서 최소한 한 번쯤은 신념과 양심이라는 다른 가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가 있었기에,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잠시나마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그의 존재는 메마른 땅에 잠시 내렸던 단비와 같아서, 비록 세상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발 딛고 선 땅이 아직 완전히 사막은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세상에는, 이기지 못하더라도, 아니 때로는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남아 있어야만 하는 자리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서 있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희미하게나마 빛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 역시 현실의 벽 앞에서 수없이 망설이고, 타협하고, 때로는 비겁하게 물러서곤 한다. 나는 아직 감히 그 자리에 섰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길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한 길인지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나 또한 그 길의 어딘가에서, 희미한 등불 하나를 밝히고,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다. 그가 남긴 거울 앞에서, 나는 여전히 나아가야 할 길을 묻고 있다.


8.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오월, 그 성찰의 아포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