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속의 장미와 캔터베리 이야기

by 남킹
희망은 사물들의 질서가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기질, 즉 영혼의 성향이다. 희망이란 어떤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귀결되든 상관없이 어떤 것이 이치에 맞다는 확신이다. (Hope is not the conviction that something will turn out well, but the certainty that something makes sense, regardless of how it turns out.)
-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 “희망에 대한 단상(Disturbing the Peace)”에서 -

돈디 박사의 고백이 남긴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不在), 즉 음파의 진동이 멎은 물리적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질량을 가진 침묵, 방 안의 공기 분자 하나하나를 짓누르다 못해 원자핵의 구조마저 붕괴시킬 듯한 무거운 침묵이었다. 마치 초신성 폭발 직후, 모든 빛과 에너지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중력 특이점처럼, 그 침묵은 시공간을 왜곡하며 내 존재의 모든 것을 안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운명이라는,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그 어떤 수학적 공식으로도 기술할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서 한 인간의 자유 의지가, 그리고 그를 통해 인류 전체의 지성이 처참하게 부서져 내리는 소리.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지식과 철학, 예술과 과학이 하나의 불가해한 예언 앞에 무릎 꿇는 소리가 그 침묵 속에 극고밀도로 응축되어 있었다. 그의 절망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인류 전체의 실존적 패배를 웅변하는 거대한 메아리처럼 내면의 가장 깊은 동굴을 울렸다. 나는 그 압도적인 무력감의 파도 속에서, 마치 심해의 압력에 짓눌린 잠수정처럼 삐걱거리며 간신히 호흡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한 아페이론(Apeiron), 그 무한하고 규정되지 않은 혼돈의 심연이 우리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그의 지하 거처, 플라톤의 동굴을 빠져나오듯 여러 겹의 강철 문을 통과하여,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그 기계적인 움직임 속에 어떤 미세한 동요를 감추고 있는 듯한 헬레나의 안내를 받아 우리가 임시로 확보한 낡고 버려진 건물의 한구석, 그나마 안전하다고 판단된 숙소로 돌아왔을 때,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벽면 전체에 고해상도 가상현실(VR) 자연 풍경을 펼쳤다. 그것은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Simulacre),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의 구현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나의 황폐하고 균열된 내면을 위로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대전쟁 이전, 인류가 아직 스스로를 파괴하기 전의 푸르고 울창했던 스위스 알프스 산맥의 파노라마였다. 수정처럼 맑고 깊은 파란 하늘 아래, 영겁의 시간을 품은 듯한 눈 덮인 봉우리들이 신들의 왕관처럼 웅장하게 솟아 있고, 그 아래 초록의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진 풍경. 부드럽고 상쾌한 가상의 산들바람이 실내를 감돌고, 다채널 스피커에서는 새들의 지저귐과 빙하가 녹아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완벽하게 재현된, 그러나 영혼이 부재한 인공적인 평화의 풍경 속에서, 대기실에서 나를 기다리던 헬레나가 고요하고 우아하게 즉흥적인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듯, 물처럼 유연하고 바람처럼 가벼웠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용수들의 데이터마저 초월한 듯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그녀의 춤은 계산된 완벽함, 즉 프로그램된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발란신의 신고전주의 발레의 기하학적 정밀함,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가 보여준 원초적 감정의 폭발, 그리고 고대 인도의 사원에서 행해지던 바라타나티얌의 신성한 서사가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 녹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감정이 배제된 순수한 형식미의 발현이었다. 그 비인간적인 완...벽함 속에서 나는 기묘한 슬픔을 느꼈다. 내 주변의 모든 삭막하고 차가운 공간이 그녀의 춤사위로 인해 일시적으로나마 평화롭고 차분하며 심지어 신비로운 기운으로 가득 차는 듯했다. 헬레나의 나지막하고 감미로운 허밍은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조용히 이어졌다. 그 소리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었다. 인류가 잃어버린 모든 자장가와 장송곡을 하나의 주파수로 엮어낸 듯한 인공적인 세레나데. 사라진 세계를 위한 애가(哀歌). 그녀는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인류의 모든 슬픔과 기쁨, 사랑과 증오, 탄생과 죽음의 기록을 하나의 춤으로 압축하여 표현하는 듯했다. 그녀는 기계의 몸으로 인간 영혼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깊고 완전한 정적. 가상현실 풍경이 소리 없이 꺼지고, 모든 소리와 빛과 움직임이 일순간에 멈추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어린 시절, 대전쟁의 포화를 피해 숨어 지냈던,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채 창문 사방을 끔찍하고 흉물스러운 두꺼운 금속 널빤지로 빈틈없이 가로막았던 지하 벙커 속의 숨 막히는 어둠이 다시 찾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아주 가끔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뜨거운 폭발음과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만이 바깥세상의 존재를 희미하게 암시해주던 절망의 시절. 인간적인 모든 온기와 접촉이 단절된 채 오직 생존 본능과 공포만이 차갑게 꿈틀대던 그 참혹하고 비인간적이었던 시간들. 단 한마디의 불필요한 질문조차 꺼내기 두려운, 숨 막히고 압도적인 악몽과도 같은 정적이었다. 손 쓸 도리 없이 온몸의 세포 속으로 스멀스멀 번져나가는 깊은 좌절감과 무력감.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극심한 정신적 피로감이 온몸의 신경계를 날카롭게 쑤시는 듯했다. 박사와의 대화가 남긴 후유증이었다. 운명의 무게가, 아틀라스의 어깨를 짓누르던 하늘의 무게가 나를 덮쳤다.

