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대의 사내는 거대한 유럽 지도 위에 두 벌의 체스 말을 올려놓았다. 하나는 푸른색 군복을 입은 황제의 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갈색 제복을 입은 총통의 말이었다. 두 플레이어는 129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전략은 기존의 모든 체스 이론을 비웃는 듯했다. 느리고 신중한 전진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건 단 한 번의 돌파. 적의 전선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적의 심장부로 비수를 꽂아 체스판 자체를 뒤엎어 버리는 방식이었다.
"속도. 속도가 곧 권력이다."
사내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눈에는 두 개의 군대가 보였다. 하나는 '위대한 군대(Grande Armée)'라 불렸고, 다른 하나는 '국방군(Wehrmacht)'이라 불렸다. 이름은 달랐지만 그 본질은 같았다.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유기체. 병사들의 다리로 전쟁을 하고, 전차의 궤도로 국경선을 지워버리는 군대.
유럽의 낡은 왕국들과 나태한 공화국들은 이 새로운 속도의 전쟁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국경은 지워지고, 수도는 점령당했으며, 왕과 대통령들은 달아나거나 항복했다. 불과 몇 년 만에 유럽 대륙은 한 사람의 발아래 놓이게 되었다. 파리의 개선문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아래로 끝없는 승전보가 울려 퍼졌다.
그들은 스스로를 무적이라 믿기 시작했다. 신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역사가 자신의 승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사내는 체스판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대륙에서 떨어져 나간 작은 섬. 그곳에는 어떤 말도 놓여 있지 않았지만, 짙은 안개와 거친 파도가 그 자체로 거대한 성벽이 되어주고 있었다.
황제와 총통, 두 명의 위대한 정복자는 이제 대륙을 모두 제패한 뒤, 똑같은 마지막 적수와 마주 섰다. 바다 건너편, 결코 고개 숙이지 않는 섬나라. 그 완고한 저항은 그들의 완벽한 승리에 흠집을 냈고, 그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초조함은 결국, 그들을 파멸로 이끌 거대한 실수를 저지르게 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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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유럽의 유서 깊은 왕실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들의 눈에 나폴레옹은 피 묻은 왕관을 훔쳐 쓴 코르시카의 벼락출세자, '혁명의 아들'일 뿐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자신들의 신성한 혈통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영국의 총리 윌리엄 피트는 막대한 자금을 풀어 프랑스를 포위할 새로운 동맹을 결성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이었다. 대영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 스웨덴, 그리고 나폴리 왕국이 프랑스라는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나폴레옹은 분노했다. 그는 영국 본토 침공을 위해 불로뉴 해안에 20만 대군을 집결시켜 놓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동쪽에서 협공해 온다는 소식에 그는 과감하게 계획을 수정했다. 그의 천재성은 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저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저들의 등 뒤에 나타났을 때, 이미 모든 것은 끝나 있을 것이다."
1805년 8월 말, 나폴레옹의 '위대한 군대(Grande Armée)'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행군을 시작했다. 불로뉴에 주둔하던 7개의 군단, 20만 명의 병력이 동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군대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살아있는 유기체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과 같았다. 각 군단은 독립적으로 식량을 조달하며 여러 갈래의 길로 나뉘어 전례 없는 속도로 진격했다. 프랑스 군인들은 "황제는 우리의 팔이 아니라 다리로 전쟁에서 이긴다"고 자랑했다.
오스트리아의 카를 마크 장군이 이끄는 7만 대군은 바이에른의 울름 요새에서 러시아 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폴레옹이 정면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군대는 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북쪽으로 우회하여 다뉴브 강을 건넜다. 10월 초, 마크 장군은 자신의 군대가 프랑스 대군에게 완벽하게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퇴로도, 보급로도 모두 끊겼다.
변변한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한 채, 10월 20일, 마크는 휘하의 모든 병력을 이끌고 나폴레옹 앞에 항복했다. 나폴레옹은 승리에 도취한 채, 포로가 된 오스트리아 장교들에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의 황제에게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전하라고 조언하고 싶소. 나는 내 제국에 새로운 영토를 원하지 않소. 나는 단지 내 함대를 건조할 조선소만을 원할 뿐이오."
