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29 06화

금지된 야망, 러시아를 향하여

by 남킹


천문대의 사내는 성도 위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두 개의 별을 가리켰다. 하나는 파리에, 다른 하나는 베를린에 있었다. 그들의 빛은 너무나 강렬하여 주변의 다른 모든 별들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그것은 권력의 정점, 영광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알고 있었다. 항성은 가장 밝게 타오르는 순간, 소멸을 준비한다는 것을.

"모든 제국은 지도를 삼키려다, 결국 지도에 삼켜진다."

그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눈에는 유럽 대륙의 동쪽,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공백이 보였다. 러시아. 그것은 나라라기보다는 하나의 대륙이었고, 군대로 정복할 수 있는 영토라기보다는 시간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늪과도 같았다.

두 명의 정복자는 이제 똑같은 마지막 퍼즐 조각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대륙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단 하나의 의지 아래 통일된 유럽. 샤를마뉴도, 카이사르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꿈. 그 꿈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은 반드시 러시아를 무릎 꿇려야만 했다.

그들의 동기는 달랐다. 황제는 자신의 대륙 봉쇄령을 완성하여 마지막 남은 적, 영국을 고사시키기 위해, 총통은 자신의 인종주의적 광기를 실현할 '레벤스라움(생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동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의 오만함은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군대가 무적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가 지리와 계절마저 복종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사내는 두 개의 거대한 군대가 동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두 번의 원정. 60만의 '위대한 군대'와 300만의 '국방군'. 강철과 살육의 강물이 되어 러시아의 평원을 향해 흘러 들어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함정을 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그들 자신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 함정의 이름은 '공간'이었고, 그곳에는 두 명의 불패 장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라스푸티차(진흙)' 장군, 다른 하나는 '모로즈(혹한)' 장군이었다. 129년의 간극을 두고, 유럽 역사상 가장 거대한 비극의 서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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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제국은 그 영광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의 발아래에는 이탈리아가 있었고, 독일과 폴란드가 복종했으며,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굴욕적인 동맹국이 되었다. 그의 형제들은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왕좌에 앉아 있었다. 파리의 튀일리 궁에서 그가 내리는 명령 하나하나가 리스본에서 바르샤바까지 유럽 대륙 전체를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초조함으로 들끓었다. 단 하나, 안개 자욱한 해협 건너편의 섬나라 영국만이 그의 지배를 거부하고 있었다. 해군이 없는 그가 영국 본토를 침공할 수 없었기에, 그는 '대륙 봉쇄령'이라는 경제적 무기로 영국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유럽 대륙 전체가 영국과의 교역을 중단하여 '상인들의 나라'를 파산시키려는 거대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그물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바로 러시아였다. 한때 틸지트에서 나폴레옹과 우정을 맹세했던 젊은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봉쇄령으로 인해 피폐해지는 자국 경제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비밀리에 중립국 선박을 통해 영국과의 무역을 재개했다.

나폴레옹에게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개인적인 배신이었다.

"알렉산드르는 변했다. 그는 영국인들의 하수인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외교관 탈레랑에게 쏘아붙였다. "그는 운명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모르는군. 좋다. 내가 직접 그에게 가르쳐주겠다."

그는 러시아를 응징하기로 결심했다. 단 한 번의 결정적인 전투로 러시아 군 주력을 격파하고, 알렉산드르를 다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대륙 봉쇄령을 준수하도록 강요할 생각이었다. 이것은 정복 전쟁이 아니라, '제한된 목표를 가진 정치적 전쟁'이 될 터였다. 그는 3개월 안에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1812년 봄,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군대가 폴란드 국경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군대(Grande Armée)'.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20개국의 병사들로 구성된 60만 대군이었다. 20만 마리의 말과 1,300문의 대포가 그 뒤를 따랐다. 그것은 하나의 국가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장관이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힘에 도취했다. 그는 폴란드에서 군대를 사열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병사들이여! 제2차 폴란드 전쟁이 시작되었다! 러시아는 운명에 이끌리고 있다. 그들의 운명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1812년 6월 24일 새벽, 나폴레옹은 니멘 강둑에 서서 자신의 군대가 부교를 통해 러시아 영토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새벽 안개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병사들의 행렬은 마치 거대한 용이 강을 건너는 듯했다. 그는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러시아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불길한 징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이 탄 말이 갑자기 놀라 그를 땅에 떨어뜨렸다. 측근들은 불안에 떨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흙을 털고 일어났다.

