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As I Lay Dying)

by 남킹

https://youtu.be/6W6HhdqA95w?si=IQHv9ChPqGJQ6anF


바닥에 떨어진 윌리엄 포크너의 책은 입을 벌린 채, 인쇄된 모든 단어들을 어둠 속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 문장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잔인한 진단서이자, 내 존재의 무게를 ‘0’으로 수렴시키는 최종 공식이었다. 그녀가 닫고 나간 현관문의 ‘철컥’하는 소리는 단순한 물리적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세계의 전원이 내려가는 소리였고, 내 영혼의 회로가 타버리는 소리였으며, 내 모든 시간의 흐름이 멈추어 버리는 소리였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을까. 시간의 감각은 마비되었다. 방 안의 어둠은 더 이상 밤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에서부터 스며 나와, 이 공간을, 이 도시를, 이 세상 전체를 집어삼킨 영원한 암흑 그 자체였다. 그녀가 떠난 공간은 텅 비어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부재(不在)라는 실체로 가득 차 있었다. 공기 중에는 그녀의 마지막 분노 섞인 숨결이, 바닥에는 그녀의 단호했던 마지막 발걸음의 흔적이, 그리고 내 망막에는 나를 경멸하며 바라보던 그녀의 마지막 눈빛이 유령처럼 떠다녔다.

나는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관절 마디마디가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렸다. 내 다리가 아니었다. 내 팔이 아니었다. 나는 내 육체를 조종하는 유령 조종사였다.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 어둠에 완전히 잠식되어, 내 존재의 윤곽마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냉장고를 열었다. 차가운 백색광이 어둠을 가르며 쏟아져 나왔다. 그 안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 그녀가 좋아하던 치즈, 우리가 함께 마시던 와인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행복했던 시간의 화석이었다. 나는 생수병을 꺼내 물을 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타는 듯한 갈증을 잠재웠지만, 영혼의 갈증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은 천천히 죽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분해’에 가까운 과정이었다. 나를 구성하고 있던 모든 요소들 – 나의 논리, 나의 재능, 나의 야망, 나의 사랑 – 이 하나씩 해체되어 의미 없는 원자로 흩어지는 과정. 나는 살아 있었지만, 살아있지 않았다. 나는 숨을 쉬었지만, 그 숨에는 삶의 의지가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벤지 컴슨처럼, 시간의 순서가 뒤섞인 채 과거의 파편들 속을 정처 없이 헤매는 유령이 되었다.

나는 며칠 동안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세상과의 모든 소통을 차단했다. 내 오피스텔은 나의 무덤이 되었다. 음식은 모래알 같았고, 잠은 얕은 무덤이었다. 나는 자는 것도, 깨어 있는 것도 아닌 경계의 상태에서 부유했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분노 어린 얼굴이, 눈을 뜨면 그녀가 사라진 텅 빈 공간이 나를 고문했다. 나는 내 몸이 서서히 썩어가는 것을 느꼈다. 근육이 위축되고, 피부는 탄력을 잃었으며, 눈은 퀭하게 들어가 빛을 잃었다. 샤워를 하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그곳에 서 있는 낯선 남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수용소에서 막 풀려난 사람처럼 앙상하고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며칠 만에, 나는 거의 시체처럼 변한 몸을 이끌고 다시 회사에 나갔다. 동료들은 나를 보고 수군거렸다. 그들의 시선에는 동정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내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그녀의 텅 빈 책상이었다. 그곳은 이제 다른 직원이 와서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그녀처럼 책을 쌓아두지도, 기묘한 오브제를 올려두지도 않았다. 그의 책상은 지독히도 깔끔하고 기능적이었다. 나는 그 평범한 풍경을 보며, 마치 내 심장의 일부가 도려내어져 그 자리에 플라스틱 의족이 채워진 듯한 이물감을 느꼈다.

나는 일을 하려고 애썼다. 모니터를 켜고, 텍스트 에디터를 열었다. 수천 줄의 코드가 화면에 나타났다. 한때 나의 왕국이었고, 나의 언어였으며, 나의 유일한 질서였던 그 세계. 그러나 이제 그것들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그저 죽은 벌레들의 시체처럼 보였다. 의미 없는 기호의 나열.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내 손가락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잊어버린 듯했다. 한때 물 흐르듯 유려하게 문법을 잣아내던 내 손은, 이제 뻣뻣하게 굳어버린 의수(義手)에 불과했다. 코드를 짜는 행위. 그것은 더 이상 창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의미한 기호를 끝없이 복사하고 붙여 넣는, 영혼 없는 노동일 뿐이었다.

그녀 없는 프로젝트는 색을 잃었다. 그녀의 디자인이 빠진 나의 코드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과도 같았다. 나는 더 이상 그 구조물에 어떤 영혼도 불어넣을 수 없었다. 나의 논리는, 그녀의 예술이라는 심장이 멎는 순간 함께 죽어버린 것이다.

나는 종종, 나도 모르게 ‘눈 거위’의 폴더를 열어보곤 했다. 그러나 감히 실행 버튼을 클릭할 용기는 없었다.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것을 여는 순간,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행복과 고통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와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임을 알았다. 그 폴더는 내 컴퓨터 안에 존재하는 그녀의 무덤이었다. 나는 매일 그 무덤의 묘비명을 어루만지기만 할 뿐, 감히 그 안을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나는 내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밤마다 의미 없는 술자리에 나갔고, 몸이 부서져라 술을 마셨다. 취하면 잠시나마 그녀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술은 기억을 지우는 약이 아니라,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현상액이었다. 나는 취하면 취할수록 더욱 비참해졌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새벽에 오피스텔로 돌아왔을 때, 나를 맞이하는 것은 싸늘한 공기와 어둠뿐이었다. 나는 현관에 주저앉아,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개처럼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는 텅 빈 복도를 울리다, 이내 공허 속으로 스며들었다.

