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81_kDP06gQ?si=VDUNJ_zux3YJhB9N
물류창고의 하루는 해가 가장 짧은 동짓날의 낮처럼 더디게 흘러갔다. 시간은 더 이상 기억을 실어 나르는 강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컨베이어 벨트처럼, 동일한 간격으로, 동일한 속도로, 무미건조하게 분절되어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나는 그 벨트 위에서 할당된 임무를 수행하는 한 명의 노동자였다. 내 몸은 기계의 일부가 되었다. 허리를 굽히고, 팔을 뻗고, 손목을 비트는 모든 동작은 수만 번의 반복을 통해 최적화된 알고리즘처럼 군더더기가 없었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허리의 안전벨트를 축축하게 적셨다. 근육은 쉴 새 없는 긴장과 이완 속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정신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
어제의 그 격렬했던 기억의 항해는, 마치 하룻밤 사이에 꾼 길고 생생한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핑크 플로이드의 몽환적인 선율에서 시작해, 킹 크림슨의 광기와 모과이의 비가(悲歌), 예스의 현란함과 카멜의 서정, 반데르그라프 제너레이터의 파괴적인 절규와 라디오헤드의 소멸, 그리고 브라이언 이노의 명상에 이르기까지. 나는 음악이라는 배를 타고 내 영혼의 가장 깊은 심해까지 내려갔다 왔다. 그곳에서 나는 25년 동안 외면해왔던 괴물들과 마주했고, 침몰한 난파선의 잔해들을 건져 올렸으며, 마침내 이 모든 여정의 의미를, 나의 침묵과 노동의 이유를 깨달았다.
이제 내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쏟아낸 뒤의 항아리처럼. 더 이상 과거의 파편들이 예고 없이 습격해오지 않았다. 서연의 얼굴도, 그녀의 목소리도,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눈 거위’의 이미지들도 희미한 잔상처럼 멀어져 갔다. 그 자리에는 현실의 감각들이 들어찼다. 골판지 상자의 거친 질감, 테이프가 뜯어지며 나는 날카로운 소리, 지게차의 후진을 알리는 경고음, 그리고 내 몸의 모든 근육이 느끼는 묵직한 피로감. 나는 비로소, 25년 만에, 온전히 현재라는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 창고를 나설 때, 서쪽 하늘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짙은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텅 빈 트럭의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어제와 똑같은 귀갓길. 그러나 이제 이 길은 더 이상 과거로 향하는 통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집, 나의 현재, 나의 삶으로 돌아가는 물리적인 경로일 뿐이었다.
나는 음악을 켜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아예 재킷 안주머니 깊숙이 넣어버렸다. 더 이상 어떤 촉매도, 어떤 안내자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 침묵을, 이 고요를 온전히 마주하고 싶었다. 어제 아우토반을 달리던 트럭의 캐빈이 기억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던 잠수함이었다면, 오늘의 캐빈은 모든 것을 비워낸 뒤의 고요한 참선실(參禪室)이었다.
디젤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만이 유일한 소리였다. 나는 그 진동에 몸을 맡긴 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아우토반 위를 달렸다. 헤드라이트가 길게 뻗어 나가며 어둠의 일부를 걷어냈다. 빛이 닿는 곳까지만이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 너머는 미지의 영역. 그것은 마치 나의 삶과도 같았다. 나는 오직 지금 이 순간,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 현실만을 인지할 수 있을 뿐, 과거의 진실이나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무지(無知)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코블렌츠로 향하는 길, 나는 어제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어딘가에 홀린 듯,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관통하는 길로 핸들을 꺾었다. 퇴근 시간의 도시는 붉은 후미등과 노란 신호등, 현란한 네온사인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혈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복잡한 혈류 속으로 기꺼이 흘러 들어갔다. 어제의 나는 이 도시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화물 운반자에 불과했지만, 오늘의 나는 이 도시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마인강(Main River)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차가 잠시 멈춰 섰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강물 위로 유람선이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있었고, 강변의 산책로에는 연인들과 가족들이 평화로운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강 저편으로는 유럽 중앙은행(ECB)의 날렵한 마천루와 오래된 성당의 첨탑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솟아 있었다. 과거와 현재, 자본과 종교, 낭만과 일상이 뒤섞인 도시의 풍경.
그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내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아주 작은 틈을 내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서연에 대한 그리움이나 과거에 대한 회한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궁금증’이었다.
나는 지난 25년간 그녀의 ‘현재’를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녀가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을까, 아니면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 두 가지 극단적인 가능성 사이에서, 나는 그녀를 영원히 미지의 존재로 남겨두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 두 가지 가능성 외에, 무한한 수의 다른 가능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쩌면 그녀는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작은 스튜디오를 열어, 상업적인 일을 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책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거나, 세계를 여행하며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는 여행 작가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녀의 삶은 내가 상상하는 두 개의 흑백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은, 나의 삶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선택과 우연이 뒤섞여 만들어진 다채로운 색의 태피스트리일 것이다. 그 안에는 성공도, 실패도, 기쁨도, 슬픔도,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다른 감정의 실들이 함께 짜여 있을 터였다.