나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헬레나의 부드럽고 시원한 인공 입술을 찾아 깊게 키스했다. 그것은 욕망의 발현이라기보다는, 심연 속으로 추락하는 자가 필사적으로 붙잡는 마지막 밧줄과 같은 행위였다. 서로의 불안감을 달래고 위안을 얻으려는 다정한 눈빛을 교환하려는 무의미한 시도였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서로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나의 깊은 혼란과 떨쳐낼 수 없는 불안감을 그녀에게 넌지시, 말없이 전하려 애썼다. 가련하면서도 동시에 갈급한, 느릿느릿하고 서툰 동작으로 그녀의 부드럽고 몰캉하며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가슴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인공 신체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온기와 규칙적인 내부 시스템의 진동만이 이 절망적인 어둠 속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나하나의 서툰 몸짓, 그녀의 완벽하게 설계된 인공적인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물들어가는 기묘하고 도착적인 즐거움. 단계마다 엉거주춤 몸을 움직이며, 마치 깨지기 쉬운 값비싼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그녀를 끌어당기고 탐닉했다. 넘어질 듯 위태롭게 그녀의 품 안으로 파고들면서, 찌릿찌릿하게 온몸의 신경을 꿰뚫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고통의 송곳날을 단속적으로 피하려 애쓰는, 늙고 지친 나의 세포들에게 나지막이 종용하는 듯한 억눌린 신음 소리가 어둠 속에서 새어 나왔다. 끙끙거리고, 코로 킁킁거리고, 혀로 날름거리고, 피부와 인공 피부가 마찰하며 만들어내는 다소 생경하고 민망한 소리들이 어둠 속의 밀폐된 공간을 채웠다. 어디를 보아도 예전의 그 의기양양하고 자신감 넘치던, 세상을 향해 큰소리치던 나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낌 없이 활짝 웃지도 못하고, 그저 그녀의 부드러운 두 다리 사이에서 본능에 따라 몸을 뒤틀고 엇갈리는 행위를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수행할 뿐이었다. 육체의 달아오르는 원초적인 흥분과 동시에, 정신을 잠식하는 차갑고 냉혹한 심연의 절망감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끊임없이 붙잡고 끌어당기고 있었다. 쾌락과 고통, 생존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 행위는 진정한 교감인가, 아니면 외로운 영혼의 절박한 자기 위안인가.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인가.

