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NwYtllyt3Q?si=Ot_OU30RMiUlJa_q
알람 소리는 언제나 폭력적이다. 그것은 꿈의 얇은 막을 무자비하게 찢고, 의식을 현실이라는 차가운 수술대 위로 강제로 끌어내는 메스와도 같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규칙적인 고문처럼 귓전을 파고들었다. 나는 신음하며 몸을 뒤척였다. 소파는 밤사이 내 몸의 온기를 모두 빼앗아 간 흡혈귀처럼 차가웠고, 웅크렸던 몸을 펴자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어젯밤, 기억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던 정신의 피로는 그대로 육체의 통증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나는 마치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혹은 끔찍한 사고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처럼 온몸이 욱신거렸다.
창밖은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푸른 여명의 시간이었다. 코블렌츠의 하늘은 짙은 남색에서 옅은 회색으로, 아주 느리게 그라데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색의 변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하늘의 움직임은 내가 막을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거대한 물리법칙의 일부였다. 내 안의 시간은 25년 전 과거에 멈춰버렸지만, 세상의 시간은 어김없이, 무심하게 미래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맨발로 바닥을 짚는 순간, 어젯밤의 기억이 발바닥을 통해 다시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옷가지들, 텅 빈 물컵, 그리고 입을 벌린 채 쓰러져 있는 포크너의 책. 지난밤의 전투 흔적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애써 외면하며 욕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섰다. 그 안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남자가 서 있었다. 푹 꺼진 눈, 면도를 하지 않아 거뭇한 턱, 기름지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의 눈은 죽은 물고기의 눈처럼 흐리멍덩했다. 나는 그를 향해, 아니, 나 자신을 향해 물었다. ‘너는 누구인가.’ 거울 속의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자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았다. 물방울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어젯밤 내가 흘렸던 눈물과, 이 차가운 물방울의 차이를 생각했다. 하나는 기억의 온도였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온도였다. 나는 주방으로 가, 인스턴트커피 가루를 머그잔에 쏟아붓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향기 없는, 오직 카페인이라는 기능만이 존재하는 검은 액체. 나는 그것을 마시며 낡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어젯밤 벗어 던졌던, 땀과 먼지에 절은 그 갑옷을 다시 걸쳐 입는 순간, 나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단절 없이 이어져 있음을, 이 고통의 순환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을 실감했다.
트럭의 시동을 걸었을 때, 해가 뜨고 있었다. 라인강의 수면 위로 붉은 기운이 번져나갔다. 나는 헤드라이트를 켠 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도시의 거리를 달려 물류창고로 향했다. 어젯밤의 격렬했던 기억의 폭풍이 지나간 뒤, 내 머릿 "속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마치 모든 감정이 소진되어 버린 것처럼. 나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연결해 음악을 틀었다. 이번에는 어떤 의도도 없었다. 그저 이 침묵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그러나,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파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Brian Eno - <Music for Airports>. 그것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소리의 풍경’에 가까웠다. 피아노가 이슬방울처럼 톡, 톡, 떨어지듯 미니멀한 멜로디를 연주했고, 그 뒤로 신시사이저가 만들어내는 아련하고 투명한 음의 층이 안개처럼 깔렸다. 구조도, 기승전결도 없는, 그저 부유하고 명멸할 뿐인 소리들. 이 음악은 내 감정을 자극하거나 특정한 기억을 끄집어내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내 머릿속의 모든 소음을 잠재우고, 거대하고 텅 빈 명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내 트럭의 소란스러운 운전석은 어느새 고요한 사원이 되었다.
창고에 도착하자, 이미 다른 동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게차가 굉음을 내며 팔레트를 옮기고 있었고,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 물건이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여 거대한 소음의 교향곡을 연주했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 모든 소음 너머로 브라이언 이노의 투명한 피아노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그 소리의 보호막 안에 갇힌 채, 묵묵히 나의 작업 공간으로 향했다.
