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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Jul 05. 2019

나와 너무 다른 프랑스.
밥 한 끼 먹기의 고난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9화


 밥을 먹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성취하는 순간'이자 '생존 의지'와 직결되는 것이기에 다른 어떤 것보다 존엄하게 다뤄져야 하는 신성한 행위이다.
 
 나는 음식 맛 좋기로 소문난 동네에서도 손맛이 특출 나게 좋은 엄마 밥을 먹으며 자랐기에 타고난 미각은 더욱 발달하여 '섬세한 미식가'의 결을 지니게 되었고 그랬기에 '맛있는 한 끼를 먹음'은 언제나 내게 커다란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하필 '할머니 촌입맛'을 지닌 내가 유럽으로 시집을 갔으니. 난관도 이런 난관이 없었다. 내가 사랑한 음식들은 죄다 '한국이 아니라면 맛볼 수 없다는' 너무도 큰 맹점을 지니고 있었기에.
 
 나에게 프랑스에서 밥을 먹는 것이 괴로웠던 이유는 이처럼, 나와는 상극인 음식들로만 식탁이 채워진다는 것과 식사 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끝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에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대화들이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그들의 대화가 지루하게 느껴진 가장 큰 이유는 대화 형태에 있었는데,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가 돌아가며 그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또다시 부연 설명을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핑퐁 게임하듯 '말'이라는 공을 끝도없이 주고받기.
 더구나 그것들은 죄다 하나의 주제를 가진 '토론 형식'에 가까운 대화의 진행이었지 편하게 밥 한 끼 먹으며 나누는 가벼운 대화들이 아니었다. 책 이야기, 작가 이야기, 그림 이야기, 전시회 이야기, 영화 이야기, 간간히 시사 이야기, 온갖 식물과 꽃 이야기...
 
 물론 그들의 대화 속에는 언제나 '유머'가 있다. 그러나 그 '유머 코드'마저 '매끈하게 학습된 어떤 것'이라는 느낌은 내게서 '진짜 웃음'을 끌어내지 못하는게 다반사였다.   

 또한 토론 문화가 발달한 나라인 만큼 프랑스인들은 '자기주장'을 피력하는데 거침이 없다. 아무리 내게 흥미롭지 않은 주제라 하여도 공통의 대화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그 자리와 상대에 대한 중요한 '미덕'이기에 '말없이 앉아있는 것'은 '함께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거나 '아무 생각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지는 토론의 장 속 네이티브들의 '동시다발적 언어난사' 속에서 살아남기란 언제나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함을 의미하기에, 내가 지금 밥을 먹고 있는 건지 백분토론에 와있는 건지 실로 애매할 때가 많았다.
 

끝나지 않는 식사 끝나지 않는 대화 


 물론 나는 오래도록 그들의 대화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그 소용돌이 안에 제 발로 들어가 함께 휩쓸리고 싶은 마음 또한 들지 않았었다. 진실로 나는. 밥을 먹으면서까지 그렇게 앉아있고 싶지 않았기에. 밥 먹는 자리라고 앉아있는 그 순간만은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머물고 싶었기에.

 
 더구나 내가 상대해야 할 것은 '스테이크와 버터가 떠다니는 식단'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먹는 즐거움을 상실한 채로 나의 어설픈 칼질이 행여 어긋나지는 않을까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고보니 '잊을 수 없는 칼질의 기억'이 하나 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던 그 여름, 어머님의 사촌분들을 포함한 시댁 가족 모두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 날 '오늘의 메뉴'가 스테이크 단일 메뉴라 나 역시 스테이크를 먹어야 했던 그 점심. 고기는 생각보다 질겼고 나의 서툰 칼질은 아무리 봐도 아슬아슬하기만 하던 그 날, 두어 번째 덩어리를 썰려는 순간 고기에서 튕겨져 나간 나의 칼은 고공점프를 하며 바닥으로 요란스럽게 내동댕이쳐졌었다. "쨍그랑!" 
 
 그 조용하고 엄숙한 레스토랑에서. 아. 그게 나이프가 아니라 젓가락이었다면 나도 '누구보다 우아하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또 하나 내게는 '잊지 못할 치즈껍질 사건'이 하나 있다. 시댁에서 온 가족이 다 함께 크리스마스 저녁을 먹는 날이었다. 촛대와 촛불과 꽃장식과 칠면조가 흐르던 그 저녁. 거한 저녁상이 끝나고 드디어 치즈를 먹을 순서. 어머님은 치즈 후에 먹을 달달한 후식을 장식하시느라 바쁘셨고 마침 식사를 마친 나는 '제가 가져오겠노라'며 접시를 가져왔건만. 
 
 접시를 식탁에 놓자마자 어머님은 순간 얼굴이 일그러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다 보는 앞 나는 내가 무언가를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각각 따로 쌓여있던 십여 가지의 다양한 치즈들의 봉지를 하나하나 떼어내고 '치즈만' 보기 좋게 담아와야 했건만 나도 모르게 그만 '봉지째로' 접시를 들고 온 것이었다. 나는 접시를 냉큼 주방으로 가져가 치즈 봉지들을 하나씩 다 떼어낸 후 웃으며 다시 가져다 놓았다. 
  

프랑스인들의 자랑이자 영혼의 음식. 치즈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 크리스마스 저녁에 치즈를 봉지째로 내어오다니. 얼마나 '무식해' 보였을까. 어머님도 당신들의 '전통과 예의'를 잘 모르고 있을 이방인 며느리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셨던 것이다.

 여기 남자를 만나 결혼해 살고 있는 한국분들은 보통 예술 관련 공부로 유학을 왔었거나 프랑스 관련 일을 하다가 만난 케이스가 많았다. 그만큼 부모님의 재력이 뒷받침되는 사람들이었거나 프랑스를 좋아하거나 동경하는 사람들 또는 잘 아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인지 이미 '스테이크'와 친숙하거나 적어도 여기 음식문화 또는 사회적 함의에 호의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분들은 "어디 어디에 '미셸랑 인증받은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대" 라며 그런 곳에서 밥을 먹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프랑스인들의 '우아한 식사'에도 마냥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프랑스가 좋아서 온 것도 아니었고 이 나라와 문화에 끌려서 온 사람도 아니었으며 더더욱 내 미각의 기준에서는 언제나, 고향의 '이름 없는 백반집들'이 내 마음의 미셸랑 인증 레스토랑이었다.
 

 이렇듯 '너무 다른 식사문화' 속에서 안타까운 나의 시간들은 애처로이 흘렀고 나는 살아남기 위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복잡한 걸 싫어하는 나는 어느새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그 시간들을 채우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으로 비쳐져도 상관없으니 '없는 듯 있기'. 그것은 나의 의지였다기보다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에 의해 자연스레 이르게된 결과였다.
 
 그래야 어지러운 상황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내 마음이 쉴 수 있었기에.




* 유럽 매거진을 엮어 브런치북으로 만들었습니다. 글 개수가 한정되었던 관계로 미처 이 글을 넣지 못했어요. 브런치북에서 다른 글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곧 다른 프랑스 이야기들로, 찾아뵙겠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france-ody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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