울름에서의 승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거둔 완벽한 전략의 승리였다. 나폴레옹은 파죽지세로 동진하여 11월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무혈입성했다. 하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빈 북쪽에는 패잔병을 수습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2세 황제와, 뒤늦게 도착한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1세가 이끄는 9만 명의 연합군 주력 부대가 버티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오히려 위기에 처했다. 그의 군대는 7만 5천으로 수적 열세였고, 보급선은 파리에서부터 1,000km 이상 길게 늘어져 있었다. 겨울은 다가오고 있었고, 북쪽의 프로이센이 적의 편에 가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을 타개할 결정적인 한 방, 즉 회전을 유도해야만 했다. 그것도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만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연합군 사령부에 사절을 보내 휴전을 제의하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마치 전투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는 일부러 자신의 우익 부대를 후퇴시켜 약점을 노출했고, 전략적 요충지인 프라첸 고지를 아무런 저항 없이 연합군에게 내주었다.
젊고 혈기왕성한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이 모든 것을 나폴레옹이 겁을 먹은 증거라고 확신했다. 그의 참모들은 신중론을 폈지만, 차르는 "코르시카 촌뜨기"에게 본때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라며 즉각적인 공격을 주장했다.
12월 1일, 나폴레옹은 자신의 지휘소에서 연합군의 움직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예측대로, 연합군은 프라첸 고지 위에서 그의 약해 보이는 우익을 포위 섬멸하기 위해 주력 부대를 남쪽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그들의 중앙부는 텅 비어가고 있었다. 함정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나폴레옹은 횃불을 든 병사들 사이를 걸으며 그들을 독려했다. 병사들은 "황제 만세!(Vive L'Empereur!)"를 외치며 화답했다. 황제 즉위 1주년을 기념하는 축제와도 같았다. 그는 병사들에게 약속했다.
"이 전쟁은 내일이면 끝날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크리스마스 전에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1805년 12월 2일 새벽, 아우스터리츠 들판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연합군은 안갯속에서 나폴레옹의 우익을 향해 총공세를 시작했다. 다부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 군 우익은 필사적으로 버텨내며 연합군의 주력을 자신들에게 묶어두었다.
오전 9시, 나폴레옹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마치 극적인 연출처럼, 안개가 걷히면서 겨울 아침의 눈부신 태양이 프라첸 고지를 비추기 시작했다. '아우스터리츠의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단 한 번의 날카로운 일격으로 전쟁은 끝난다!"
나폴레옹의 명령이 떨어지자, 안갯속에 숨어 있던 술트 원수의 2개 사단, 1만 7천 명의 프랑스 군 주력 부대가 텅 빈 프라첸 고지를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서 이들을 발견한 연합군 지휘부는 경악했다. 중앙이 완전히 비어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프랑스 군은 격렬한 전투 끝에 고지를 점령했고, 연합군은 중앙이 둘로 쪼개지며 지휘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북쪽의 부대는 북쪽으로, 남쪽의 부대는 남쪽으로 흩어져 각개 격파당하기 시작했다.
전투의 가장 끔찍한 장면은 남쪽의 자찬 호수에서 벌어졌다. 퇴로가 막힌 수천 명의 러시아 군인들이 얼어붙은 호수 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나폴레옹은 포병대에게 명령했다.
"저 호수를 향해 쏴라! 얼음을 깨뜨려라!"
프랑스 군의 대포알이 얼음 위로 쏟아졌다. 얼음이 깨지면서 수천 명의 러시아 병사들과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단 몇 시간 만에 전투는 끝났다. 연합군은 3만 6천 명의 사상자와 포로를 낸 반면, 프랑스 군의 피해는 9천 명에 불과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나폴레옹의 군사적 천재성이 빚어낸 가장 완벽한 승리였다.
