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아픈 자리다. 아물지 못해 통증으로 남는 눈물이자 슬픔. 자주 틈틈이 아리고 심란한 흔적, 아프다는 것과 잊을 수 없다는 것이 공존하는 모호한 경계. 어떤 날엔 아랫입술을 깨물어야 하고 또 어떤 날엔 절로 나오는 한숨에 고개를 저어야 하는, 상처가 지고 오는 헛헛한 심사는 우울을 넘어 쓸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상처를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은 생각처럼 쉽사리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딱지가 앉을 겨를이 없이 시시때때로 피가 나는 것 같고 아파오는 하루 또 하루. 그러니까 결국,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상처는 누군가로부터 온다. 혹은 누군가로부터 왔다고 믿는다. 길을 걷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결국엔 길바닥이 무릎에 상처를 낸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오류가 명백하지만 자의에 의해 생긴 상처란 드문 법이다. 하물며 사람이랴.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심사,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내, 이를 갈다가 미안해지고 다시 미안해하다가 마침내 환멸에 이르게 되는 마음은 이런 법칙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기가 막히고 눈물이 나서 넋을 놓게 되고 마침내 괭한 북어의 눈으로 말라가는 것이다.
상처는 내가 키우며 산다. 잊을 만하면 무엇에 대여 화들짝 놀라고 겨우 참을 만하면 가려워져서 붉고 서러운 상처는 다시 덧나고 커져만 간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바람이 불고 날이 흐려서, 상처는 아리고 쓰리다. 원망이 쌓여 독해지다가도 어떤 날 어떤 자리에서는 아무 뜻 없이 좋았던 일 잘해주던 일만 생각나는 마음의 변덕이 속절없이 그렇다. 추억을 봉인하거나 지난 기억으로 묻어야만 딱지가 앉는 법인데 안 그래도 아픈 상처를 도리어 내가 긁고 키우며 사는 일이라니.
무릇 상처란 허방을 딛고 견디는 일, 미안하지만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있을 뿐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잊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잊는 마음, 잊히는 사람이 전부인 처방. 어떤 슬픈 말보다 독하고 야멸찬 단절이 있고 난 후에야 서서히 무뎌지는, 자기 자유를 확장하는 칸트의 서글픈 법칙이자 보호본능의 헛헛한 발아. 이쯤되면 이제 아물어 가는 모든 슬픔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닌 셈이다. 잊는 순간부터 천천히 아팠던 자리가 되고 어느 날인가는 그저 쓸쓸한 하나의 흉터로 남게 되는 것이므로.
Epilogue
그러나 우리는 매번 그렇지 못하다. 무덤덤한 흉터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할 뿐더러, 저리게 돋아나는 너 그대 당신을 송두리째 버리고 싶으면서도 미련한 뒷마음은 아주 조금쯤 기억하고도 싶기 때문이다. 통점 없이 몸의 안팎에 남아 생을 맴도는 또 하나의 상처다. 그러니까 다시, 결국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마치 내 손바닥에 손금 같이 남겨진 흉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