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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May 31. 2019

스테이크와 함께 갈 수 없던
'뼛속까지 시골 입맛'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4화


 "단 것도 안 좋아해, 고기도 안 좋아해, 커피도 안 미셔, 와인도 안 마셔. 거참 신기하네. 아니 이런 사람이 어떻게 여기로 시집을 왔지?"
 
 여기서 알고 지내는, 커피를 좋아하는 한 한국분이 언젠가 내게 웃으며 건넨 말이다. 나도 웃으며 답했었다. "그러게요. 저도 그게 신기하네요"
 
 어쩌다 나는 나와 너무 다른 이 곳에 와 살고있는 걸까. 무엇이 나를 이 불편함들 속으로 데려다 놓았나.
 
 그렇다. 내가 사는 이 곳은 '와인의 천국'이다. 차를 타고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드넓게 펼쳐져있는 포도밭들이 지천이며 좋은 기후와 좋은 땅이라는 '완벽한 조건'에서 재배되는 이곳의 와인은 여기 사람들의 큰 자랑이기도 하다. 그런 나라에까지 와서 와인을 안 마시다니. 와인 애호가가 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와인 실컷 마실 수 있어 좋겠어요" 하다가도 와인을 안 마신다는 내 대답에 당황스러워하곤 했었다. 
 
 하지만 어쩌랴. 원래 술을 못 마시는 나에게 와인은' 똑같이 쓴 맛이 나는 음료'일 뿐인걸. 다른 술들과 다른 게 있다면 확실히 '깊고 그윽한 풍미'가 있다는 것과 '기품'이 흐른다는 정도. 물론 게 중에는 너무 부드러워 목 넘김이 좋은 것들이 있기는 하다. 기분이 날 때는 몇 모금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 향은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차 마시는 걸 좋아했지 커피는 원래 안 마셨다. 
 
 단 것은 또 어떨까. 나는 어릴 때부터 단 것을 안 좋아했다. 어린아이라면 다 좋아하는 사탕이나 과자도 안 좋아했던 나는 그런 것을 찾아서 먹어본 기억조차 별로 없다. 나는 그냥 '밥만' 먹던 아이였다. 그저 '밥'이 좋았고, 밥할 때 나는 그 구수한 '밥 짓는 냄새'나 좋아하던 아이였다. 
 
 그 흔한 라면도 인스턴트 햄버거도 좋아하지 않았다.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사 먹어본 건 중학생 때 모 유명한 브랜드의 새우버거 몇 번이 전부였을 정도다. 이렇듯 샌드위치를 포함한 모든 빵류의 음식은 나에게 '진정한 밥'이 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을 먹으면 기운도 안 나고 기분도 별로였다. 하물며 나는 '면'도 좋아하지 않았다. 짜장면보다는 짜장밥을 짬뽕보다는 짬뽕밥을 팔칼국수보다는 새알팥죽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밀가루 음식'이 내 몸에 맞지 않았던 것을 몸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 나에게 '식사'란 속을 편하게 해주는 반찬 몇 개와 밥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고기를 맘껏 먹으며 자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기에 고기반찬을 많이 먹어본 적도 없지만, 꼭 고기가 먹고 싶다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고기 음식은 내게 편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친숙하지는 더더욱 않았다.
 더구나 '스테이크'를 먹어본 기억은 어릴 적 아빠가 '경양식 레스토랑'에 데려가 함박 스테이크를 사줬을 때와 데이트랍시고 데려가면 먹었던 몇 번의 칼질이 전부였다. 친구들은 스테이크에 대한 로망이 있어 보였지만 나는 그것이 그렇게 맛있고 훌륭한 음식이라는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저 외할머니가 담근 된장에 쌈을 싸 먹거나 할머니가 주신 묵은지로 엄마가 해주던 김치찌개, 들깨가루를 넣고 무친 온갖 나물들을 먹는 것이 더 좋았고 실제로 그게 더 맛있었다. 엄마가 김치라도 담근 날에는 생김치를 쭉쭉 찢어 따뜻한 밥에 얹어 먹던 것. 그런 것들이 언제나 내게는 '최고의 밥상'이었다.  
 