오늘 내가 할 일은 어제와 같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규격에 맞는 상자에 담고, 테이프로 밀봉하고, 송장을 붙이는 일. 반복. 무한한 반복. 나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로봇처럼, 생각 없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손은 기억을 되감는 동안에도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박스를 접고, 물품을 넣고, 테이프 디스펜서가 ‘찍-‘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상자의 입을 봉하는, 수천 번, 수만 번 반복된 익숙한 동작들. 나의 정신과 육체는 이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내 몸은 이곳, 2025년 독일의 물류창고에서 현재의 노동을 하고 있었지만, 내 의식은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이 열어준 텅 빈 공간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손에 잡힌 하나의 물품. 그것은 독일산 유기농 분유였다. 단단한 원통형의 캔. 겉에는 포동포동한 아기의 웃는 얼굴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새로운 생명. 미래. 희망.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어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고, 테이프로 밀봉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테이프가 상자를 봉인하는 그 마지막 행위가, 예기치 못한 기억의 스위치를 눌러버렸다. 그것은 서연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근원적인, 이 모든 이야기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었던, 나의 떠남에 대한 기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코블렌츠의 물류창고에 서 있지 않았다. 나는 인천국제공항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떠나고, 나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프로그래머로서의 나’의 장례를 치른 직후. 나는 텅 빈 껍데기였다. 주변의 모든 소음 – 탑승 안내 방송, 여행객들의 들뜬 목소리, 캐리어를 끄는 소리 – 이 나를 통과해 지나갔다. 나는 그곳에 있었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 행 LH713편 탑승을 시작합니다.’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나는 로봇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탑승구로 향했다. 내 손에는 작은 여행 가방 하나만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나의 과거를 증명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이 땅에서 완벽하게 지워버리고 떠나는 참이었다.
비행기 안에 들어서자, 밀폐된 공간 특유의 미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좁은 좌석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활주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나는 창밖을 보지 않았다. 내가 버리고 떠나는 이 땅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륙의 순간.
‘쿵’하는 충격과 함께, 비행기는 무서운 속도로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렸고, 내 몸은 좌석 시트에 깊숙이 파묻혔다. 중력이 내 온몸을 짓눌렀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압박을 넘어선, 내 과거의 모든 무게가 한꺼번에 나를 짓누르는 듯한 압력이었다. 그녀와의 기억, 우리의 사랑, ‘눈 거위’, 그리고 마지막의 그 지독했던 싸움. 그 모든 것이 수만 톤의 무게가 되어 나를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마침내, 기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붕’하는, 모든 중력에서 해방되는 듯한 기묘한 부유감. 나는 그제야 창밖을 내다보았다. 내가 살았던 도시, 서울이 장난감처럼 작아지고 있었다. 한강은 은빛의 실처럼 빛났고, 빌딩들은 성냥갑처럼 보였다. 그녀와 내가 함께 걷던 거리, 우리가 함께 야근하던 빌딩, 나의 오피스텔, 그녀의 집.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점이 되어, 거대한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서자, 지상의 모든 풍경은 사라졌다. 창밖에는 오직 눈부신 햇살과 끝없이 펼쳐진 하얀 구름의 바다만이 존재했다. 나는 그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해방의 눈물이었다. 나는 마침내, 나를 짓누르던 모든 중력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나의 기억으로부터, 나의 과거로부터 완벽하게 도망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결코, 그녀의 소식을 찾아보지 않겠다고.
그것은 그녀를 잊기 위한 결심이 아니었다. 정반대였다. 그것은 그녀를, 나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로 박제하기 위한, 가장 잔인하고 이기적인 결심이었다.
나는 그 결심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인터넷이 세상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의 소식까지 알아낼 수 있는 시대에, 나는 단 한 번도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입력하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친구들에게, 그 누구에게도 그녀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나는 의도적으로, 필사적으로 그녀에 대한 모든 정보로부터 나를 격리시켰다.