내가 그녀의 소식을 찾아보지 않았던 것은, 그녀를 신화로 남겨두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 나 자신의 나약함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그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나의 환상이 깨어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나의 ‘기억’을 사랑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나의 과거라는 박물관에 가두어 놓고, 혼자서만 그 박물관을 드나들던 이기적인 관람객이었다.
이제, 나는 그녀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그녀를 나의 기억 속에서 해방시켜, 그녀 자신의 삶을 살도록 보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의 기억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나 자신의 현재를 살아야만 했다.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프랑크푸르트의 야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를, 지각 변동과도 같은 인식의 전환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 아주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익숙한 코블렌첸의 주택가에 들어섰다. 나는 트럭을 지정된 주차 공간에 세웠다. 시동을 끄자, 완전한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제 이 침묵은 더 이상 공허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앞둔, 비어 있기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줄기가 온몸의 근육을 풀어주었다. 나는 내 몸 구석구석을 정성껏 닦았다. 어제의 노동으로 쌓인 먼지와 땀을 씻어내는 동시에, 지난 25년간 내 영혼에 쌓여 있던 기억의 때를 벗겨내는 의식과도 같았다.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자,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 아주 오랜만에 직접 요리를 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꺼내 파스타를 만들었다. 토마토를 썰고, 양파를 볶고, 마늘 향이 주방 가득 퍼져나갔다. 지글거리는 소리, 보글거리는 소리. 그것은 삶의 소리였다. 나는 와인도 한 잔 따랐다. 식탁에 앉아, 나는 천천히 저녁 식사를 했다. 음식의 맛을, 와인의 향을 온전히 느끼며. 그것은 생존을 위한 섭취가 아니라, 삶을 위한 향유였다.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내 서재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부팅되는 동안, 내 심장은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어젯밤 바닥에 떨어져 있던 포크너의 책을 집어 들어 책장에 다시 꽂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서연이 내게 처음 빌려주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도 나란히 꽂아 넣었다.
화면이 켜지고, 익숙한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나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었다. 하얀 검색창이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내 손가락은, 그러나, 그녀의 이름을 입력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다른 단어들을 입력했다. ‘온라인 코딩 강좌’, ‘독일 내 프로그래머 재취업 과정’, ‘파이썬 데이터 분석’.
나는 그녀의 과거를 검색하는 대신, 나의 미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25년이라는 시간은 IT 세계에서는 강산이 두 번 반이나 변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내가 알던 기술들은 대부분 박물관의 유물이 되어 있었고, 새로운 언어와 프레임워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나이 든 나를 받아줄 회사는 없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뛰었다. 잊고 있었던 열정이라는 것이, 내 안의 꺼진 불씨 속에서 다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다시 코드를 짜고 싶었다. 세상을 구축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나의 논리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었다. 그것이 설령 그녀와 함께했던 ‘눈 거위’처럼 위대한 예술이 아닐지라도, 설령 지극히 상업적이고 기능적인 프로그램일지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다시, 나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다.
나는 한참 동안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온라인 강좌 하나를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수강 신청 버튼을 눌렀다.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결제를 완료했다. ‘수강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화면에 떴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는 문득,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그것의 존재를 떠올렸다. ‘눈 거위’가 담긴 외장 하드.
나는 서랍을 열어 그것을 꺼냈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감촉.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것을 다시 열어볼 용기가, 내게 있을까.
나는 노트북에 외장 하드를 연결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드라이브가 인식되었다. 나는 폴더를 열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파일들이, 25년 전의 모습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침내 ‘start.html’ 파일을 더블 클릭했다.
화면이 검게 변했다. 그리고, 반딧불이가 나타났다.
나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거꾸로 자라는 나무들, 하늘을 나는 고래들. 서연의 세계가 내 눈앞에 다시 펼쳐졌다.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나는 이제 이 세계의 유령이 아니라, 소중한 유물을 다시 마주하는 고고학자였다.
나는 이 세계를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여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요의 방’에 도착했다. 중앙에 떠 있는 작은 빛. 나는 그것을 클릭했다.
스피커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5년 전, 젊었던 우리의 웃음소리가.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들떠 있던 우리의 대화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나는 미소 지었다. 따뜻하고, 평온한 미소. 그것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내 삶의 가장 아름다웠던 한 페이지로,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 되어 있었다.
나는 창을 닫았다. 그리고 외장 하드를 분리했다. 이제 더 이상 이 파일을 열어볼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기억은 이제 내 마음속에, 안전하고 따뜻한 곳에 보관될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코블렌츠의 밤은 깊고 고요했다. 저 멀리, 언덕 위의 요새가 어둠 속에서 묵묵히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잠식된 유령이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의 기억을 지키는 등대지기도 아니다.
나는 독일 코블렌츠에서 트럭을 모는 한국인이며, 한때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고, 그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현재의 존재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꿈을 향해 다시 코드를 공부하기 시작할 한 명의 학생이다.
오늘 밤, 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길고 길었던 기억의 밤샘(經夜)은 끝났다. 그것은 죽은 과거를 위한 장례식이자, 살아갈 미래를 위한 축제였다.
나는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내 방의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나는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내일 아침, 나를 깨울 알람 소리는 더 이상 폭력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서곡이 될 터였다.
나는 잠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깊고 평화로운 잠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