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개혁(réforme)’은 하나의 선언이자, 그 자신에게 내린 고행의 칙령이었다. 그는 파리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자발적으로 퇴장했다. 칼과 비단 양말을 팔아넘긴 행위는, 단순한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세속적 야망이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던지는 상징적 할례(割禮)였다. 그는 악보 필사라는, 정직하지만 고된 노동의 반복 속에서 영혼의 구원을 찾으려 했다. 그의 손가락은 이제 귀부인의 섬세한 손을 탐하는 대신, 펜촉을 쥐고 하루 열 시간 이상씩 음표를 그려나갔다. 잉크 냄새와 굳은살, 그리고 굽은 등. 이것이 그가 자신의 철학을 육체로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스피노자가 렌즈를 깎으며 범신론적 우주를 사유했듯, 악보의 질서정연한 격자 위에서 인간 사회의 부조리한 무질서를 정화하려 했다.
이 새로운 삶은 그에게 일종의 스토아적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더 이상 타인의 시선(regard d'autrui)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노동의 대가로 빵을 얻었고, 테레즈의 묵묵한 헌신 속에서 어떠한 지적, 감정적 채무도 없는 관계의 안식을 누렸다. 그러나 이 평온의 이면에는, 거세된 예술가의 권태와 억눌린 야망의 미세한 경련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비록 그 자신이 그것을 경멸했을지라도, 박수갈채와 지적인 투쟁, 그리고 위험한 사랑의 자극을 갈망하고 있었다. 필사실의 단조로운 리듬은 그의 혈관을 흐르는 격정의 교향곡을 잠재우기에는 너무나 미약했다.
바로 그 내면의 균열을, 파리의 가장 능숙한 영혼의 사냥꾼이 놓칠 리 없었다. 마담 데피네(Madame d'Épinay). 그녀는 루소가 한때 유영했던 살롱 세계의 여왕 중 한 명이었으나, 마르키즈 드 프랑쾨유와는 다른 종류의 권력자였다. 그녀의 힘은 요부(妖婦)적인 매력이 아니라, 모성애를 가장한 소유욕과 자비를 위장한 통제욕에서 나왔다. 그녀는 재능 있는 남자들을 자신의 행성 주위를 도는 위성으로 만드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루소의 이 ‘개혁’이, 실은 세상의 몰이해에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투정임을 간파했다. 그녀는 그의 ‘곰’ 같은 야성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보살핌과 완벽한 이해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루소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해왔다. 그녀의 남편이 소유한 몽모랑시(Montmorency) 숲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은둔처, ‘에르미타주(l'Ermitage)’를 그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곳은 한때 버려진 작은 오두막이었으나, 그녀는 루소를 위해 그곳을 완벽한 철학자의 낙원으로 개조해놓았다. 과일나무와 채소밭이 딸린 작은 정원,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아늑한 서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혐오하는 파리의 소음과 위선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된, 깊은 숲의 침묵.
이 제안은 루소의 영혼 깊숙한 곳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뱀이 이브에게 선악과를 내밀었을 때와도 같은,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그의 이성은 경고했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예속이다. 금박을 입힌 새장일 뿐이다. 후원자의 자비에 기대어 사는 삶은, 악보 필사의 정직한 가난보다 더 굴욕적이다. 그는 디드로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디드로는 냉소적으로 충고했다. "자유로운 인간은 타인의 선물을 받지 않는 법일세. 당신이 그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순간, 당신의 철학은 위선이 되고, 당신은 그 부인의 애완 곰이 되는 걸세."