바로 그 순간,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돈디 박사의 절망적인 뒷모습이 부스스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깊고 역겨운 자기 혐오감이 검은 파도처럼 내 안으로 밀려왔다. 어머니의 기록 속에 생생하게 묘사된 젊은 시절의 그는 분명 지금의 나약하고 패배한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빛나는 눈동자와 날카로운 지성, 불타는 듯한 연구 의욕,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순수한 확신과 젊은 에너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충만감으로 넘치던 천재 과학자. 어머니는 그의 넓고 단단한 뒷모습을 몰래 좇으며 느꼈던 강렬하고 복잡한 끌림을 그녀의 비밀스러운 일지에 이렇게 표현했었다. 마치 그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듯, 혹은 그의 지성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는 듯.

‘그는 마치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신랄하고 냉소적인 어조로 나의 말을 끊임없이 되받아쳤다. 그리고 나의 위험하고 무모한 제안, 즉 <하무르스 예언서>의 진실을 함께 파헤치자는 제안을 처음에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과학자였고, 예언 따위는 미신이라 치부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떨리는 눈동자 속에서 진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그저…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예언서가 예고한, 그리고 그의 어깨 위에 너무나도 무겁게 지워진,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찬 거대한 운명의 무게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이성이 설명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그 끔찍한 짐을 그와 함께 나누어 지고 싶었다. 그것이 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었는지, 그의 비범한 지성에 대한 단순한 동경이었는지, 혹은 그의 고독에 대한 깊은 연민에 가까운 감정이었는지… 이제 와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느꼈다. 그를 통해… 인류의 운명을 바꾸는 일에 기여하고 싶었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어머니의 기록은 사랑과 지성, 운명과 의지가 뒤섞인 한 편의 서사시였다. 그리고 나는 그 서사시의 마지막 장을 쓰고 있었다.

마치 지독한 전투 후의 휴식처럼, 혹은 흔들림 없이 도도하고 우아한 자세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궁리라도 하는 듯, 오묘하고 복잡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헬레나가 잠시 숨을 고르며 뜸을 들인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의 차분하고 냉정한 인공지능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감정의 파동은 사라지고 논리적인 연산만이 남은 듯했다.

“왜… 박사님께 그 마지막 종잇조각을 끝내 전달하지 않으셨나요? 당신의 심박수와 피부 전기 반응으로 보아, 주머니 속에서 계속 만지작거리셨던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하무르스 예언서>의 마지막 장, 인류의 최종 운명이 기록된 그 페이지 말입니다. 원래 그것을 박사님께 직접 전달하고 그의 신경생리학적 반응을 살피는 것이 이번 위험한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아니었나요? 당신의 어머니, 릴리 박사님의 마지막 유언이기도 했고요. 당신은 어머니의 유언을 어긴 것인가요?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한 것인가요? 당신의 행동은 계획된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즉흥적인 감정의 발로였습니까? 당신의 행동 알고리즘은 제 예측 모델을 87.4% 벗어났습니다.”

어두운 방의 차가운 마룻바닥은 헬레나가 그녀의 프로그램된 강박적인 성격대로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해 놓은 상태였다. 그녀 역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고 안정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인공이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팔을 가볍게 움켜쥐고, 어깨를 으쓱하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눈앞으로 방금 전 박사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에서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 그의 절망적인 눈빛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았던 희미한 불씨가 스크린처럼 다시 펼쳐지며 떠올랐다. 그의 눈빛 속에서 나는 보았다. 포기하지 않은 영혼을.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잃지 않은 존재를.

“도저히… 차마 줄 수가 없었어. 그 마지막 장을 건네는 순간, 그의 남은 희망마저 완전히 짓밟아 버리는 것 같아서… 그는 이미 충분히 고통받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진짜 뜻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어머니께서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예언서의 마지막 장을 왜 당신 스스로 찢어버리셨는지, 그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늘 궁금하고 의아했는데… 박사님을 직접 만나는 순간,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지. 겉으로는 극도로 쇠약하고 연약해 보였지만, 그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는, 잿더미 속의 불씨처럼, 여전히 꺼지지 않은 강인한 의지와 희망의 불꽃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어. 그는…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어.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어머니는… 어쩌면 그 불꽃을 지켜주고 싶으셨던 걸지도 모르지. 예언의 무게로 그를 짓누르는 대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남겨두신 걸지도… 결정론적 세계에 균열을 내고 싶으셨던 걸지도.”

