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은 지리적 사건이 아니라, 정신의 상태다. 루소는 에르미타주라는 상실된 낙원(Paradis Perdu)을 등지고, 몽모랑시 숲의 더 깊고 외진 곳, 몽-루이(Mont-Louis)의 작은 별장으로 자신의 망명지를 옮겼다. 이곳은 마담 데피네의 세련된 감시가 아니라, 뤽상부르 공작(Maréchal de Luxembourg)의 투박하고 선의에 찬 후원 아래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더 이상 자연과의 순수한 교감을 위한 목가적 성소(聖所)가 아니었다. 이곳은 세계라는 거대한 적군에 맞서기 위한, 참호이자 요새였다. 창문은 이제 숲의 서정시를 담는 액자가 아니라, 적의 동태를 살피는 총안(銃眼)이 되었다. 바람 소리는 더 이상 자연의 속삭임이 아니라, 자신을 음해하는 자들의 음모가 실려 오는 불길한 전령처럼 들렸다. 그의 감각은 병적으로 예민해져, 모든 우연을 필연으로, 모든 호의를 위장된 적의로, 모든 침묵을 비난의 동의어로 해석하는, 편집증적 기호학(sémiotique paranoïaque)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고독은 이제 스토아적 평온이 아니라, 상처 입은 짐승의 고립이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를 재구성했다. 디드로, 그림(Grimm), 돌바크, 마담 데피네… 한때는 지성의 빛을 나누던 동지들이었던 그들은, 이제 그의 마음속에서 ‘코트리(coterie)’, 즉 그의 순수한 덕성을 시기하고 그의 명성을 파괴하기 위해 결성된 사악한 음모 집단으로 규정되었다. 그는 이 음모의 거미줄이 파리의 모든 살롱과 아카데미, 심지어는 왕궁의 복도에까지 촘촘히 쳐져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 거대한 연극의 유일한 희생자이자, 그들의 집단적 위선을 폭로할 유일한 진실의 증인이었다.
이 망상의 요새 안에서, 그는 자신의 상처를 핥으며 그것을 불멸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몰두했다. 그는 『신 엘로이즈』의 마지막 장들을 써 내려갔다. 그의 펜은 이제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그의 피와 눈물로 작동하는 복수의 무기였다. 그는 생 프뢰의 고뇌에 자신의 고독을, 줄리의 덕성에 소피의 (이상화된) 순수함을,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세속적인 장애물 속에 ‘코트리’의 사악한 음모를 투영했다. 원고의 페이지들은 그의 눈물로 여러 번 얼룩졌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와 현실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슬픔이 너무나 숭고하고, 자신의 사랑이 너무나 위대했기에, 이 타락한 세상이 그것을 질투하고 파괴하려 드는 것이라고, 거의 종교적인 확신에 차서 믿었다. 글쓰기는 자기 치유의 과정이자, 자기 신격화(神格化)의 위험한 의식이었다.
테레즈는 이 모든 지적인 광풍의 고요한 눈(œil du cyclone)이었다. 그녀는 그의 원고를 읽을 수 없었지만, 그의 영혼의 풍경을 읽을 수는 있었다. 그녀는 그의 격앙된 독백과 깊은 침묵, 그의 갑작스러운 눈물과 분노의 폭발을, 마치 예측 불가능한 날씨처럼, 그저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의 수프에 독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사로잡힌 그를 위해 먼저 음식을 맛보았고, 밤중에 망령이 자신을 찾아온다며 비명을 지르는 그의 등을 말없이 쓸어주었다. 그녀의 육체는 그의 형이상학적 고뇌가 정박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적 현실이었다.
어느 날 밤, 그는 악몽에서 깨어나 그녀를 거칠게 흔들었다. 그의 눈은 공포로 이성을 잃고 번뜩였다. 그는 그녀의 몸을 갈망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존적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확인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는 그녀의 낡은 슈미즈를 찢듯이 벗겨냈다. 그녀의 몸은 그의 철학적 담론의 무게에도, 그의 망상적 분노에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채, 여전히 대지처럼 견고하고 따뜻했다. 그는 그녀의 몸속으로, 마치 폭풍우를 피해 동굴 속으로 피신하듯, 자신을 밀어 넣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는 그녀의 몸 안에서, 세상의 모든 소음과 비난으로부터 차단된, 태초의 자궁과도 같은 고요와 어둠을 갈망했다. 그는 쾌락이 아니라, 망각을 추구하고 있었다. 테레즈는 그의 아래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그의 육체의 무게가 아니라, 그의 영혼의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었다. 그들의 정사는,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스쳐 지나갈 뿐,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하는, 가장 슬픈 형태의 불온한 계약이었다.