그러나 루소의 상상력은 이미 몽모랑시의 숲을 헤매고 있었다. 그는 도시의 시궁창 냄새 대신, 젖은 흙과 이끼의 향기를 맡았다. 마차 바퀴의 소음 대신,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을 들었다. 에르미타주.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시(詩)였다. 그곳이야말로 그가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지상에 현현한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다시 한번 철학적 논리로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예속이 아니라, 문명으로부터의 진정한 독립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나는 그녀의 집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품을 빌리는 것이다. 그는 디드로의 충고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도시인의 편견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는 결국 에르미타주로 들어갔다. 그가 테레즈와 그녀의 어머니를 데리고 파리를 떠나, 숲 속의 새로운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이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한 모세와도 같다고 느꼈다. 오두막은 그의 상상보다 더 완벽했다. 창문마다 담쟁이덩굴이 드리워져 있었고, 벽난로에는 장작이 정갈하게 쌓여 있었다. 서재의 창밖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숲의 녹색 바다가 넘실거렸다.
그날 밤, 그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깊고 평화로운 잠을 잤다. 그는 꿈속에서, 자신이 한 마리의 새로 변해 숲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그러나 그 꿈속에서조차, 숲의 가장 높은 나뭇가지 위에는 마담 데피네가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치고, 그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맺은 이 ‘숲 속의 계약’은, 그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동시에, 그를 한 여성의 사적인 소유물로 만드는, 가장 교묘한 형태의 불온한 계약이었다.
에르미타주에서의 첫 몇 달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행복한 시기였다. 그는 문명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숲 속을 산책했다. 그는 맨발로 이슬 맺힌 풀밭을 걸었고, 그의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오는 대지의 차갑고 축축한 생명력을 느꼈다. 그는 식물학에 심취했다. 그는 돋보기를 들고 허리를 숙여, 이름 모를 야생화의 섬세한 수술과 암술을, 이끼의 복잡한 포자낭을 관찰했다. 그는 식물들을 채집하고, 그것들을 압착하여 표본을 만들었다. 이 행위는 단순한 과학적 탐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무한한 다양성과 질서 속에 자신을 귀의시키려는, 범신론적(汎神論的)인 명상 행위였다. 그는 각각의 식물에서, 신(神)의 필체를, 즉 데우스 시브 나투라(Deus sive Natura, 신 즉 자연)의 현현을 읽어냈다.
이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그의 사상은 폭발적으로 만개했다. 그는 펜을 들어, 『인간 불평등 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의 집필을 시작했다. 이제 그의 주장은 더 이상 막연한 웅변이 아니었다. 그것은 숲의 논리, 즉 자연의 법칙에 근거한, 차갑고 정교한 분석이었다. 그는 이 푸른 침묵 속에서, 사유재산의 기원과 정부의 탄생,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쇠사슬을 만들어 자신을 묶게 되었는지를, 마치 외과의사가 시체를 해부하듯 냉정하게 추적해나갔다.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작품이 잉태되고 있었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산물이었다. 그는 숲의 고독 속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사랑의 환영들을 불러냈다. ‘마망’의 모성적인 품, 마르키즈의 퇴폐적인 유혹, 그리고 그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순수하고 이상적인 사랑. 이 모든 감정의 파편들이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연애 서사시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줄리, 또는 신 엘로이즈(Julie, ou la Nouvelle Héloïse)』였다. 그는 평민 출신의 가정교사 생 프뢰(Saint-Preux)와 그의 귀족 제자 줄리 데탕주(Julie d'Étanges)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계급과 인습적 도덕을 초월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권리를 옹호했다.
그는 생 프뢰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그는 줄리라는 이상적인 여인상을 창조하며, 그녀의 입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게 했다. 그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신의 창조물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Pygmalion)처럼, 자신이 빚어낸 허구의 세계 속에서 현실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완전한 감정적 합일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 창작의 낙원에도, 현실의 뱀은 어김없이 존재했다. 마담 데피네는 종종 예고 없이 에르미타주를 방문했다. 그녀는 빵과 포도주, 그리고 파리의 최신 가십거리를 잔뜩 싣고 와, 그의 고독을 방해했다. 그녀의 방문은 호의를 가장한 감시였다. 그녀는 그의 책상을 훑어보고, 그의 원고에 대해 물었으며, 그의 생활을 사사건건 통제하려 들었다. 그녀의 존재는 이 낙원이 결코 그의 것이 아님을, 그가 이 숲의 주인이 아니라 세입자일 뿐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테레즈와 그녀의 어머니는 또 다른 현실의 무게추였다. 루소가 숲의 정령들과 교감하고 있을 때, 그들은 채소밭을 가꾸고, 닭에게 모이를 주고, 그의 양말을 꿰매는, 지극히 속된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특히 테레즈의 어머니는, 루소의 철학적 사유를 한심하게 여기며, 그가 더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그녀의 존재는 루소에게, 자신이 아무리 고상한 자연의 원리를 사유한다 해도, 결국 이 두 여인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家長)이라는 비루한 현실을 일깨웠다.