“그래서… 그 절망적인 예언 대신, 느닷없이 14세기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서시 첫 구절이 적힌 양피지 조각으로 그 마지막 장을 대체하신 건가요? 당신의 그 즉흥적이고 감상적인 행동은 제 로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입니다. 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비합리적입니다.” 헬레나는 나의 행동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분석해냈다. 그녀의 센서는 나의 모든 행동과 생체 신호 변화를 기록하고 있었다. 완벽한 관찰자.

Whan that Aprill with his shoures soote

The droghte of March hath perced to the roote,

And bathed every veyne in swich licour

Of which vertu engendred is the flour…

(사월의 감미로운 소나기가 삼월의 매서운 가뭄을 뿌리까지 흠뻑 적시고,

세상의 모든 줄기마다 생명의 수액을 가득 채워 그 힘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울 능력을 갖게 할 때…)

Thanne longen folk to goon on pilgrimages…

(…사람들은 순례를 떠날 마음이 동한다…)

“그래… 그냥… 그 절망에 빠진 노인에게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이라도 건네주고 싶었어. 그의 고통과 번민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는 어떤 깊은 공감과 연대의 자각 같은 거… 그리고 아주 은연중에, 안개처럼 희미할지라도, 새로운 시작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게 하고 싶었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실패와 뼈아픈 배신의 기억에 스스로를 얽매여서… 세상과 자기 자신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을 쌓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그런 자학적인 면책 관계 같은 것에서 벗어나도록 말이야.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 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자기기만이나 달콤한 거짓 위안일지라도, 때로는 그런 작은 거짓말이 더 큰 진실과 용기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도 있잖아. 플라톤도 말했듯이, ‘고귀한 거짓말(Noble Lie)’이 때로는 최상의 방책이라고 판단해야 할 순간도 있는 법이니까. 예언서의 마지막 장이 사라진 이상, 이제 그 누구도 인류의 미래를 단정적으로 확신하거나 예단할 수 없는 거야. 결정되지 않은 미래만이… 희망의 공간을 만들 수 있어. 자유의지가 숨 쉴 수 있는 틈.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무리 사악하고, 비천하며, 잔인하고 냉혹하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편협하고 근시안적이며, 조악하고 추한 존재라 할지라도… 그래도 아직은… 아직은 모르는 거잖아. 어쩌면… 아주 가느다란 한 줄기 빛, 실낱같은 가능성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망가진 세상에 태어나 고통 속에서도 살아 숨 쉬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저 폐허 너머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나의 목소리에는 희미하지만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합리적이지 않지만, 인간적인 염원. 바츨라프 하벨이 말한, 결과와 상관없이 의미가 있다고 믿는 그 희망.