육체는 정신을 따라갔다. 잦은 음주와 불면으로 내 몸은 급격하게 쇠약해졌다. 위장에서는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머리는 늘 깨질 듯이 아팠다. 나는 내 몸을, 이 고통의 근원인 육체를 증오했다. 이 몸이 존재하는 한, 나는 이 기억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스피커의 전원을 켰다. 이 지독한 침묵을 깨부술 무언가가 필요했다. 어떤 소리라도 좋았다. 나는 내 영혼의 장례식을 치러줄 진혼곡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가락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가기로 약속이라도 되어 있었던 것처럼, 라디오헤드의 앨범으로 향했다. <Kid A>.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부유하는 듯한, 가장 비현실적인 노래를 선택했다. <How to Disappear Completely>.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현악기 소리가 마치 안개처럼, 유령처럼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공간을 부유하는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저 멀리 심해에서 들려오는 듯한 톰 요크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노래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읊조리고 있었다. 주문처럼, 독백처럼.

“That there… That’s not me.”

(저기 저건… 저건 내가 아니야.)

나는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음악은 나를 내 육체로부터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고통받는 이 몸의 주인이 아니었다. 나는 천장으로 떠올라, 소파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는 나 자신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유령이 되었다. 저기 저 남자는 내가 아니다. 그는 그녀를 잃고, 자신의 세계를 잃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낯선 사람일 뿐이다.

음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나는 마지막 결심을 굳혔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프로그래머로서의 ‘나’는 이미 죽었다. 그녀가 내게서 떠나는 순간, 나의 코드는 생명을 잃었다. 나의 논리는 길을 잃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날,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장은 나를 그의 집무실로 불렀다. 그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박 팀장, 이게 무슨 짓인가. 자네에게 걸었던 기대가 얼마나 컸는데. 서연 팀장 때문인가? 사랑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네. 내가 더 좋은 조건으로….”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죄송합니다.”

내 목소리는 감정이 전혀 실려 있지 않은, 건조한 모노톤이었다.

“저는… 더 이상 코드를 짤 수 없습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이었다. 사장은 내 텅 빈 눈을 보고, 더 이상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렇게, 내 모든 것을 바쳤던 세계로부터 걸어 나왔다. 그것은 해방이 아니었다. 그것은 추방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세계에 속할 자격이 없는 이방인이었다.

나는 내 오피스텔을 처분하고, 차를 팔고, 내게 속해 있던 거의 모든 물건을 버렸다. 남은 것은 옷 몇 가지와 약간의 돈, 그리고… 그녀의 흔적이 담긴 낡은 책 몇 권과, 차마 지우지 못한 ‘눈 거위’가 담긴 외장 하드뿐이었다. 나는 작은 여행 가방 하나만을 든 채, 공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이곳이 아닌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항공사 카운터에서 나는 눈을 감고, 전광판에 떠 있는 도시 이름 중 하나를 아무거나 손가락으로 짚었다.

‘프랑크푸르트’.

그렇게 나는, 모든 과거를 등 뒤에 묻은 채 한국을 떠났다. 도망치듯.

“I’m not here…”

(나는 여기에 없어…)

“This isn’t happening…”

(이건 현실이 아니야…)

라디오헤드의 노래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톰 요크의 목소리는 절규처럼 울부짖으며, 수많은 소리의 층 아래로 서서히 침잠해갔다. 사라지고 있었다. 완벽하게.

나는 코블렌츠의 내 아파트, 그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었다. 포크너의 책은 내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그렇다. 나는 지금 죽어 누워 있었다. 25년 전, 프로그래머였던 ‘나’는 그때 완벽하게 죽었다. 나는 내 손으로 직접 그의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독일에서 트럭을 모는 이 남자. 매일 무거운 상자를 나르며, 땀 흘리며, 육체의 고통으로 정신의 고통을 잊으려는 이 남자. 그는 어쩌면,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평생 속죄의 노동을 하는 형벌을 받은 자일지도 모른다. 정신이 만들어낸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육체라는 또 다른 감옥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온 죄수. 나의 이 육체노동은, 내가 그녀의 세계를 지켜주지 못하고, 나의 논리로 그녀를 파괴하려 했던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형벌이었다. 나는 내 손으로, 한때 섬세한 언어를 잣아내던 그 손으로, 이제는 거칠고 투박한 상자를 나르며 나의 죄를 씻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 끝났다. 마지막 음의 잔향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도 어두웠다. 그러나 더 이상 완전한 암흑은 아니었다. 지평선 너머로, 아주 희미하게 여명의 빛이 번져오고 있었다. 곧 아침이 올 것이다. 아침이 오면, 나는 다시 일어나 작업복을 입고, 트럭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무거운 상자들을 싣고, 저 회색의 아우토반 위를 달려야 한다.

나는 내 손을 들어, 희미한 빛 아래서 들여다보았다. 굳은살이 박이고, 상처투성이인, 노동의 손. 이 손은 더 이상 코드를 짜지 못한다. 그러나 이 손은, 살아있다. 이 손은 고통을 느끼고, 무게를 느끼고, 현실을 느낀다.

프로그래머로서의 ‘나’는 죽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여기에 살아있다.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모두 짊어진 채, 유령처럼.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길고 긴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https://youtu.be/-DT86cYZOfs?si=bbscKe5BvWJLnn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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