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본질이 박탈당한 상태, 즉 데카르트적 자아(自我)가 사유(思惟)의 능력을 상실하고 오직 고통이라는 단일한 감각의 총합으로 환원된 그 지점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당하고' 있었다. 레딩 감옥의 독방은 그의 육체를 가둔 물리적 공간인 동시에, 그의 영혼을 소멸시키기 위해 고안된 형이상학적 진공(眞空)이었다. 그의 과거는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절단되었고, 미래는 아들들의 이름이 바뀌는 순간 지워졌다. 그는 이제 기억과 희망 사이의, 그 어떤 좌표에도 속하지 않는 림보(limbo)의 거주자였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마치 낡은 양피지 위에 새로운 글씨가 덧씌워지듯, C.3.3.이라는 죄수 번호의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아래로 희미하게 지워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일과는, 베케트의 희곡처럼, 무의미한 행위의 부조리한 반복이었다. 그는 깨어났고, 먹었고, 노동했고, 잠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에서 주체는 소거되었다. 그는 깨어난 것이 아니라 깨워졌고, 먹은 것이 아니라 먹여졌으며, 노동한 것이 아니라 노동당했다. 그의 의지는 감옥의 규율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완벽하게 종속되었고, 그의 정신은 무감각이라는 이름의 두꺼운 방어막 뒤로 후퇴하여, 동면(冬眠)에 들어간 짐승처럼 최소한의 생명 활동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 애썼다.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고통을 느끼는 '나'라는 주체가 존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꺼이 무(無)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철저하게 계산된 비인간화의 시스템에도, 인간적인 것의 예기치 않은 균열은 찾아오는 법이다. 변화는, 폭력적인 혁명이 아니라, 행정적인 교체의 형태로 조용히 찾아왔다. 레딩 감옥의 가혹했던 전임 소장이 물러나고, 메이저 넬슨(Major Nelson)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소장이 부임했다. 그는 전임자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의 눈에는 죄수를 향한 경멸이 아니라, 부서진 인간을 향한 희미한 연민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와일드가 단지 또 하나의 죄수가 아니라, 한때 위대한 예술가였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새로운 소장은, 와일드에게 감옥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었다. 그것은 추가적인 담요나 개선된 식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막의 순례자에게 주어지는 한 모금의 물보다, 단테를 베아트리체에게로 인도한 한 줄기 빛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그것은 책이었고, 그리고 마침내, 종이와 펜이었다.
처음 간수가 그의 독방으로 파란색 관제(官製) 용지와 잉크병, 그리고 깃펜 한 자루를 들여왔을 때, 와일드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눈은 지난 일 년간, 회색 벽과 검은 쇠창살, 그리고 죄수복의 화살표 무늬 이외의 다른 색과 형태를 인지하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석기 시대의 원시인이 처음으로 불을 마주하듯, 경외와 공포가 뒤섞인 눈으로 그 낯선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종이. 그것은 단순한 셀룰로오스 섬유의 집합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능성의 평원이었고, 기억의 거울이었으며, 아직 쓰이지 않은 운명의 백지(白紙)였다. 그것은 그에게 잃어버렸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이자, 동시에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심판대였다.
펜. 그것은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그 어떤 지팡이나 담배 케이스보다도 더 익숙하고 본질적인, 그의 신체의 일부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손은 오컴을 줍고 트레드밀을 돌리느라, 굳은살이 박이고 투박해져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집었다. 깃대의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이, 그의 신경 말단을 통해 잊혔던 감각을 깨웠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실어증에 걸렸던 사람이, 마침내 자신의 혀가 아직 존재함을 깨닫는 순간과도 같았다. 그는 로고스(Logos)를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쓸 것인가? 그는 한때, 언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가장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의 교향곡을 연주했던 마에스트로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머릿속은, 불협화음과 소음, 그리고 침묵만이 가득했다. 그는 희곡을 쓸 수도, 시를 쓸 수도, 동화를 쓸 수도 없었다. 그러한 예술 형식들은, 어느 정도의 거리와 관조, 그리고 미학적 허구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그 어떤 수사로도 가릴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고통뿐이었다.
그는 잉크병에 펜촉을 담갔다. 검푸른 잉크가, 마치 그의 정맥에서 뽑아낸 피처럼, 펜촉을 타고 올랐다. 그는 백지 위에 펜을 가져갔다. 그리고 첫 단어를 썼다.