 그랬다 나는, 거의 완벽하게 '촌입맛'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것도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드문 '시골할머니 입맛'에 특화된 미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엄마 젖을 뗀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가 먹어왔던 것들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하필 '고기만 먹는' 유럽의 일가족으로 들어오자마자 겪은 것은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 이란 말로는 부족한 쇼크 그 자체였다.
 

그들에게는 최고의 음식. 나에게는 괴로운 음식


 처음에는 식탁 위에 그나마 '크림에 버무린 시금치'라도 가끔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 먹던 대로' 밥상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턴가 식탁에서 채소가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어떡하지?' 밥 먹으러 와 밥상머리에 앉자마자 든 생각은 늘 그거였다.


 한술 더 떠 이 가족은 '날고기'를 좋아했다. 여기 사람들은 '일등급 소고기'는 날것으로 먹어야 제맛이라는 문화가 있었고, 우리처럼 소고기를 바싹 익혀먹는 것은 '저품질 소고기'로나 하는 '격 떨어지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날고기를 못 먹는다. 수란도 못 먹는 사람이다. '큰일 났다' 그 사실을 간파한 순간 나는 앞으로 시작될 험난한 항해를 예감했던 듯하다.


 그들의 식탁에 가장 자주 올라왔던 음식은, 우리의 '육회'와 같은 소고기 음식, 얇게 포를 뜬 역시 날고기, 송아지만 한 고깃덩어리를 그야말로 표피만 살짝 익힌 후 썰어먹는 스테이크. 그것들은 모두 '최상급 고기' 로만 만들 수 있는 '최고급 음식들' 이었다. 그렇게 자주 그들의 접시는 벽돌만한 고깃덩어리와 새빨간 피로 흥건하게 물들어있었고 나는 그 광경을 충격 속에 바라보곤 했었다. 열몇 명이 쭉 늘어 앉아서 그렇게 먹고 있을 땐 흡사 '드라큘라 가족' 같은 괴기한 모습이 연상되기까지 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어떤 채소도 없이 심지어 그 흔한 샐러드도 없이 '고기만 있는 식탁의 풍경'이었다. 


 김치와 나물이 가장 흔한 반찬이었던 내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황망함 그 자체였다. 나의 좌절감을 간파한 시어머니는 나를 위해 따로 '먹기 쉬운 스테이크'를 만들어주시곤 했는데, 레스토랑의 흔한 '어린이 메뉴'인 '스떼끄 아셰'가 그것이었다. 소고기 간 것을 스테이크처럼 납작하게 뭉쳐 만든 후 소금 후추를 뿌려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 음식. 맛은? 물론 아무 맛이 없다. 떡갈비 같은 풍요로운 고기맛에 길들여진 입맛 앞에서 이것은 그야말로 김빠진 콜라처럼만 여겨졌다.


 시댁에서의 식사는 그렇듯 매 끼니마다 새로운 와인이 병째로 식탁 위에 놓여있었고, 시아버님은 늘 와인을 따면서 이 와인이 얼마나 훌륭한 건지에 대한 설명을 잊지 않으셨다. 모두가 반짝이는 크리스털 잔에 와인을 따라 마시며 스테이크 한 점 + 와인 한 모금이라는 '우아한 식사'를 할 때 나만 한쪽에서 그 고기 옆에 비껴있는 다른 것들을 대충 주워 먹고 물을 마셨다.

 그들 입장에서도 나는 '매우 이질적인 성분'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을 이루는 성분인 '기품 있는 날고기'와도 그들의 영혼과 같은 '그윽한 포도주'와도 함께 갈 수 없는 사람이라니.


 요리에 나름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시어머니는, 내가 자신의 요리를 좋아하기는커녕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을 눈치채신 후 말씀은 안 하셨지만 상당히 언짢아 보이셨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최상의 재료로 최고의 음식을 내놓는데 번번이 그러고 앉아있으니 나만큼이나 불편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뼛속까지 시골 입맛'인 내게 여기 음식문화 아니 이 가족의 식단은 도저히 적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쌀밥에 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 칼칼한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서있는 현실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현실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조차 마음껏 먹을 수 없는 그런 곳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미식의 나라'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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