이 위태로운 균형을 결정적으로 파괴하게 될 운명의 인물들이 그의 세계로 들어온 것은, 그가 에르미타주에 정착한 지 일 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들은 마담 데피네의 이웃이자, 루소의 친구였던 생 랑베르(Saint-Lambert)와, 그의 연인인 소피 두데토(Sophie d'Houdetot) 백작 부인이었다.
생 랑베르는 시인이자 군인이었다. 그는 점잖고 교양 있는 신사였지만, 그의 시만큼이나 그의 열정 또한 다소 상투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루소는 그를 친구로 여겼지만, 그의 영혼의 깊이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문제는 소피였다.
그녀가 처음 에르미타주를 방문한 것은, 어느 늦봄의 오후였다. 생 랑베르는 군무(軍務)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녀는 혼자 말을 타고, 숲길을 달려왔다. 루소는 정원에서 약초를 다듬다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숨을 멈췄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은, 그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모든 여인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소피는 전통적인 의미의 미인이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은 약간 길었고, 피부는 햇볕에 그을려 있었으며, 눈은 약간 사시(斜視) 기미가 있었다. 그녀는 파리의 귀부인들처럼 완벽하게 치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승마복 차림이었고,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려 있었으며, 얼굴에는 분가루 대신 건강한 혈색이 감돌았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정적인 완성미가 아니라, 동적인 생명력에 있었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은 조금 서툴고 각이 졌지만, 그 안에는 꾸밈없는 솔직함과 자유로운 영혼의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그녀는 말에서 내리며, 약간 비틀거렸다. 그녀는 루소를 보고, 수줍게 웃었다. 그 미소는 그녀의 모든 외모적 결점을 잊게 만드는, 무장해제시키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슈 루소,"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했고, 혀 짧은 소리가 섞여 있었다. "당신이 바로 이 숲의 정령(génie)이시군요. 생 랑베르가 당신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 몰라요."
루소는 그 순간,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소피 두데토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매일 밤 자신의 원고 속에서 창조하고 사랑해온, 그의 이상적인 여인, 줄리 데탕주였다. 소피의 외모적 불완전함, 그녀의 솔직한 태도,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 이 모든 것이 그가 상상 속에서 줄리에게 부여했던 바로 그 특질들이었다. 허구가 현실을 앞질러, 현실이 허구를 모방하는, 기묘한 인식론적 전도(顚倒)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사랑에 빠졌다. 소피라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소피의 육체를 빌려 현현한 자신의 창조물, 줄리라는 이데아(idea)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오두막으로 안내했다. 그는 그녀에게 차가운 우유와 갓 딴 산딸기를 대접했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시와 음악, 그리고 영혼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루소는 그녀가 자신의 모든 사상을, 심지어는 자신이 아직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미묘한 감정의 결까지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그녀는 그의 완벽한 독자이자, 그의 영혼의 쌍둥이(Doppelgänger)였다.
그날 이후, 그들의 만남은 거의 매일같이 이어졌다. 생 랑베르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숲은 그들 둘만의 비밀스러운 왕국이 되었다. 그들은 함께 숲 속 깊은 곳을 산책했다. 루소는 그녀에게 야생화의 이름을 가르쳐주었고,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지은 서툰 시를 읽어주었다. 그들의 손이 ‘우연히’ 스칠 때마다, 그의 온몸에는 달콤한 전율이 흘렀다.
