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 자국 (The Lipstick Stains)

by 남킹


죽음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해석의 시작이었다. 호텔 알자스의 16호실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마지막 숨이 멎었을 때 그의 비극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비로소 신화가 될 자격을 얻었다. 텅 빈 육체는 이제 더 이상 고통받는 주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텍스트, 즉 후세의 모든 애도자와 혐오자, 연구자와 숭배자들이 각자의 욕망과 편견을 투사하여 읽어낼 성유물(聖遺物)이 되었다. 방 안을 지배하던 저속한 벽지는 더 이상 그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그의 마지막 순교를 증언하는 성화(icon)의 배경이 되었고 그의 마지막 경구는 그 추함 덕분에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그 첫 번째 해석자는 로버트 로스였다. 그는 친구의 시신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의 슬픔은 감상적인 분출을 허용하기에는 너무나 깊고 책임져야 할 무게가 무거웠다. 그는 이제 와일드의 가장 충실한 친구가 아니라 그의 기억을 위한 최후의 전사(戰士)가 되어야만 했다. 그는 와일드의 죽음이라는 비참한 현실을, 하나의 위대한 서사의 마지막 장으로 정리하고 보존해야 할 의무를 느꼈다. 그는 복음사가 마가였고 그의 베드로는 이미 세 번 그를 부인한 뒤였다.

첫 번째 과제는 육체의 처리였다. 한때 런던 사교계를 뒤흔들었던 거인의 죽음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의 유품이라고는 낡은 옷 몇 벌과 갚지 못한 빚뿐이었다. 로비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장례를 준비했다. 장례식은 파리 북쪽의 생 오노레 데일로(Saint-Honoré-d'Eylau) 성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조문객은 스무 명 남짓, 대부분은 그의 몰락 이후에도 그를 버리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친구들과 파리에 거주하던 영국인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은 한 시대의 지성이, 이국땅의 싸구려 호텔에서 뇌수막염이라는 비참한 병으로 스러져간 사실에 대해 침묵으로 애도했다. 그들의 침묵 속에는 한 천재의 죽음에 대한 슬픔뿐만 아니라, 그를 그렇게 내몬 세상의 잔인함에 대한 분노와 자신들의 무력함에 대한 부끄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앨프리드 더글러스는 장례식이 모두 끝난 뒤에야 나타났다. 그는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고 그의 아름다운 얼굴은 비극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창백하고 고뇌에 차 있었다. 그는 와일드의 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그 눈물은 진실된 슬픔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역할에 대한 마지막 나르시시즘적 몰입이었을까. 로비는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죽은 남자의 유령이, 용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거대한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보시는 로비에게 와일드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물었고 로비는 감정을 배제한 채 사무적인 어조로 사실만을 전달했다. 그들의 대화는 짧았고 그 후 그들은 다시는 사적으로 만나지 않았다. 보시는 이제 와일드의 삶에서 퇴장한 배우였고 로비는 그 무대를 정리해야 할 무대감독이었다.

와일드의 시신은 파리 남쪽의 바뇌(Bagneux) 공동묘지에 있는 임시 무덤에 묻혔다. 그것은 이름도 없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역이었다. 그의 첫 번째 무덤 위에는, 그의 위대한 이름 대신, 그의 마지막 가명과 감옥 번호만이 새겨진 초라한 나무 십자가가 세워졌다. 시궁창은 별을 삼킨 뒤, 그 흔적마저 지워버리려 하고 있었다.

로비의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와일드의 문학적 유언 집행자로서, 흩어지고 잊힌 그의 유산을 수습하는 고고학자가 되었다. 그는 먼저 와일드가 남긴 막대한 빚을 청산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돈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와일드가 생전에 졌던 모든 채무를—심지어 퀸즈베리 후작에게 갚아야 할 소송비용까지도—하나하나 갚아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금전적 변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와일드의 이름에 묻은 세속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정화(淨化) 의식이었다.

동시에, 그는 와일드의 작품들을 되살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여러 출판사를 설득하여 와일드의 전집을 기획했다. 1905년 독일에서 먼저 그의 작품들이 재평가받기 시작했고, 마침내 1908년 런던에서 그의 전집이 출간되었을 때, 세상은 그를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비극적인 삶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었고, 그의 경구들은 예언처럼, 그의 희극들은 시대를 초월한 진실처럼 다가왔다.

로비의 가장 중요하고도 위험한 과업은, 와일드가 레딩 감옥에서 쓴 5만 단어의 편지, 즉 <심연으로부터>를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원고를, 마치 성배(聖杯)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이 글이 와일드의 영혼이 쓴 가장 정직한 자서전이자, 그의 비극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변론서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글은 동시에, 살아있는 앨프리드 더글러스의 명예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다.

1905년, 로비는 보시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이 담긴 부분을 삭제한 축약본을 먼저 출간했다. 세상은 와일드의 고통의 깊이와 그의 영적인 성찰에 경탄했다. 그는 더 이상 타락한 남색가가 아니라, 고통을 통해 구원에 이른 순교자로 비치기 시작했다. 그의 아포테오시스(apotheosis), 즉 신격화가 시작된 것이다.