이틀 후,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을 찾아와 항복했다.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은 와해되었다. 오스트리아는 막대한 영토를 할양해야 했고, 러시아 군은 고국으로 철수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의 윌리엄 피트는 "이제 유럽의 지도를 말아 올려라. 앞으로 10년 동안은 쓸모가 없을 테니"라고 탄식하며 쓰러졌고, 몇 주 뒤 세상을 떠났다.
나폴레옹은 이제 명실상부한 유럽 대륙의 지배자였다.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라인 동맹'을 창설했다. 그는 자신의 형제와 부하들을 유럽 각국의 왕좌에 앉혔다. 그는 역사의 지도를 자신의 뜻대로 다시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승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벌어지기 불과 6주 전인 10월 21일, 스페인 남서부의 트라팔가르 해상에서는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를 괴멸시켰다. 넬슨 자신은 전사했지만, 이 해전으로 영국의 해상 패권은 확고해졌다.
나폴레옹은 대륙을 정복했지만, 바다를 건널 수는 없었다. 그는 영국이라는 '상인들의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바로 '대륙 봉쇄령(Continental System)'이었다. 유럽 대륙 전체가 영국과의 교역을 중단하게 하여 경제적으로 고사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 봉쇄령은 영국보다 오히려 대륙 국가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고, 끝없는 반란과 저항의 씨앗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완벽한 제국을 완성하기 위해, 봉쇄령을 따르지 않는 국가들을 응징해야만 했다. 그의 시선은 이제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광활한 동토의 러시아로 향하고 있었다. 아우스터리츠의 태양은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 이미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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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9월, 뮌헨 협정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총리를 가지고 논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을 굳혔다.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은 퇴폐하고 겁에 질린 벌레들에 불과하다. 그들은 결코 나를 막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그의 판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1939년 3월, 그가 뮌헨 협정을 찢어버리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영토마저 집어삼키자, 마침내 영국과 프랑스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히틀러의 다음 목표가 될 폴란드의 독립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하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히틀러는 그들의 경고를 비웃었다. 그는 8월 23일, 세계를 경악시킨 외교적 한 수를 둔다. 철천지원수였던 소련의 스탈린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이다. 비밀 의정서를 통해 두 독재자는 폴란드를 사이좋게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이제 폴란드는 독 안에 든 쥐가 되었고, 히틀러는 서방과 전쟁을 하더라도 동부 전선에 대한 걱정 없이 싸울 수 있게 되었다.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독일군은 폴란드 국경을 넘어 침공을 개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폴란드 군은 용감했지만, 독일의 새로운 전쟁 방식 앞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격전(Blitzkrieg)'. 번개처럼 빠른 전쟁. 이것은 단순한 군사 교리가 아니라, 기술과 속도, 심리적 충격을 결합한 파괴의 예술이었다. 선두에는 융커스 Ju 87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가 날았다. '예리코의 나팔'이라 불리는 사이렌 소리로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며 정확하게 목표물을 파괴했다. 그 뒤를 따라 수백 대의 전차(판처)가 대열을 이루어 적의 방어선 중 가장 약한 한 점을 뚫고 들어갔다. 그들은 적의 주력 부대와 싸우는 대신, 후방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지휘부와 보급선을 차단했다. 마지막으로 기계화 보병이 전차의 뒤를 따라 전과를 확대하고 포위망을 완성했다.
폴란드 군은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동쪽에서는 소련군이 침공해왔다. 폴란드는 지도상에서 다시 한번 사라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아무런 군사적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서부 전선에서는 이후 8개월간 아무런 전투도 벌어지지 않는 기묘한 평온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것을 '가짜 전쟁(Phoney War)'이라고 불렀다. 연합군은 마지노선이라는 거대한 요새선 뒤에 숨어 독일이 먼저 공격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940년 봄, 히틀러는 기다림을 끝냈다. 4월에는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순식간에 점령하여 북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5월 10일, 마침내 서부 전선에 대한 총공세, '황색 작전(Fall Gelb)'을 개시했다.