더 기이한 것은 러시아인들의 반응이었다.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국경 너머에는 끝없는 숲과 황량한 평원, 그리고 침묵만이 그들을 맞이할 뿐이었다.

러시아의 총사령관 미하일 바클라이 드 톨리는 나폴레옹과 정면 대결을 벌이는 것이 자살행위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대신 적을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 깊숙이 끌어들여 지치게 만드는 '초토화(Scorched Earth)' 전술을 택했다. 러시아 군은 싸우지 않고 계속 후퇴했다. 후퇴하면서 모든 것을 불태우고 파괴했다. 식량 창고, 농작물, 마을, 심지어 우물의 물까지도 오염시켰다.

나폴레옹은 분노했다. 그는 아우스터리츠와 같은 영광스러운 결전을 원했지만, 적은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의 위대한 군대는 텅 빈 공간과 싸워야 했다.

"저 야만인들은 싸울 용기조차 없는가!"

보급은 재앙 수준이었다. 제대로 된 도로도 없는 러시아의 흙길에서 수많은 보급 마차가 진흙에 빠져 낙오했다. 6월의 폭염과 먼지 속에서 병사들은 이질과 장티푸스로 쓰러져 나갔다. 그들은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했고, 굶주림에 시달렸다. 병사들은 말의 사료로 쓰이는 호밀로 빵을 구워 먹다가 극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위대한 군대는 내부에서부터 녹아내리고 있었다. 불과 몇 주 만에 10만 명 이상이 전투 없이 사망하거나 낙오했다.

스몰렌스크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러시아 군이 저항을 시작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프랑스 군은 도시를 점령했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불타는 폐허뿐이었다. 나폴레옹은 이곳에서 진격을 멈추고 겨울을 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오만함이 신중함을 압도했다.

"모스크바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러시아는 무릎을 꿇을 것이다. 평화는 모스크바에 있다."

한편, 러시아 내부에서는 바클라이의 계속된 후퇴 전략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차르는 여론에 밀려 총사령관을 교체했다. 새로운 사령관은 노장 미하일 쿠투조프였다. 그는 병사들의 사랑을 받는 백전노장이었지만, 그 역시 나폴레옹과의 정면 대결이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의 자존심을 위해 모스크바로 가는 길목에서 단 한 번은 싸워야만 했다.

1812년 9월 7일, 모스크바 서쪽 120km 지점의 보로디노 마을에서 마침내 두 군대는 격돌했다. 유럽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하루였다. 25만 명의 군인이 좁은 들판에서 서로를 향해 포탄을 쏟아붓고 총검을 휘둘렀다.

전투는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계속되었다. 프랑스 군은 러시아 군의 방어 진지를 하나씩 점령해 나갔지만, 러시아 군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은 시체 더미 위에서 쓰러질 때까지 싸웠다.

나폴레옹은 그날따라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그는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전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부하들은 최후의 승리를 위해 마지막 예비대인 최정예 황실 근위대를 투입해달라고 여러 번 간청했지만, 그는 끝내 거부했다.

"파리에서 3,000km나 떨어진 이곳에서 내 마지막 예비대를 파괴시킬 수는 없네."

해 질 녘, 포성이 멎었을 때 들판은 거대한 도살장으로 변해 있었다. 양측 합쳐 7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쿠투조프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밤을 틈타 질서정연하게 후퇴했다. 나폴레옹은 전장을 차지했지만, 그것은 상처뿐인 승리였다. 러시아 군 주력을 섬멸한다는 그의 전략적 목표는 실패했다.

일주일 후, 9월 14일, 나폴레옹은 마침내 모스크바의 스파스키 언덕에 섰다. 수백 개의 황금빛 돔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동방의 신비로운 도시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이제 도시의 귀족(보야르)들이 성문 열쇠를 들고 나와 항복을 청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스크바는 텅 비어 있었다. 쿠투조프는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는 유령 도시에 입성했다.

그날 밤, 도시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총독 로스톱친이 떠나기 전, 모든 소방 장비를 파괴하고 감옥의 죄수들을 풀어 도시 곳곳에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바람을 타고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었던 모스크바는 거대한 화염에 휩싸였다.

나폴레옹은 크렘린 궁의 창가에서 불타는 도시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이것은 문명을 거부하는 야만 그 자체였다. 그는 이 전쟁의 본질을 이제야 깨달았다. 러시아인들은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심장마저 불태워서라도 적을 파멸시키려 하고 있었다.

