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o51kWja3Rrw?si=E2P5QLkgrNijpxsb
현관문을 닫는 순간, 바깥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되었다. 빗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던 자동차 소리도, 축축한 밤공기의 흐름마저도 두꺼운 철문 하나를 경계로 완벽하게 소멸했다. 안과 밖. 나의 세계는 이제 이 어둡고 고요한 상자 안으로 축소되었다. 나는 스위치를 찾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방 안의 익숙한 사물들의 윤곽을 더듬어갔다. 낡은 소파, 책 몇 권이 위태롭게 쌓인 작은 테이블, 그리고 창문.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이웃집의 불빛은 너무 멀어서, 마치 다른 은하계에서 보내오는 신호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내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린 작업복을 벗어 던졌다. 땀과 디젤 기름, 그리고 이름 모를 화물들의 먼지가 뒤섞인 퀴퀴한 냄새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옷의 무게가 사라지자, 내 몸은 마치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가볍고 허하게 느껴졌다. 어깨와 등 근육이 운전과 하역 작업으로 뭉쳐 욱신거렸다. 나는 샤워를 할 기력도 없이, 속옷 차림으로 낡은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스프링이 꺼져 삐걱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차가운 인조가죽의 감촉이 내 맨살에 소름처럼 돋아났다.
이 침묵. 이 침묵은 나를 과거로 데려가는 가장 빠른 통로였다. 그러나 나는 기억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직접, 그 시간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가장 눈부셨던 여울목으로. 나는 손을 뻗어 테이블 위의 블루투스 스피커 전원을 켰다. ‘삑’ 하는 건조한 기계음과 함께 작은 LED 불빛이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 스마트폰을 연결하고, 수많은 앨범 커버들 속에서 망설임 없이 하나를 골랐다. 낙타 한 마리가 눈 덮인 풍경을 배경으로 서 있는,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인 이미지. Camel - The Snow Goose.
첫 곡 <The Great Marsh>의 오보에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을 때, 나는 눈을 감았다. 차가웠던 소파의 감촉이, 내 아파트의 싸늘한 공기가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음악은 타임머신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과거의 특정 시간과 공간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감각의 설계도였다.
그날, 그 밤. 우리의 비밀 프로젝트가 첫 번째 기적을 선보였던 그 새벽. 서연의 눈물 섞인 ‘브라보’라는 속삭임과, 내 손등에 닿았던 그녀의 뜨거운 입술의 감촉 이후, 우리는 단순한 연인을 넘어선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창조의 공범이었고, 서로의 유일한 신도였다. 그 밤의 키스는 서로의 영혼을 탐하는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옷을 벗겨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둘러싼 마지막 방어막을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이 내 거친 손바닥 아래에서 떨릴 때, 나는 그녀의 육체뿐만 아니라 그녀가 겪어온 모든 상처와 환희를 동시에 어루만지는 듯한 경외감에 휩싸였다. 우리는 서로의 몸이라는 언어를 통해, 세상의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가장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 이후, 내 오피스텔은 우리의 성역이 되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밤을 그곳에서 함께 보냈다. 낮 동안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갑옷처럼 입고 있던 사회적 역할과 가면을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벗어 던졌다. 나는 더 이상 유능한 개발팀장이 아니었고, 그녀는 클라이언트의 비위를 맞추는 상업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우리는 오직 서로에게만 존재하는, 이름 없는 두 개의 영혼이었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괴물 같은 속도로 자라났다. 그것은 더 이상 단일한 인터랙티브 아트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것을 ‘눈 거위(The Snow Goose)’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카멜의 앨범이 폴 갈리코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듯, 우리의 작업물도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를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과 끝이 정해진 직선적인 서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무한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미로와도 같은 비선형적 서사였다.
나는 밤을 새워가며 그녀의 세계를 위한 구조를 짰다. 그것은 단순한 코딩이 아니었다. 나는 건축가이자, 도시 설계자였으며,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드는 지도 제작자였다. 나는 그녀가 창조한 수백 개의 이미지와 사운드, 텍스트 파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영혼의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설계했다. 각각의 오브젝트들은 고유한 속성과 행동 양식을 가졌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을 만들어냈다. 가령, ‘슬픔’이라는 감정을 가진 비가 내리면, ‘고독’이라는 씨앗이 자라나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꽃을 피우는 식이었다.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논리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그 결과물은 지극히 시적이고 비논리적인 풍경으로 나타났다.
