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기억의 풍경

시즌 2

by 남킹

강태식 형사가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4월의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지만, 공기는 죽음의 비릿한 냄새와 휘발유, 그리고 타이어 타는 냄새가 뒤섞여 역겹게 들러붙었다.

요란하게 번쩍이는 경광등 불빛이 주변 건물들의 유리창에 어지럽게 반사되었고, 노란색 폴리스 라인은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의 파도를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이 기괴하고 끔찍한 비극을 한 조각의 디지털 이미지로 소유하려 애썼다.

"강 팀장님, 오셨습니까."

젊은 순경이 거수경례를 하며 폴리스 라인을 들어 올렸다. 태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베테랑 형사인 그조차 잠시 숨을 멈췄다.

은색 세단은 마치 거대한 주먹에 얻어맞은 깡통처럼 처참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지붕은 종잇장처럼 내려앉았고, 깨진 유리 파편들이 다이아몬드 가루처럼 바닥 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찌그러진 지붕 위에, 한 남자가 기괴한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표정은 고통인지 해방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평온함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차 안에 있었다.

운전석에는 한 여자가 머리를 창밖으로 내민 채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목과 팔은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꺾여, 마치 마네킹이 부서진 듯한 모습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한 남자의 절망이, 땅 위에서 새로운 꿈을 꾸려던 한 여자의 생명을 덮쳐버린 현장. 두 개의 비극이 하나의 기괴한 조각품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태식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그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멈췄다. 찌그러진 차체 옆에 쪼그려 앉아 현장을 살피고 있는 여자 형사.

익숙한 뒷모습, 단정하게 묶은 머리, 그리고 긴장감이 팽팽하게 느껴지는 어깨선.

안소영 경사였다.

그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발소리를 들었는지,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시간의 강을 사이에 둔 어색한 만남.

그들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혹은 너무나 잘 알기에 오히려 할 말을 잃은 사람들처럼 서로를 쳐다보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태식이었다.

"오랜만이네…."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거칠게 나왔다. 소영은 희미하게, 그러나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지난 세월이 옅은 그늘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예전의 풋풋함 대신, 잘 벼린 칼날 같은 예리함과 단단한 피로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네… 선배님. 5년만이네요."

5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한때는 같은 부서에서, 같은 책상을 마주 보고, 같은 사건 파일을 들여다보던 사이였다. 단순한 동료가 아니었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생각을 읽을 수 있었고, 서로의 등을 망설임 없이 맡길 수 있었던 최고의 파트너였다. 그리고, 연인이었다. 혹은, 연인이 되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자석처럼 서로에게 끌렸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끈질김과 동물적인 직감을 가진 강태식과, 명석한 두뇌와 얼음 같은 냉철함으로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소영. 그들의 조합은 완벽했다.

함께 밤을 새워가며 잠복하고, 뜨거운 컵라면을 나눠 먹고, 범인을 검거한 뒤에는 지친 얼굴로 마주 보며 웃던 날들. 그 시간들은 태식의 기억 속에 빛바랜 사진처럼 남아 있었다.

그는 소영의 웃는 얼굴이 좋았다. 평소에는 얼음장처럼 차갑다가도, 결정적인 단서를 찾았을 때나 억울한 피해자의 누명이 벗겨졌을 때, 그녀의 얼굴에 피어나는 환한 웃음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 같았다. 그는 그 빛을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가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깊고 어두운 심연이 있었다. 남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트라우마. 그것은 그녀의 영혼을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갑옷이었다.

소영의 트라우마는 그녀가 교복을 입고 있던 시절에 새겨졌다.

그녀가 나고 자란 곳은 바다 냄새가 나는 작은 중소 도시였다.

그곳에서 그녀에게는 정희영이라는 단짝이 있었다.

희영은 몇 년 전, 서울에서 전학 왔다. 희영은 도시의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고, 하얀 피부에 인형처럼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어 남학생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가 최고였다.

사실, 희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소영도 꽤 인기가 좋은 편이었지만, 그녀는 기꺼이 2인자의 자리를 내주었다.

두 사람은 마치 한 쌍의 자매처럼, 혹은 서로 다른 극을 가진 자석처럼 늘 붙어 다녔다. 그렇게 그들은 그 작은 동네 남학생들 사이에 '넘사벽 인기 듀엣'으로 통했다.

희영의 집안 사정은 복잡했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큰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해서, 빚쟁이들을 피해 야반도주하듯 이곳으로 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희영의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웠고, 엄마는 아예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이혼하고 외국으로 떠났다는 둥, 빚 때문에 숨어 지낸다는 둥 무성한 소문만 떠돌았다. 희영은 그런 소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그늘진 눈빛은 그 소문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운명의 그날도, 둘은 학교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함께 집으로 향했다.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이어진 어두운 골목길.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둘은 헤어졌다.

"내일 봐, 희영아.“

"응, 소영아. 조심해서 가."

희영의 집은 동네에서도 좀 더 외곽진 곳에 있었다.

소영은 혼자 밤길을 걷는 희영의 뒷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맞은편에서 동네에서 악명 높은 일진 오빠들이 몰려왔다. 술 냄새를 풍기며 낄낄거리는 그들을 보며 소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서둘러 지나쳤다. 그런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가 소영의 발걸음을 멈칫하게 했다.

"야, 오늘 정희영이네 집 빈다던데.“

"오, 진짜? 가자, 가자. 오늘 밤 재밌겠는데?"

불길한 예감이 심장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일진 애들이 향하는 방향은, 정확히 희영의 집이 있는 쪽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소영은 안절부절못했다.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희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아니야, 별일 없을 거야. 그냥 장난치는 거겠지.'