불길은 닷새 동안 계속되었고, 도시의 4분의 3이 잿더미로 변했다. 위대한 군대는 잿더미 속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나폴레옹은 크렘린에서 알렉산드르에게 계속해서 평화 협상을 제의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을 허비한 끝에, 10월 19일, 나폴레옹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후퇴.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남쪽의 비옥한 땅을 통해 퇴각하려 했지만, 쿠투조프의 군대가 길을 막아섰다. 결국 그는 자신이 왔던 길, 모든 것이 파괴되고 시체가 널려 있는 스몰렌스크 가도를 따라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함정의 문이 닫혔다. 이제 '모로즈' 장군이 그의 군대를 사냥할 차례였다. 위대한 군대의 기나긴 장송곡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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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가을, 아돌프 히틀러는 분노와 초조함에 휩싸여 있었다. 그의 군대는 프랑스를 6주 만에 무너뜨리며 유럽 대륙을 제패했지만, 마지막 남은 적 영국은 처칠의 지도 아래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다. 브리튼 전투에서 루프트바페는 영국 공군을 꺾지 못했고, 영국 침공 작전 '바다사자'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히틀러는 이 교착 상태의 원인이 소련에 있다고 믿었다. 그가 보기에 영국이 항복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언젠가 소련이 전쟁에 개입하여 자신을 공격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를 부숴버리면, 영국의 마지막 희망도 사라진다. 그러면 영국은 항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그의 진짜 동기는 훨씬 더 깊고 어두운 곳에 뿌리박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세계관의 핵심, 즉 '나의 투쟁'에서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온 이념적 목표였다. 바로 동유럽의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여 독일 민족을 위한 '생활 공간(Lebensraum)'을 확보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슬라브 민족을 노예화하거나 절멸시킨 뒤, 유대-볼셰비즘의 중심지인 소련이라는 국가 자체를 지구상에서 지워버리는 것.

이것은 나폴레옹의 전쟁처럼 제한된 목표를 가진 정치적 전쟁이 아니었다. 이것은 인종과 이념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멸 전쟁(Vernichtungskrieg)'이었다.

1940년 12월 18일, 히틀러는 '총통 지령 21호'에 서명했다. 작전명 '바르바로사(Barbarossa)'. 중세 시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는 장군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무장 투쟁이 아니다. 이것은 두 세계관의 충돌이다... 우리는 소련군을 섬멸하고, 국가 자체를 해체시켜야 한다. 볼셰비즘의 지식인 계층은 제거되어야 한다."

1941년 봄,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군대가 소련 국경에 집결했다. 300만 명의 독일군과 50만 명의 동맹국(루마니아, 헝가리, 핀란드 등) 군대. 3,600대의 전차, 7,000문의 대포, 2,700대의 항공기가 동원되었다. 군대는 북부, 중부, 남부의 3개 집단군으로 나뉘어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키예프를 향해 진격할 준비를 마쳤다.

히틀러는 자신의 군대가 소련을 8주 안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장군들에게 "우리는 문을 걷어차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썩어빠진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스탈린은 독일의 침공 가능성에 대한 수많은 첩보를 받았지만, 모두 무시했다. 그는 히틀러가 영국과의 전쟁을 끝내기 전까지는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것을 영국의 이간질이라고 생각했다. 국경의 소련군은 아무런 경계 태세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1941년 6월 22일 새벽 3시 15분. 129년 전 나폴레옹이 니멘 강을 건넜던 그 주간에, 독일의 대포들이 소련 국경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독일군의 예상보다도 더 파괴적이었다. 루프트바페는 개전 첫날에만 1,200대의 소련 항공기를 지상에서 파괴하며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전차 부대(판처)는 소련군의 방어선을 종잇장처럼 찢고 깊숙이 돌파했다.

소련군은 혼란에 빠졌다. 통신은 두절되었고, 지휘관들은 우왕좌왕했다. 스탈린은 침공 소식을 듣고도 한동안 현실을 부정하며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못했다. 수십만 명의 소련군이 독일군의 거대한 포위망(Kessel) 안에 갇혀 항복하거나 섬멸당했다. 민스크, 스몰렌스크에서 연이어 거대한 포위전이 벌어졌고, 독일군은 수십만 명의 포로를 획득했다.