왜 그랬을까. 나는 지금껏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저,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내 무의식 깊은 곳에 봉인해 둔 금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브라이언 이노의 명상적인 음악 속에서, 나는 비로소 그 이유를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만약 내가 그녀의 소식을 찾아본다면, 결과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결과 모두, 나를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첫 번째 가능성: 그녀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
그녀는 결국, 세상의 모든 억압과 타협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꽃피웠다. 그녀의 이름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 작가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그녀의 작품은 유수의 비엔날레에 초청받으며, 평론가들은 그녀를 ‘디지털 시대의 버지니아 울프’라 칭송한다. 그녀는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모두 예술로 승화시켜, 자신을 조롱했던 이 세상을 향해 가장 우아하고 통쾌한 복수를 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나의 패배를, 나의 비겁함을, 나의 어리석음을 완전하게 증명하는 최종 판결문이 될 것이다. 그녀가 옳았고, 내가 틀렸다. 그녀가 싸워서 쟁취한 그 눈부신 세계는, 내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가두려 했던 바로 그 감옥의 바깥에 존재했다. 그녀의 성공은, 나의 삶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실수였음을 증명하는 기념비가 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위대한 서사에 등장하는, 그녀가 극복해야 했던 장애물, 혹은 잠시 머물다 떠나간 어리석은 조연 A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빛나는 성공을 멀리서 지켜보며, 내 자신의 초라함과 비루함을 매일같이 확인해야만 하는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고통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두 번째 가능성: 그녀는 실패했다. 혹은, 타협했다.
그녀는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녀의 날카로웠던 예술혼은 세상의 풍파에 깎이고 닳아 무뎌졌다. 그녀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상업적인 디자인 회사에 다시 들어가, 영혼 없는 ‘전단지’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예술을 완전히 포기하고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그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첫 번째 가능성보다 훨씬 더 끔찍한 비극일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모든 저항과 분노가, 그녀의 눈물과 고통이, 결국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젊은 날의 치기였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라는 존재의 본질을, 그녀의 신념 전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눈 거위’, 우리의 유일했던 진실, 그 모든 것이 한낱 철없는 연인들의 불장난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그녀가 평범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내가 사랑했던 그 여자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죽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 죽음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녀의 패배는, 곧 나의 패배이자, 우리 사랑의 완벽한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찾아보지 않았다.
찾아보지 않음으로써, 나는 그녀를 나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게 만들었다. 나의 서연은, 위대한 예술가인 동시에 비극적인 실패자이다. 그녀는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걸었으며, 동시에 서울의 어느 변두리에서 무명의 예술가로 굶주리고 있다. 그녀는 양자역학의 중첩 상태처럼, 가능한 모든 상태로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내가 검색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모든 가능성은 하나의 현실로 수렴되며 붕괴할 것이다. 나는 그 붕괴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라는 신화, 그녀라는 미스터리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지난 25년간 찾아 헤맸던 것은, 잃어버린 ‘그녀’가 아니었다. 내가 찾아 헤맸던 것은, 잃어버린 ‘시간’ 그 자체였다. 그녀와 내가 함께 존재했던,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우리의 모든 순간이 창조이자 사랑이었던 바로 그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은 결코 되찾을 수 없다. 그것은 과거라는 박물관에 영원히 전시된 박제일 뿐이다.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이 끝나고 있었다. 마지막 피아노 음이 긴 여운을 남기며, 창고의 소음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사라졌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분유 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밀봉했다. 이제 이 상자는, 이 안에 든 물건은, 나의 손을 떠나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미래로 보내질 것이다. 나의 과거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이 박이고, 상처투성이인 손. 이 손은 25년 전, 그녀와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나오던 그날부터, 오직 현재의 노동만을 위해 존재해왔다. 이 손은 과거를 검색하지 않는다. 이 손은 미래를 설계하지 않는다. 이 손은 그저, 지금 이 순간의 무게를 들어 올리고, 옮기고, 내려놓을 뿐이다.
나는 다음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반복적인 노동을 시작했다. 마음속의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뒤, 기묘한 평온이 찾아왔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나의 도피, 나의 침묵, 나의 노동. 그 모든 것이 그녀라는 신화를 지키기 위한, 나만의 처절한 방식이었음을. 나는 그녀의 기억을 지키는 등대지기(Lighthouse Keeper)였다.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운 섬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빛을, 나 자신만을 위해 밝히고 있는.
그렇게, 나의 하루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났던 길고 긴 여행은, 결국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로, 이 노동의 현실로 나를 되돌려 놓았다.
https://youtu.be/vjgtlUhyFMg?si=vZ6W0GBYVWw7K_T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