서연은 그 구조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다. 그녀는 하루에도 여러 개의 이미지들을 쏟아냈다. 그녀의 태블릿 펜 끝에서 태어난 이미지들은 더 이상 클라이언트의 수정 요구에 시달리지 않았다. 그것들은 온전히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상처 입은 채, 그러나 당당하게 자신의 색을 뽐내는 야생의 생명체들. 그녀는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깊은 바다로 거침없이 다이빙했고, 그곳에서 건져 올린 기이하고 아름다운 산호와 진주들을 내게 건넸다. 그러면 나는 그것들을 받아 ‘눈 거위’라는 거대한 디지털 아쿠아리움 안에 배치하고, 생명을 불어넣었다.
우리의 육체는 그 창조의 과정 속에서 더욱 깊이 얽혀 들어갔다. 새벽녘, 탈진한 상태로 작업을 멈추고 침대에 누울 때면,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몸을 탐했다. 그것은 격렬한 정사의 밤들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섹스는 단순한 욕망의 배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창조의 연장선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몸 위에서 새로운 지도를 그렸다. 나는 그녀의 척추뼈 마디마디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그녀라는 존재의 기원을 탐사하는 고고학자가 되었다. 그녀는 내 단단한 어깨와 가슴 근육 위로 입술을 움직이며, 내 안에 숨겨진 연약함의 지형도를 읽어냈다. 우리는 땀과 타액을 교환하며,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생명체처럼 뒤엉켰다. 절정의 순간,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의미 없는 신음을 토해냈다. 그 순간만큼은 언어의 감옥에서 벗어나, 가장 원초적인 감각의 주파수만을 공유하는 두 마리의 짐승이었다. 그리고 그 격렬한 행위가 끝난 뒤 찾아오는 완전한 이완 속에서, 우리는 종종 최고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곤 했다.
몇 달이 흘렀을까. 마침내 ‘눈 거위’는 완성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진 거대한 유기체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세상에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판매하거나 전시하기 위한 상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사랑의 증거이자, 우리 영혼의 자화상이었으며, 세상의 모든 폭력적인 논리로부터 도망쳐 온 우리만의 도피처였다. 우리는 단 한 번, 오직 우리 둘만을 위한 상영회를 갖기로 했다.
그날을 위해, 우리는 작은 스튜디오를 하루 동안 빌렸다. 사방이 흰 벽으로 둘러싸인, 텅 빈 공간. 우리는 그곳에 빔 프로젝터와 좋은 스피커, 그리고 편안한 소파 하나만을 가져다 놓았다. 창문은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가려, 한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은 깊은 밤처럼 어두웠다. 우리는 커피와 와인, 그리고 간단한 치즈를 준비했다.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기 전의 사제들처럼, 우리의 모든 행동은 경건하고 조심스러웠다.
나는 노트북을 프로젝터에 연결하고, 마지막으로 모든 코드를 점검했다. 서연은 소파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우리의 어깨가, 허벅지가 맞닿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지금, 지난 몇 달간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든 우리 자신의 내면을, 우리 영혼의 민낯을 마주하려는 참이었다.
카멜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앨범의 중반부를 장식하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트랙 <Rhayader>. 플루트의 맑은 선율이 스튜디오의 어두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우리가 만든 세계의 입구를 클릭했다.
정면의 흰 벽 가득, 영상이 펼쳐졌다.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시작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사용자가 마우스를 움직이자, 그 움직임을 따라 반딧불이처럼 작은 빛의 입자들이 생겨나며 길을 밝혔다. 빛이 닿는 곳마다, 서연이 그린 초현실적인 풍경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거꾸로 자라는 나무들,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솟구치는 폭포, 고래의 노랫소리를 내며 밤하늘을 유영하는 거대한 나비들.