파국은, 루소가 가장 신뢰했던 친구의 손을 통해, 가장 교활한 형태로 찾아왔다. 디드로는 그의 희곡 『외아들(Le Fils naturel)』의 재판을 내면서, 극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하나의 주석(註釋)을 추가했다. 그 주석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다.
“오직 악인(惡人)만이 홀로 있다 (Il n'y a que le méchant qui soit seul).”
이 문장은, 인쇄된 활자의 형태로, 루소의 심장에 박힌 독화살이었다. 이성의 시대에, 활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객관적 진리의 외피를 쓴, 가장 강력한 권위였다. 루소에게 이 문장은 일반적인 철학적 명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몽-루이의 고독한 은둔자를, 정확하게 겨냥한 인격적 살인이었다. ‘악인’. 디드로는 그를, 온 파리가 보는 앞에서, 악인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의 고독은 더 이상 철학적 선택이나 덕성의 증거가 아니라, 사악함의 징후로 낙인찍혔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어 디드로에게 편지를 썼다. 그의 편지는 논리적인 항변이 아니라, 상처 입은 연인의 절규에 가까웠다.
“그 문장을 읽었네. 내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네… 아, 디드로! 자네마저도! 내가 그대에게 무슨 잘못을 했기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나를 공개 처형하는가? 나의 고독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당신들 ‘코트리’가 나에게 강요한 추방의 결과가 아니었던가! 자네는 이 문장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겠지. 하지만 자네와 나, 그리고 파리의 모든 독자는 그것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고 있네. 자네는 내 심장을 향해 비수를 던지고는, 그것이 단지 일반적인 해부학 실습이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네.”
디드로의 답장은 차가웠고, 이성적이었으며, 그래서 더욱 잔인했다.
“나의 친구여, 자네의 상상력은 자네를 병들게 하고 있네. 세상이 언제나 자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그 병 말일세. 그 문장은 보편적인 인간 조건에 대한 단상일 뿐, 자네 개인을 향한 기소가 아닐세. 자네가 만약 그 문장에서 자네의 모습을 본다면, 그것은 나의 악의 때문이 아니라, 자네의 양심이 자네를 찔렀기 때문일 걸세. 고독을 선택한 것은 자네일세. 친구들의 충고를 거부하고, 후원자의 호의를 모욕하고, 위험한 환상 속으로 도피한 것은 자네 자신이네. 제발 이 병적인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게. 세상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네에게 관심이 없네.”
디드로의 이 마지막 문장은, 루소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세상은 자네에게 관심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박해보다 더 무서운, 존재의 완전한 무효화 선언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자신의 투쟁이, 우주적 중요성을 지닌 비극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디드로는 그것을 한 개인의 신경과민적 증상으로, 무시해도 좋을 사소한 해프닝으로 격하해버렸다. 루소는 디드로와의 모든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했다. 그들의 위대한 지적 계약은, 이렇게 한 줄의 주석과 몇 통의 편지로 인해, 산산조각 나 버렸다.
그러나 진정한 지옥의 문은, 계몽주의의 진정한 왕, 볼테르(Voltaire)의 손에 의해 열렸다.
1761년, 『신 엘로이즈』가 출간되자, 그 성공은 전 유럽을 뒤흔들었다.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독자들은 줄리와 생 프뢰의 비극적 사랑에 눈물을 흘렸다. 귀부인들은 자신의 연인을 생 프뢰라 불렀고, 파리의 모든 서점은 책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루소는 감성의 새로운 교황으로 등극했다.
이 성공은, 페르네(Ferney)의 성에 칩거하며 유럽의 지성계를 원격으로 통치하던 늙은 군주, 볼테르의 심기를 건드렸다. 볼테르는 루소를 혐오했다. 그는 루소의 감상주의를, 그의 반(反)진보적 자연 예찬을, 이성의 시대에 대한 위험한 반동으로 여겼다. 그는 루소를, 문명의 연회에 진흙 묻은 발로 뛰어든, 위험하고 무식한 야만인으로 간주했다. 그는 이 새로운 교황의 권위를, 그의 도덕적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루소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볼테르는 직접 나서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가장 비열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비수를 던졌다. 그는 제네바의 한 목사의 이름을 도용하여, 『시민의 감정(Sentiment des citoyens)』이라는 제목의 짧고 독기 어린 팜플렛을 써서 퍼뜨렸다.
그 팜플렛의 내용은 단순하고, 그래서 더 파괴적이었다.