My Dearest Bosie...
그것은 저주였다. 그리고 기도였다. 그는 자신의 파멸을 초래한 그 이름을, 자신의 구원을 위한 첫 주문으로 사용했다. 그는 앨프리드 더글러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편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5만 단어에 달하는, 인류 문학사상 가장 길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찬 고발장이자, 자기 분석서였으며, 사랑의 부검 보고서였다. 그것은 그의 칼바리 언덕 위에서, 온몸의 피와 물을 쏟아내며 쓰는, 자기 자신을 향한 복음서였다.
그는 매일 아침, 소장이 허락한 몇 장의 종이를 받아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글을 쓰는 행위는, 처음에는 육체적인 고통이었다. 그의 손가락은 펜을 잡는 법을 잊어버렸고, 그의 등은 추위와 불편한 자세로 인해 끊어질 듯이 아팠다. 그러나 일단 첫 문장이 시작되자, 그의 기억은 둑이 터진 강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기억은, 더 이상 미화된 낭만의 필터로 걸러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옥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모든 감상적인 수분을 증발시킨 채, 가장 추악하고 비참한 진실의 결정체로 응축되어 있었다. 그는 보시와의 관계를, 마치 냉정한 해부학자가 시체를 해부하듯, 하나하나 절개하기 시작했다.
그는 보시의 사치와 허영을 기록했다. 그들이 함께 보냈던 2년 반 동안, 보시가 자신의 돈으로 탕진한 5,000파운드라는 구체적인 액수를 떠올렸다. 그것은 단순한 금전적 손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예술과 노동에 대한, 보시의 근원적인 경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쓴 희곡의 저작료가, 보시의 하룻밤 도박 빚과, 그의 정부(情婦)에게 주는 선물 값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았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는 보시의 지독한 이기심을 해부했다. 와일드 자신이 독감에 걸려 고열로 신음하고 있을 때, 보시는 그의 병실에 잠시 들러 돈을 요구한 뒤, 그 돈으로 마차를 빌려 드라이브를 가고 그랜드 호텔에서 호화로운 저녁을 즐겼던 일을 기억해냈다. 그는 아팠던 것이 아니라, '지루했다'고 불평하던 보시의 그 차가운 목소리를, 마치 어제 들은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렸다. 그 기억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그의 내장을 긁어내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는 보시의 지적 천박함과 예술에 대한 무지를 폭로했다. 보시는 와일드의 작품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가 사랑한 것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 작품이 가져다주는 명성과 사회적 지위였다. 그는 와일드가 새로운 희곡의 구상을 이야기할 때면, 하품을 하며 화제를 돌렸고, 와일드가 고독 속에서 글을 쓰려 할 때면, '지루하다'는 이유로 그를 끌어내어 소란스러운 레스토랑으로 향했던 수많은 밤들을 기록했다. 그는 자신의 예술이, 보시의 공허한 자아를 채우기 위한 장식품으로 전락했음을, 그리고 자신은 기꺼이 그 역할을 자처했음을 깨달았다.
"너는 너의 삶을 사랑했지, 너의 예술은 사랑하지 않았어." 그는 썼다. "나는 나의 예술을 너의 삶보다 더 사랑했지."
글을 쓰는 행위는, 그에게는 일종의 자기 최면이자, 고통스러운 엑소시즘이었다. 그는 보시를 비난함으로써, 그에게 그토록 맹목적으로 복종했던 자기 자신을 대신 채찍질하고 있었다. 그의 분노는, 보시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향한 것이었다. 그는 왜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했는가? 그는 왜 그 파괴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그는 자신의 성격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 동안, '가벼움(lightness)'과 '피상성(superficiality)'을 최고의 미덕으로 숭배해왔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진지한 감정, 깊은 고통, 추악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모든 것을 경구와 역설의 유희로 바꾸어, 현실의 무게로부터 도망쳤다. 그리고 보시는, 그 피상성의 가장 완벽한 화신(化身)이었다. 보시는 깊이가 없었고, 양심의 가책이 없었으며, 오직 순간의 쾌락만을 추구했다. 와일드는 보시에게서,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그러나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완벽한 도덕적 무책임의 상태를 발견했고, 그것을 숭배했던 것이다.
