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았다.
굳이 8월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신
선열들의 드높은 뜻을 기리며 살아간다.
내가 그 시기에 살았다면,
독립투사들처럼 내 재산과 목숨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쳤을까 질문해 본다.
"항상 내 가정만 걱정하고 살면
가정만큼 밖에 크지 못한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사회에 봉사하면
그 사회만큼 커진다.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면서 살면
너도 모르게 민족과 국가만큼 성장하게 된다.
그게 인생이다."
105세 철학자 김형석(1920~ )이 중학생 시절
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말이다.
이 말은 선언적이지만 강력하게 다가온다.
나(가정) 보다 사회(공동체),
사회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살면
한 개인이 그만큼 성장하는지 깨달을 길은 없다.
새해 소원이 뭐냐고 물어보면
거의 이렇게 답한다.
"새해에는 취직과 결혼에 성공하고 싶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바란다."
나와 가족의 행복을 바라며 산다면
내 그릇의 크기가 거기까지만 커질까?
사람은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존재다.
뭐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살아야 사회와 국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소망 정도는 지니고 있을 듯싶다.
"각종 폭력이나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회적 약자와 이주민들이
차별과 소외를 받지 않고
이 땅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고래(강대국)들의 싸움에 등 터지지 않도록
새우(한국)가 덩치 큰 철갑 새우가 되기를
희망한다."
스위스 정신의학자이자 분석심리학 개척자인
카를 융(Karl Gustav Jung)은 중년의 과업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중년이 되면 또 다른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자기 삶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방향이 아니고
자기가 여태껏 쌓아온 지적 경험과 지혜,
물적 토대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수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중년의 삶은
아주 중요한 과제를 수행하지 않고 살아가는 셈이다."
'중년'을 '어른'으로 바꿔도 의미는 통한다.
자칫하면 '꼰대'로 불릴지 모른다.
요즘 같은 AI 시대에 지식과 정보, 지혜까지
어른에게서 얻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런 세상에 어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되겠지만
어른은 다음 세대에 기여한다는 자세로
살아야 되리라 믿는다.
앞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그 시기에 살았다면,
독립투사들처럼 내 재산과 목숨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쳤을까?
실제 그런 상황에 부닥친다면
나도 어떻게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응답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독립투사와 순국선열은
그들의 집안과 재산, 목숨을 후손들에게
선물로 바치셨다.
조상에게 받은 선물로
이제 우리는
'선진국' 소리 듣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이 땅이 위기에 처한다면
나도 후손들에게 귀한 선물을
내던져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