스스로를 애써 안심시키려 했지만, 불길한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와 희영의 집으로 달렸다.

희영의 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하지만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집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억눌린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소영은 떨리는 손으로 담벼락을 짚고, 창문으로 살짝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지옥의 풍경을.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정희영이 일진 놈들에게 둘러싸여 집단으로 짓밟히고 있는 모습을.

희영의 교복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소영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비명을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희영의 텅 빈 눈동자가 창밖의 소영과 마주쳤다.

그 눈빛. 그것은 절망이었고, 구원을 바라는 처절한 외침이었으며, 동시에 자신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친구에 대한 희미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소영은 당황하여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눈빛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미친 듯이 달려 동네 파출소로 뛰어 들어갔다.

"살려주세요! 제 친구가… 희영이가…!"

경찰들이 출동했을 때, 일진 놈들은 이미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희영은 옷이 다 찢어진 채,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텅 빈 눈으로 울고만 있었다.

경찰 수사는 흐지부지되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안소영.

하지만 그녀는 보복이 두려워 끝내 일진 오빠들의 이름을 댈 수 없었다.

"밤이라 어두워서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그녀는 경찰서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친구의 눈빛이, 그들의 협박이 그녀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희영은 크게 실망했다. 그녀는 소영을 다시는 보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희영은 소영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곳을 떠났다.

서울에 있는 고모집으로 갔다는 소문만 무성하게 남긴 채.

소영은 그날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형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정의를 심판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힘이 없으면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남성에 대한 불신과 혐오, 그리고 페미니즘이라는 단단한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강태식과 안소영.

그들 사이의 유일한 문제점은 바로 그녀의 그 견고한 페미니즘적 경향이었다. 태식은 그것이 그녀를 지키는 갑옷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때로는 그것이 진실을 가리는 장벽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을 갈라서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어느 날, 택시 운전사 허승관이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를 신고한 여자는 장미연이라는 스물 후반의 여자였다. 사건 담당자는 안소영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새벽 2시, 술에 만취한 장미연이 허승관의 택시를 탔다. 그녀는 택시에 타자마자 덥다며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고, 목적지도 행설수설하며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결국 택시가 도착한 곳은 어느 허름한 모텔 앞.

CCTV에는 허승관이 거의 의식을 잃은 듯한 장미연을 부축해 모텔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장미연은 그를 성폭행으로 고발했다.

허승관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술에 취한 척 연기를 했을 뿐이며, 방에 들어가자마자 오히려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가 헤어지려 하자 그녀가 갑자기 10만 원을 요구했고, 그가 거절하자 돌변하여 고발했다는 주장이었다.

소영은 허승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장미연의 일관된 진술과,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CCTV 증거가 있었다. 의식을 잃은 여성을 부축해 모텔로 데려간 것 자체가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허승관을 구속하고 검찰에 사건을 넘기려 했다.

하지만 이 광경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태식은 뭔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장미연의 눈물에는 무언가 계산된 듯한 느낌이 있었고, 허승관의 억울함은 너무나 절박해 보였다. 그는 소영 몰래 장미연의 과거를 캐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이미 두 차례나 비슷한 전과가 있었다. 술에 취한 채 택시를 탄 뒤, 기사를 성폭행으로 신고했던 전력. 두 건 모두 합의금으로 마무리되었다. 태식은 그녀에게 당할 뻔했다는 다른 택시 기사의 진술까지 확보했다. 그는 이 사실을 소영에게 알렸다.

"소영아, 이 여자 뭔가 이상해.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아.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해."

하지만 성범죄 관련 사건에 있어서, 소영은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그녀의 트라우마가 이성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확신했다. 허승관의 성폭행을. 특히 그에게 폭행 전과가 있다는 사실은 그녀의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선배님, 그건 선입견이에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왜 자꾸 가해자 편을 드시는 거예요? 전과가 있는 남자를 어떻게 믿어요?"

"가해자 편을 드는 게 아니야. 진실을 찾자는 거지. 만약 저 남자가 억울한 거라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거라고."

결국 두 사람은 이 문제로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사무실의 모든 동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두 사람은 격렬하게 다퉜다. 그것은 단순한 의견 다툼이 아니었다.

그들의 신념과 세계관, 그리고 과거의 상처가 부딪히는 싸움이었다.

결국, 소영의 뜻대로 허승관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정에서 절규하던 그의 모습이 태식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이 사건으로 태식과 소영의 관계는 완전히 금이 가고 말았다. 이듬해, 소영은 자진하여 신설된 지하철 성추행 전담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세상에서 멀어졌다.

태식은 5년 만에 마주한 소영의 얼굴에서, 여전히 그날의 상처와 고집을 읽었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현실의 사건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투신한 남자는 자네가 쫓던 자라고?"

"네. 지하철 성추행 현행범입니다. 이름은 오동추. 39세. XXX 기업 과장입니다. 수년간 상습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영은 감정을 배제한 채, 건조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차 안의 여자는? 신원 확인됐나?"

"최애란. 30세. 방송국 기상 캐스터입니다. 아마 다들 아시겠지만, 얼마 전 떠들썩했던 기상 캐스터 자살 사건… 그때 갑질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 중 한 사람입니다."

태식은 소영의 보고를 묵묵히 들었다. 사건의 기괴함과 더불어, 여전히 그의 마음 한구석에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던 소영을 마주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그의 속을 휘저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들은 가장 끔찍한 현장에서 다시 만나고야 말았다.

"맞아… 그 사건. 한동안 시끄러웠지. 최애란 하고… 갑질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지 않나?"

태식의 질문에, 소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답했다.

"네. 박하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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