"나는 쾌락의 길을 따라 너무 멀리 갔다가, 슬픔의 길에서 길을 잃었네. 나의 아버지는 나를 두려움 속에 보냈고, 나의 어머니는 나를 자만 속에 보냈지. 그리고 너는, 나를 파멸 속에 보냈네."
그의 글쓰기는 연대기적인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의 의식은, 마치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처럼, 하나의 기억이 다른 기억을 연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자유 연상의 흐름을 따라 흘러갔다. 그는 퀸즈베리 재판의 비참한 순간들을 다시 겪었다. 그는 자신이 왜 친구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그 무모한 소송을 시작했는지를 분석했다. 그것은 보시에 대한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오만함, 즉 자신의 지성과 언변이 세상의 모든 어리석음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치명적인 휴브리스(hubris)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법정에서, 마치 희극배우처럼, 값싼 박수갈채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겼음을 고백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육체적 타락에 대해서도 썼다. 그는 런던의 뒷골목에서 돈으로 샀던 소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그 행위가, 귀족 사회의 위선에 대한 저항이라는 지적인 자기기만 뒤에 숨겨진, 단순한 육욕의 발현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가 탐했던 것은, 젊음이라는 이름의, 가장 덧없고 동물적인 형태의 육체성이었음을 깨달았다.
매일 저녁, 간수는 그가 쓴 원고를 수거해갔다.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굴욕이었다. 그의 가장 내밀하고 고통스러운 고백이, 낯선 이의 차가운 시선에 의해 검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사실은 그의 글쓰기를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편지가 결코 보시에게 전달되지 못할 수도 있음을, 혹은 세상에 공개되지 못한 채 사라져버릴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자기 분석의 과정 속에서, 기적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불행을, 보시나 퀸즈베리, 혹은 부당한 사회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자신의 성격과 선택이 빚어낸, 필연적인 귀결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했던 것처럼, 운명을 사랑하는 법(Amor Fati)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고통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것은 더 이상 완벽한 형태나 화려한 색채에서 비롯되는, 피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완전함과 슬픔, 연민과 용서 속에서 피어나는, 더 깊고 영적인 차원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는 성 프란체스코가 나병 환자를 껴안고 입 맞추었을 때 느꼈을 법한, 추함 속에서 신성함을 발견하는 경지를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깨달음의 정점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재발견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더 이상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속에 박제된, 경건하고 무미건조한 성인(聖人)이 아니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주의자이자, 가장 완벽한 낭만적 예술가였다. 그의 예술은 시나 그림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삶 자체였다. 그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였고, 그 고통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가장 장엄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슬픔 속에서 기쁨을 찾았고, 굴욕 속에서 영광을 발견했으며, 죽음을 통해 영생을 얻었다.
"슬픔이야말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인 감정이라네. 쾌락이 아름다운 육체를 위한 것이라면, 슬픔은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것이지. 그리스도는 슬픔의 신비를 완벽하게 이해했네. 그가 갈릴리의 언덕에서 설교했던 것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겪었던 고뇌가 훨씬 더 위대한 진리를 담고 있다네."
그는 자신의 고통이, 자신을 그리스도와 같은 경지로 이끌 수 있는, 신이 내린 시련이자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감옥을,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영적 연금술(alchemy)이 일어나는 아타노르(athanor), 즉 겸손과 참회를 통해 자신의 납덩이 같은 영혼을 황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용광로로 여기게 되었다.
마침내, 두 달에 걸친 대장정의 끝이 보였다. 그의 편지는, 보시에 대한 원망과 저주로 시작하여, 자기 자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고통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성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향한 희미한 희망으로 끝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보시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사랑은, 맹목적인 숭배나 파괴적인 집착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방의 모든 결점과 죄를 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연민하는, 아가페(agape)에 가까운 사랑이었다.
그는 마지막 문장을 썼다.
Your Affectionate Friend, Oscar Wilde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의 앞에는, 그의 영혼의 피와 잉크로 쓰인, 거대한 원고 뭉치가 쌓여 있었다. 그는 탈진 상태였다. 그의 몸은 비어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기이한 평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경험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비극을 언어로 재구성함으로써, 그 비극을 극복하고 그것의 주인이 되었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똑같은 회색 하늘, 똑같은 돌벽이 보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시궁창에 갇힌 죄수가 아니었다. 그는 심연(De Profundis)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이름의, 가장 어둡고도 가장 빛나는 별을 발견한 순례자였다. 그는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구원으로 가는 길의 첫걸음을 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펜 끝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