8월 초, 중부 집단군 사령관 페도어 폰 보크 원수는 모스크바를 향한 진격로가 열렸다고 보고했다. 모스크바까지는 불과 320km. 그의 기갑 부대 지휘관인 하인츠 구데리안은 지금 당장 모스크바를 향해 전력 질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스크바는 소련의 정치적 심장이자, 모든 철도망이 집중되는 핵심적인 교통 허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모스크바라는 상징적인 목표보다 경제적 목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남쪽의 우크라이나가 가진 거대한 곡창지대와 돈바스 분지의 산업시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코카서스의 유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의 장군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전쟁은 끝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나의 장군들은 전쟁의 경제적 측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그는 중부 집단군의 주력 기갑 부대를 남쪽으로 돌려 남부 집단군과 합류하여 키예프를 포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전쟁의 향방을 결정한 치명적인 실수였다.

전술적으로 이 결정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9월 말, 키예프 포위전에서 독일군은 66만 명 이상의 소련군을 포로로 잡는 전무후무한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승리를 위해 그들은 2달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모스크바를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 즉 건조한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9월 30일, 히틀러는 마침내 모스크바를 향한 총공세, '태풍 작전(Operation Typhoon)'을 승인했다. 그는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오늘, 이 거대한 투쟁의 마지막 결정적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적은 이미 부서졌으며, 결코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작전 초기, 독일군은 다시 한번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브랸스크와 뱌зь마에서 또다시 60만 명의 소련군을 포위 섬멸했다. 모스크바의 방어선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독일군 정찰대는 모스크바 외곽에서 크렘린 궁의 첨탑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모스크바 시내에서는 공황이 발생했고, 정부 기관들은 동쪽으로 피난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에 남기로 결심하고, 도시를 요새화하여 결사 항전을 준비했다.

바로 그때, 129년 전의 그 불청객이 다시 찾아왔다. 10월 중순,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며칠 동안 그치지 않았고, 러시아의 비포장도로는 순식간에 바퀴가 허리까지 빠지는 거대한 진흙탕, '라스푸티차'로 변했다.

독일의 자랑이던 전격전의 심장, 전차와 트럭들이 진흙 속에 갇혀 멈춰 섰다. 보급은 거의 중단되었다. 병사들은 진흙과 싸우느라 완전히 지쳐버렸다. 진격 속도는 하루에 몇 킬로미터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라스푸티차는 스탈린에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는 극동의 시베리아에서 정예 부대를 모스크바 전선으로 급히 이동시켰다. 이 시베리아 사단들은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해 혹한기 전투에 특화된 정예병들이었다.

11월 중순, 땅이 얼어붙으면서 독일군은 마지막 공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또 다른 장군, '모로즈' 장군이 전장에 도착했다. 기온이 영하 30도, 40도까지 급강하했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한파였다.

여름 전쟁을 예상하고 동계 장비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 독일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전차의 엔진오일은 얼어붙었고, 포의 윤활유도 굳어버렸다. 소총의 노리쇠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얇은 군복 한 벌로 혹한과 싸워야 했다. 수만 명이 전투 한번 없이 동상으로 쓰러져 나갔다. 그들은 죽은 동료의 옷을 벗겨 껴입고, 짚과 신문지로 장화를 채워 넣으며 버텼다.

12월 5일, 모스크바를 불과 20km 앞둔 지점에서 독일군의 공세는 마침내 완전히 멈춰 섰다. 바로 그 순간,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가 이끄는 시베리아 사단이 반격을 개시했다. 하얀 위장복을 입고 스키를 탄 시베리아 병사들은 눈보라를 뚫고 얼어붙은 독일군 진지를 덮쳤다.

독일군은 공황 상태에 빠져 후퇴하기 시작했다. 전선 전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히틀러는 그의 총통 관저 '늑대 소굴'에서 전황을 보고받고 격노했다. 그는 장군들의 후퇴 허가 요청을 모두 묵살하고 "현 위치를 사수하라!"는 절대 후퇴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수많은 병사들을 무의미한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한편으로는 전선의 완전한 붕괴를 막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전격전은 실패했다. 바르바로사 작전은 실패했다. 독일군 무적의 신화는 모스크바의 눈 덮인 벌판 위에서 산산조각 났다.

129년 전, 나폴레옹이 불타는 모스크바를 보며 깨달았던 바로 그 진실을, 히틀러 역시 혹한 속에서 깨닫고 있었다. 러시아는 정복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들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무덤이었다. 기나긴 소모전의 막이 올랐고, 제3제국의 시계는 이제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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