어느 비 오는 오후, 그들은 숲 속의 작은 동굴에서 비를 피하게 되었다. 좁은 공간 안에서, 그들의 몸은 어쩔 수 없이 맞닿았다. 그녀의 젖은 옷에서 풍겨 나오는, 비와 흙과 그녀의 체취가 뒤섞인 냄새가 그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동굴 밖으로는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고, 그 빗소리는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를 차단하고 그들 둘만을 남겨두는 커튼처럼 느껴졌다.
루소는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다. 그는 그녀가 바로 자신의 줄리이며, 자신은 그녀의 생 프뢰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며, 이 사랑은 사회의 모든 법과 도덕을 초월하는, 신성하고 운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소피는 그의 고백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 역시 그에게 깊이 이끌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생 랑베르를 사랑했고, 그에 대한 의리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루소의 사랑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육체적인 관계가 아닌, 순수한 영혼의 결합으로 승화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기이하고 플라토닉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연인이었지만, 결코 입 맞추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갈망했지만, 결코 서로의 몸을 탐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편지와 시, 그리고 숲 속에서의 긴 산책과 깊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육체적 금욕은, 오히려 그들의 감정을 더욱 격렬하고 순수한 형태로 증류시켰다. 루소는 이 금지된 사랑의 고통 속에서, 지극한 영적 쾌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문명의 부당한 억압에 저항하는 순교자의 쾌감을 맛보았다. 그는 이 사랑의 서사를, 『신 엘로이즈』의 마지막 장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러나 그들의 순수한 영혼의 왕국은, 현실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숲에는 귀가 있었다. 하인들은 수군거렸고, 소문은 뱀처럼 숲을 기어 나와 마담 데피네의 귀로, 그리고 파리의 살롱으로 퍼져나갔다. 루소가 친구의 연인을 유혹했다는, 이 배은망덕한 이야기는 파리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스캔들이었다.
마담 데피네는 질투와 분노에 휩싸였다. 그녀는 자신의 은둔처가, 추잡한 연애 사건의 무대가 된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는 루소의 행위가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겼다. 디드로는 친구의 어리석음에 절망했다. 그는 루소에게 찾아와, 이 위험한 관계를 청산하고 현실로 돌아오라고 충고했다.
"자네는 지금 허구와 사랑에 빠진 걸세!" 디드로가 외쳤다. "그 여자는 자네의 줄리가 아닐세. 자네는 지금 자네 자신과, 자네의 소설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망치고 있단 말일세!"
그러나 루소는 더 이상 친구의 충고를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세상의 모든 오해와 비난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신성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디드로를, 자신들의 숭고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속물이라고 비난했다.
균열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담 데피네는 제네바 여행에 루소가 동행할 것을 명령했다. 그것은 호의를 가장한, 그의 충성심을 시험하려는 최후통첩이었다. 루소는 이를,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부당한 구속이자, 자신과 소피의 관계를 방해하려는 음모로 받아들였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의 거절은, 그가 마담 데피네와 맺었던 ‘숲 속의 계약’에 대한 공식적인 파기 선언이었다. 그는 자신의 낙원에서 스스로를 추방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소피를, 즉 줄리라는 자신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준 후원자와,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던 친구를 모두 적으로 돌렸다.
그는 에르미타주를 떠날 준비를 했다. 숲은 더 이상 위안의 공간이 아니었다. 모든 나뭇잎이 그를 감시하는 눈처럼 느껴졌고, 모든 바람 소리가 그를 비난하는 속삭임처럼 들렸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의 장소에서, 가장 큰 불행의 씨앗을 싹 틔운 것이다. 그는 자연으로 도피했지만, 결국 인간 관계라는 가장 복잡하고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그의 낙원은, 그렇게 잃어버린 낙원(Paradis Perdu)이 되었다. 그는 이제 더 깊은 고독과, 온 세상이 자신을 박해한다는 거대한 망상 속으로, 망명길을 떠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