“우리의 동향인(同鄕人) 장 자크 루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는 소설 속에서는 덕성을 설파하고, 연인들의 순결한 사랑에 대해 눈물을 흘린다. 그는 곧 출간될 그의 새로운 책(『에밀』)에서, 자녀를 어떻게 자연의 원리에 따라 훌륭하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을 것이라 한다. 참으로 숭고한 철학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민 여러분, 이 위대한 교육 이론가, 이 감성적인 영혼의 소유자가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그는 자신의 동거녀인 불쌍한 세탁부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한 번도, 두 번도 아닌, 무려 다섯 번이나!—그 갓난아이들을 포대기에 싸서 국립 고아원의 문 앞에 버렸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굶어 죽었는지, 병들어 죽었는지, 아니면 노예로 팔려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인’의 도덕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교육자가 보여주는 본보기다! 그는 자신의 혈육에게는 늑대보다도 무심하면서, 어떻게 감히 타인에게 아버지의 의무를 설파할 수 있는가? 그의 ‘민감한 가슴’은 오직 그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들을 위해서만 뛸 뿐, 고아원의 차가운 바닥에서 울고 있었을 자신의 아이들의 실제 고통에는 완벽하게 귀를 닫고 있었던 것이다.”
이 팜플렛은 핵폭탄과도 같았다. 그것은 루소의 모든 철학적, 문학적 성취를 한 방에 무너뜨리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인신공격(ad hominem)이었다. 이제 그의 모든 주장은 위선자의 자기 변명으로 전락했다. 그가 ‘자연’을 말할 때, 사람들은 이제 그가 버린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가 ‘덕성’을 말할 때, 사람들은 그의 비정함을 비웃었다. 그가 ‘감성’을 말할 때, 사람들은 그의 위선을 조롱했다.
루소는 이 팜플렛을 읽고, 말 그대로 피를 토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것은 디드로의 지적인 배신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 자체에 대한 능지처참(凌遲處斬)이었다. 볼테르는 그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 그가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묻어두려 했던 그 원죄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그는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방안에 누워 있었다. 그의 오랜 지병이었던 요도 협착증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그의 몸은 심리적 고통에 대한 생리적 반응으로, 소변을 배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그는 침상에 누워, 자신의 방광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는 고통과, 소변을 보기 위해 요도에 카테터를 삽입해야 하는 굴욕적인 치료를 견뎌야 했다. 그의 육체는, 그의 정신이 당하는 고문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죄와 세상의 비난이라는 독(毒)을, 몸 밖으로 배출하지 못하고 스스로 중독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망상은 이제 완벽한 체계를 갖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라고 확신했다. 볼테르, 디드로, 그림, 그리고 전 유럽의 철학자들과 군주들이, 자신의 진리를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이 거대한 박해를 조직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박해 속에서 자신의 운명적인 소명을 발견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도시의 팜파코스(pharmakos), 즉 도시의 모든 죄와 불결함을 짊어지고 성 밖으로 추방되는 ‘희생양’이었다. 계몽주의라는 위선적인 도시는, 자신들의 타락—사치, 불평등, 무신론, 가족 제도의 붕괴—을 직시하는 대신, 그 모든 죄를 루소라는 한 개인에게 뒤집어씌워 그를 추방함으로써, 자신들의 순수성을 위장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의 개인적인 죄(아이들을 버린 것)를 공격함으로써, 그의 철학이 제기하는 보편적인 진리(문명 전체가 타락했다는 것)와 대면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운명에 처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수 또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고발했다가, 그들의 음모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던가. 그는 고통 속에서, 기묘한 종교적 황홀경을 느꼈다. 그는 순교자였다. 그의 고통은 그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 즉 성흔(聖痕)이었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더 이상 이전의 루소가 아니었다. 그는 상처 입고 패배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부활한, 무섭고 단호한 예언자였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고통과 망상, 그리고 세상에 대한 모든 분노를, 하나의 거대한 창조적 에너지로 응축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펜을 들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강철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세상이 그를 위선자라고 비난하는가? 좋다. 그렇다면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교육론을 써서, 그들이 얼마나 자녀 교육에 무지한지를 폭로할 것이다. 세상이 그를 사회 부적응자라고 비난하는가? 좋다. 그렇다면 그는 가장 완벽한 정치 공동체의 원리를 제시하여, 그들의 사회가 얼마나 부당하고 타락했는지를 증명할 것이다.
그는 두 개의 원고를 동시에 펼쳐 놓았다. 하나는 『에밀(Émile, ou De l'éducation)』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이었다.
이 두 권의 책은, 그의 개인적인 지옥 체험 속에서 벼려낸, 인류를 향한 그의 유언이자 선전포고문이 될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찢겨진 육체와 영혼의 파편들을 모아,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세상이 자신에게 가한 모든 고통을, 세상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불멸의 사상으로 되갚아줄 참이었다. 박해는 그를 파괴하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박해는, 그를 완성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