앨프리드 더글러스의 삶은, 와일드의 유령에 영원히 발목 잡힌 채, 기이하고 모순적인 궤적을 그렸다. 그는 와일드가 죽은 뒤 시인 올리브 커스탠스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고,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격렬한 반(反)동성애 운동가가 되기도 했다. 그는 와일드를 자신을 타락시킨 악마라고 비난하는 글을 썼고, 와일드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 발버둥 쳤지만, 그의 모든 행위는 역설적으로 그를 오스카 와일드의 연인이라는 정체성 안에 더욱 깊이 가두어버렸다. 그는 와일드의 비극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영원히 유다 혹은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을 떠맡은 채, 자신만의 지옥을 살아야 했다. 훗날 그는 윈스턴 처칠을 비방한 혐의로 감옥에 갇혔고, 그곳에서 와일드를 모방하여 <높은 곳에서(In Excelsis)>라는 시를 썼다. 그는 평생 동안 와일드를 부정하고 경멸했지만, 그의 삶은 결국 와일드의 삶을 가장 서투르고 비참하게 모방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로비 로스의 마지막 꿈은, 와일드에게 그의 이름에 걸맞은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아, 마침내 바뇌의 초라한 무덤에서 와일드의 유해를 파리에서 가장 영예로운 페르 라셰즈(Père Lachaise) 묘지로 이장했다. 그곳은 쇼팽과 발자크, 몰리에르가 잠들어 있는, 불멸의 영혼들을 위한 마지막 도시였다.

로비는 젊고 야심 찬 조각가 제이콥 엡스타인(Jacob Epstein)에게 묘비의 제작을 의뢰했다. 엡스타인은 전통적인 천사상이나 십자가를 거부했다. 그는 와일드의 이교도적(pagan)이고 신비주의적인 정신을 기리기 위해, 대영박물관의 아시리아 유물에서 영감을 얻어, 거대한 날개를 가진 스핑크스 형상의 천사를 조각했다. 그 천사의 얼굴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었고, 그 표정은 환희와 고통, 지혜와 광기가 뒤섞인,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오스카 와일드적인 기념비였다.

그러나 이 기념비는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또 다른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천사상의 거대한 성기(性器)가 너무나 노골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파리 시 당국은 타르를 칠한 덮개로 그 부분을 가려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밤중에 분노한 예술가들이 그 덮개를 떼어버리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와일드는 죽어서까지도, 예술과 외설,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유령은 여전히 파리의 밤을 배회하며, 부르주아들의 위선을 조롱하고 있었다.

1918년, 로버트 로스는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유언에, 자신의 유해를 화장하여,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 안에 함께 안치해달라는 마지막 소원을 남겼다. 그의 사랑은, 죽음이라는 마지막 경계마저 넘어서려 했다. 그러나 당시 가톨릭 교리와 법률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유골함은 수십 년 동안 페르 라셰즈 묘지의 지하 납골당에 보관된 채, 친구의 곁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려야만 했다.

시간은 흘렀다. 20세기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고 세상은 와일드가 알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1950년, 로비 로스의 유언이 남겨진 지 32년 만에, 그의 유골함은 마침내 와일드의 무덤 뒤편에 만들어진 작은 공간을 통해, 조용히 그의 친구 곁에 안치되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침내 한 줌의 재가 되어, 영원히 함께하게 되었다. 파괴적인 열정의 상징이었던 보시가 세상의 조롱 속에서 늙어가는 동안, 헌신적인 우정의 상징이었던 로비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킨 것이다.

와일드의 부활은 계속되었다. 그의 희곡들은 전 세계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상연되었고, 그의 동화들은 아이들의 잠자리에서 읽혔으며, 그의 삶은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심연으로부터>의 무삭제 완역본이 출간되었을 때, 세상은 그의 고통의 진정한 깊이와 그의 용서의 위대함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빅토리아 시대의 스캔들이 아니었다. 그는 시대를 초월하여, 억압받는 모든 소수자와, 세상의 몰이해에 맞서 싸우는 모든 예술가들의 수호성인(patron saint)이 되었다. 2017년, 영국 정부는 이른바 '앨런 튜링 법'을 통해, 과거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모든 이들을 사후 사면했다. 그의 죄는, 마침내 법적으로도 지워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페르 라셰즈의 그의 무덤에서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무덤을 찾아온 순례자들이, 존경과 사랑의 표시로, 엡스타인의 석조 천사상에 입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입술에 묻어 있던 립스틱 자국이, 차가운 돌 위에, 수백 수천 개의 붉고 분홍빛의 낙인처럼 남았다.

그 립스틱 자국들은, 단순한 팬덤의 표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의식이었고, 하나의 선언이었다. 그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 '감히 그 이름을 말하지 못했던 사랑'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심지어 자랑스럽게 그 색채를 드러내는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것은 여성들이, 남성들이, 그리고 그 어떤 성별로도 규정되지 않는 모든 이들이, 그의 위트와 용기, 그의 아름다움과 슬픔에 보내는 감각적인 찬사였다. 립스틱의 유분(油分)이 석재를 훼손시킨다는 우려 때문에 2011년 유리 보호막이 설치되었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유리벽 위에 키스를 남긴다. 입맞춤은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 89구역에는, 날개 달린 아시리아의 스핑크스가, 수많은 입맞춤의 흔적을 훈장처럼 단 채,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아래, 한때 세상을 경멸했던 남자와, 그를 끝까지 사랑했던 남자가 함께 잠들어 있다. 그는 한때 "세상에서 사람들이 나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내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세상은 그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의 비극은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되었고, 그의 무덤은 그의 가장 화려한 무대가 되었다.

그는 별을 본 죄로 시궁창에 떨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그가 떨어진 시궁창 속에서, 여전히 반짝이고 있는 별의 조각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차가운 별 조각들을 주워, 자신들의 뜨거운 입술로 녹이고 있다. 립스틱 자국. 그것은 그의 패배가, 결국에는 가장 눈부신 형태의 승리였음을 증명하는, 세상에 남겨진 마지막,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경구(警句)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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