나는 마우스를 그녀에게 건넸다. 이제부터는 그녀가 이 세계를 탐험할 차례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그녀가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세계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반응했다. 그녀가 어떤 오브젝트를 클릭하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텍스트 파편이 나타났다. ‘어떤 기억은 별이 되고, 어떤 슬픔은 비가 된다.’ 그녀가 다른 곳을 클릭하자, 내가 편곡한 짧은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세계 속을, 내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여행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다가, 자신이 창조한 슬픈 이미지 앞에서 작게 탄식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상호작용에 희미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그리고 벽에 펼쳐진 영상을 번갈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 벽에 펼쳐진 세계는 그녀의 내면 그 자체였다. 혼란스럽고, 아름답고, 슬프고, 예측 불가능한. 그리고 나는 그 세계를 사랑했다. 나는 그 세계의 유일한 탐험가이자, 충실한 기록자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그녀는 ‘눈 거위’의 가장 깊은 곳, 우리가 ‘고요의 방’이라고 이름 붙인 곳에 도달했다. 그곳은 모든 이미지와 소리가 사라지고, 오직 우주처럼 검은 공간에 희미한 빛을 내는 작은 점 하나만이 떠 있는 곳이었다. 그녀가 그 점을 클릭하자, 우리가 함께 녹음했던 우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특별할 것 없는 대화. 우리가 함께 요리를 하며 나누던 농담, 작업 중에 벌였던 사소한 다툼, 서로에게 읽어주던 시의 한 구절. 우리의 가장 일상적이고 사적인 순간들이, 그 세계의 가장 중심부에 핵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목소리들을 듣는 순간, 서연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이, 그녀의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내 품에 기대, 스크린을 보며 조용히 울었다.
카멜의 앨범은 마지막 트랙 <The Great Marsh>의 리프라이즈로 돌아와 있었다. 처음 시작되었던 그 오보에의 선율이, 모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자의 쓸쓸함과 평온함을 담은 채 다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영상도 끝이 났다. 벽은 다시 원래의 흰색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여전히 그 세계의 잔상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고, 완전한 침묵이 스튜디오를 감쌌다. 그러나 그 침묵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우리가 함께 겪어낸 모든 감정의 여운이, 우리 영혼의 메아리가 가득 차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내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젖은 그녀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그녀는 내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해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브라보.”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메아리(Echo)였다. 처음의 ‘브라보’가 나의 기술에 대한 찬사였다면, 두 번째 ‘브라보’는 우리의 영혼이 이뤄낸 완벽한 공명에 대한 확인이었다. 나는 그녀의 젖은 뺨에 입을 맞췄다. 짠맛이 느껴졌다. 창조의 맛, 그리고 사랑의 맛이었다.
나는 눈을 떴다. 스피커에서는 카멜의 앨범이 끝나고, 다음 앨범으로 넘어가기 전의 짧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코블렌츠의 내 아파트. 어둠과 한기. 소파의 차가운 감촉. 나는 혼자였다.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낡은 벽지가 발라진, 텅 빈 흰 벽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그 벽 위로 펼쳐지던 우리의 세계를. 거꾸로 자라던 나무들을, 하늘을 유영하던 나비들을.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가 담겨 있던, 우주의 중심에 떠 있던 그 작은 빛을.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근육의 통증이 현실의 무게를 상기시켰다. 나는 비틀거리며 부엌으로 걸어가, 찬물을 한 컵 가득 따랐다. 물을 단숨에 들이켜자,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내 안의 뜨거운 기억들을 식혀주는 듯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 기억은 내 존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내 영혼의 소스 코드에 깊이 각인되어, 결코 지울 수도, 수정할 수도 없는 불변의 값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가장 완벽한 순간을 함께했다. 서로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세상에 없는 언어로 대화했으며, 우리만의 우주를 창조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우리를 갈라놓았을까. 그 완벽했던 공명에, 대체 어떤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걸까.
나는 텅 빈 물컵을 싱크대에 내려놓았다. ‘쨍’ 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그 소리는, 다가올 파국의 전주곡처럼 들렸다.
https://youtu.be/8VTYoglRL10?si=yaD1HSeIDhA1ms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