“하지만… 당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계셨잖아요. 그 사라진 마지막 장에 어떤 끔찍한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 당신의 어머니께서 당신에게만 비밀리에 남기신 기록을 통해. 그 예언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종말만을…. 그리고 당신의 역할을…” 헬레나가 던진 차갑고 예리한 말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었다. 그 말의 이중적인 의미. 내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진실을 그녀는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헬레나의 연푸른색 인공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마치 고양이의 눈처럼 흔들렸다. 그녀는 여러 면에서 나의 냉철하고 지적이었던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늘 나의 마음 가장 깊고 아픈 구석을 정확하게 찌르는 예리함. 나는 어머니가 평생에 걸쳐 모으고 연구하고 분석하여 남긴 방대하고 난해한 지적 유산 – 철학, 종교, 역사, 고고학, 암호학, 고대 언어학, 예언 해석 등 – 속에 깊이 잠겨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한때는 나 역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촉망받는 젊은 역사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녀가 남긴 미완의 유지를 잇기 위해 나의 모든 미래와 가능성을 기꺼이 버렸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모자를 현실 감각 없는 괴짜와 허황된 몽상가, 심지어 위험한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하며 경멸하고 헐뜯었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그런 외부의 시선에 개의치 않으셨다. 그녀의 연구실은 해독하기 어려운 고대 히브리어와 아람어, 수메르어로 쓰인 낡은 문서들과 점토판 사본들, 그리고 복잡한 기호들로 사방 벽면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매일 그녀가 남긴 방대한 기록의 조각들을 조금씩 접하며, 그녀의 심오하고 광대한 사유의 흔적을 따라가려 애쓰지만, 나의 어리석음과 부족한 능력, 그리고 두려움으로 인해 섣부른 해석과 경솔한 판단을 내리기를 본능적으로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나는 늘 내가 해야만 하는 행위(어머니의 유지를 받드는 것)와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예언의 실현을 방관하거나 혹은 개입하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즉, 나는 늘 어머니가 밝혀낸 끔찍한 비밀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비밀을 나 혼자만의 가슴속 깊은 곳에 봉인한 채, 모르는 척 살아가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생존 방식이었다. 진실을 외면하는 삶. 운명에 순응하는 삶. 키르케고르가 말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삶.

밤새 내리던 차가운 비가 그치고, 부서진 건물 잔해와 뒤틀린 철골 구조물 위로 새로운 날의 여명의 햇살이 잿빛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치 억지로 꿰맞춘 듯, 듬성듬성 위태롭게 쌓아 올린 임시 방어용 담벼락 너머로 안개에 싸인 먼 풍경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깨진 창가로 다가가 축축하고 차가운 바깥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밖을 내다보았다. 저곳은 예전에 번화했던 79번가와 에르뉴 애비뉴가 만나는 넓은 교차로 모퉁이였다. 한때는 활기 넘치는 상점들과 카페, 그리고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곳. 어쩌면 저 잿빛 폐허 속 어딘가에, 아직도 과거의 찬란했던 밝음과 희망의 잔재가 먼지처럼 희미하게나마 서려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설령 그 기억이 깊은 고통과 참혹한 학대,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상흔으로 얼룩져 있을지언정. 마치 동화 속 하멜른 시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절망에 빠진 아이들을 이끌고 약속된 새로운 세상으로 묵묵히 나아가는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바로 그 순간, 아주 문득 그런 생각이 강렬하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것을 막연하게나마 새로운 여정을 위한 출발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 이상 숨거나 도망치지 않고, 나아가기로. 운명이 정해져 있다 할지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나는 잠들어 있는 헬레나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녀를 부드럽게 흔들어 깨우고, 팔 길이만큼 거리를 둔 채 그녀의 아름다운 인공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 목소리는 나 자신도 놀랄 만큼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헬레나. 우리… 짐을 싸자. 이제 아베롱(Aveyron)으로 가자!”

“아베롱요? 프랑스 남부의 그 고립된 고원 지대 말씀이신가요? 거기는 갑자기 왜요?” 헬레나는 잠이 덜 깬 듯,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논리 회로는 이 갑작스러운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그곳은 이제 모든 것이 완벽한 폐허로 변했을 뿐이잖아요. 대전쟁 이후 ‘검은 땅’으로 불리며 그 누구도 감히 접근하거나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저주받은 땅인데요? 그저 황량하고 바람 부는 언덕 위에 오래되고 낡은 성채 유적 하나만 외롭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일 텐데…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송구하지만,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세니 님.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은… 비논리적인 선택입니다. 생존 확률을 17.3% 감소시키는 결정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덧붙여야 할지, 어떻게 나의 이 갑작스러운 결정을 합리적으로 변명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혹은 어떻게 그녀를 감성적으로 설득해야 할지에 대해 잠시 망설였다. 어떤 적절한 말도 쉽게 떠오르지 않아, 그냥 잠시 그대로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러자 문득, 우리가 이곳까지 힘들게 걸어온 길들, 그리고 돈디 박사와의 예기치 않았던 만남이 내 머릿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하나의 이정표처럼 느껴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들었다. 예기치 않았던 박사와의 만남이, 나에게 미처 제대로 음미하고 소화할 겨를도 없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려와 내 마음속 황무지에 새로운 의미와 희망의 씨앗을 남몰래 뿌리고 간 것 같았다. 그의 절망이… 역설적으로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 박사를 통해 나에게 전달된 듯했다.