연합군 총사령부는 독일군이 제1차 세계대전의 '슐리펜 계획'처럼,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평원 지대를 통해 주력 공격을 가해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독일 B집단군이 벨기에를 침공했다. 연합군은 최정예 부대를 모두 벨기에로 보내 독일군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것은 거대한 미끼였다. 진짜 공격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바로 전차의 기동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아르덴 숲이었다. 하인츠 구데리안과 에르빈 롬멜 등이 이끄는 독일 A집단군의 기갑 부대는 빽빽한 숲을 뚫고 프랑스 국경을 돌파했다.
프랑스 군 지휘부는 아르덴 전선에서의 돌파 보고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 독일 전차들은 이미 스당을 건너 프랑스 내륙 깊숙이 쇄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적과 싸우는 대신, 오직 서쪽, 영국 해협을 향해 질주했다. 연합군의 주력 부대는 벨기에에 들어갔다가 퇴로가 완전히 끊겨버린 것이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입안한 이 대담한 전략은 '낫질 작전(Sichelschnitt)'이라 불렸다. 거대한 낫으로 연합군의 목을 베는 듯한 기동이었다.
프랑스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수백만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가득 메웠고, 프랑스 군은 지휘 체계가 붕괴된 채 우왕좌왕하다가 각개 격파당했다. 불과 열흘 만에 독일 전차들은 영국 해협에 도달했다. 벨기에에 고립된 40만 명의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덩케르크 항구에 갇혔다.
바로 그때, 히틀러는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는 전차 부대에게 진격을 멈추고 재정비하라는 '정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는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의 "루프트바페(공군)만으로도 덩케르케의 적을 섬멸할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믿었다.
이 결정은 연합군에게 기적을 선물했다. 영국은 어선, 요트, 유람선 등 온갖 민간 선박까지 동원하여 덩케르크 해안에서 필사적인 철수 작전을 벌였다. '다이나모 작전'. 9일 동안, 33만 8천 명의 연합군 병사들이 장비는 모두 버려둔 채 간신히 영국 본토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참담한 패배였지만, 영국은 군대의 핵심 병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덩케르크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다. 독일군은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파리를 향해 진격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승전국의 편에 서기 위해 뒤늦게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6월 14일, 파리는 저항 없이 함락되었다.
히틀러는 파리에 입성했다. 그는 에펠탑과 개선문, 그리고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를 둘러보았다. 그는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에게 말했다.
"파리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베를린은 그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야만 한다."
6월 22일, 프랑스는 항복했다. 히틀러는 복수를 위해 특별한 장소를 선택했다. 바로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굴욕적인 항복 문서에 서명했던 콩피에뉴 숲의 바로 그 철도 객차였다. 프랑스 대표단은 22년 전 독일 대표단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항복 문서에 서명해야 했다. 히틀러는 조인식이 시작되자마자 자리를 떠났고, 그 객차를 베를린으로 가져가 전리품으로 전시하라고 명령했다. 베르사유의 치욕을 완벽하게 되갚아준 순간이었다.
불과 6주 만에, 유럽 최강의 육군을 자랑하던 프랑스는 무너졌다. 전격전은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에 비견될 만한 완벽한 승리였다. 히틀러는 이제 유럽 대륙의 지배자였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국가는 이제 단 하나, 바다 건너 영국뿐이었다.
영국의 새로운 총리 윈스턴 처칠은 히틀러의 평화 제의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의회에서 연설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고, 상륙지에서 싸울 것이며,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이고,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히틀러는 영국 침공 작전, '바다사자 작전(Operation Sea Lion)'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영국 해협의 제공권을 장악해야만 했다. 루프트바페와 영국 공군(RAF) 사이의 피할 수 없는 대결, '브리튼 전투(Battle of Britain)'의 막이 올랐다.
나폴레옹이 트라팔가르의 패배로 바다를 건너지 못했듯, 히틀러 역시 영국의 하늘을 정복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의 제국 역시 미완성으로 남게 될 운명이었다. 대륙의 지배자는 이제 완고한 섬나라의 저항이라는 똑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다음 선택은, 129년 전 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동쪽의 광활한 대지를 향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