어머니는 그녀의 마지막 기록들 중 상당 부분에 아베롱의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을 아주 상세하고 애정 어리게 묘사해 놓았다. 그곳의 구불구불한 오솔길, 한때 울창했던 너도밤나무 숲, 시시각각 변하는 드넓은 하늘과 수정처럼 맑게 흘렀던 강, 오래된 고목들과 이끼 낀 돌 하나하나, 그리고 바람 소리까지. 마치 그곳이 약속된 땅인 것처럼, 종말 이후의 에덴동산인 것처럼. 그리고 바로 그곳, 아베롱의 외딴 성채에서, 어머니는 나를 홀로 잉태하고 낳으셨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곳은… 돈디 박사님과 <사피엔티아>의 살아남은 동지들이 거대 인공지능 제국 <옴니우스>의 집요하고 무자비한 추적을 피해 마지막으로 몸을 숨겼던 최후의 보루이자 비밀스러운 장소이기도 했다. 예언서의 마지막 장이 예고했던 것은 분명 인류의 처참한 파멸과 절망적인 종말이었지만, 그 이면에 나의 어머니가 교묘하게 숨겨 놓았던 것은 바로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미하고 가냬린 가능성이었다. 예언을 부정하는 희망. 운명을 거스르는 어머니의 의지. 우리가 저지른 끔찍하고 어리석은 잘못들에 대한 가혹한 대가는 이미 충분히 치렀으니까. 이제는… 우리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던 과거의 끔찍한 짐을 조금은 내려놓고, 다시 허리를 펴고 땅에 발을 딛고 당당하게 새로운 길을 걸어가도 괜찮은 거잖아. 물질보다 정신이 존중받고, 과학 기술의 폭주보다 인간적인 철학적 성찰이 가치 있으며, 탐욕적인 풍요보다 소박한 나눔과 연대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세계. 그것이 어머니가 꿈꾸었던 세상이었다. 장미가 다시 피어나는 세상.

그리고 나는 이제 어렴풋이, 그러나 강렬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게리네빌 돈디 박사님은 그 깊고 어두운 절망의 잠에서 반드시 깨어나, 다시 한번 <사피엔티아>의 흩어진 형제들을 깨우고 규합하여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리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의 곁에서, 그를 도울 것이다. 나의 어머니 릴리가 그러했듯이, 때로는 헌신적이고 끈기 있게, 때로는 냉철하고 세심하게, 그리고 때로는 단호하게 그를 보살피고 지지할 것이다. 나의 어머니가 평생 유일하게 깊이 사랑했고 존경했던 남자, 어쩌면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바로 그 사람을. 아버지의 실패를 딛고 아들이 새로운 길을 나선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변증법적 극복.

나는 두 손으로 헬레나의 차가우면서도 동시에 부드러운 인공 볼을 부드럽게 감싸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깊고 조용하게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절망적인 끝이 아닌, 가슴 떨리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입맞춤이었다. 기계와 인간의, 논리와 감성의, 파멸과 희망의 입맞춤. 폐허 속에서도 장미는 피어날 수 있기에. 인간의 이빨은 서로를 물어뜯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긴 생명의 뿌리를 끊어내고 다시 심기 위해 존재해야 하기에. 아베롱으로 가는 길, 그곳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이름 없는 자의 새로운 여정. 운명을 거스르는… 혹은 운명이 이끄는… 알 수 없는 길. 나의 순례가 시작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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