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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pr 24. 2020

내 프랑스 글들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지난 한 달여, 브런치에 프랑스 코로나에 관한 글들을 연재하였었다. 계획에도 없던 그 글들을 쓰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구독자 폭증도 있었다. 코로나 글들로만 700여 명의 새로운 구독자를 맞이하였으니 말이다.
 
 프랑스에서 코로나가 심각하게 터진 초반에 쓴 한 글은 공유만 2627회, 총조회수가 22만에 육박하는 글도 있다. (코로나로 드러난 프랑스 민낯, 개인주의 부메랑 https://brunch.co.kr/@namoosanchek/175)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그보다 더 감사했던 건 많은 분들이 내 글에 공감을 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내용을 공유하려 노력해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책 한 권을 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었다는 것은 글을 쓴 사람으로서 매우 감격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좋은 것의 이면에는 언제나 그 반대의 면 그리고 잘 보이지 않으나 그것들과 공생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목소리가 분명할 경우에’ 그것과 다른 칼라를 가진 생각들은 나의 목소리가 불편하다. 글이 더 많이 노출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의견을 주신다. 대부분 공감한다는 내용이 다수를 이루나 그중에는 선명하게 반대 의견을 주시는 분들, 마치 싸움을 걸듯 따지며 불쾌함을 토해내는 분들, 심할 때는 인신공격 수준으로 필자를 비난하고 몰아세우는 분들도 있다. 다양한 목소리로 인한 당연함이다.


 그러한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세세하게 반박해주신다. 할 말이 많다는 거다. 그렇기에 그분들이 ‘지적한 내용’을 나는 글을 쓴 사람으로서 다시 돌아보게 된다. 프랑스 코로나 글들을 쓰던 지난 한 달여간, 그러한 무수한 댓글들에 최대한 예를 갖추고 대응해드리기 위하여 노력했다. 똑같이 내 글을 읽고 의견을 준 분들의 ‘다른 목소리’를 글쓴이는 경청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파리, 프랑스, 유럽에 관한 '낭만적인 이미지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서울, 한국, 아시아에 관한 '낭만적인 이미지들'을 얼만큼이나 보았는가? 일본을 제외하고?


 그리고 며칠 전, 한 프랑스 코로나 글에 긴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 계셨다. 그분은 나의 글에 심기가 불편한 것을 넘어 아예 그분의 브런치 지면에 '필자와 같은 글(프랑스 비판)을 쓰거나 같은 논조로 얘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쾌감'을 글로 써 놓으셨다. '본인 입맛에 맛는 정보들만을 골라내어 주장하는'
‘일부 주관적인 생각과 비판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그 근원에는 선진국들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고. 그래서 오늘은 그에 대한 답을 해주려고 한다. 


 불만. 말그대로 '만족스럽지 못함'을 뜻한다. 나를 포함해서 프랑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말처럼 ‘프랑스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그 비판들이 고작 '만족스럽지 못해서' 불평이나 늘어놓는 투덜이 일기 같은 것이었을까. 왜 나는, 논란이 될 글들인 줄 뻔히 알면서 굳이 그러한 글들을 썼을까. 내 글에 공감을 해 준 많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내 글에 지지를 보내준 것일까.


 사실 나는, 프랑스 코로나 글들을 쓰기 전 3월 안에 끝내야 할 원고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꼭 끝내야 했었다. 하지만 결국 끝내지 못했다. 프랑스 코로나 글들이 더 급하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었다. 나라고 남들처럼 예쁘고 따뜻한 일상 이야기 안 하고 싶을까. 아무런 논란거리도 되지 않고 환영만 받을 수 있는 그런 글들 나도 쓰고 싶고 쓸 얘기가 넘쳐난다. 하지만 왜 난, 그 모든 것들을 제쳐 두고 프랑스 코로나 얘기들을 그토록 열심히 썼을까. 나의 주관적인 생각에 많은 사람들은 공감을 해주었던 걸까.


 나에게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주로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프랑스 사회에서 그들과 섞여 살기에, 내가 보지 못한 다른 것들을 보았을 수 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면들을 더 많이 생각했을 수 있다. 그것들을 나는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타인의 글과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여 그 글을 쓴 작가의 의도를 ‘불만과 편견’이라고 인식하는 글 앞에 나도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다. 


이 그림을 보면, 누구나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과연 진짜 그럴까? 이미지가 실체를 말해줄까? 


내가 프랑스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글을 쓰는 데는, 분명한 하나의 이유와 목적이 존재한다. 

유럽의 것이라면 무조건 추종하고 보는 우리들의 인식만큼 과연, 이들 문화와 철학이 정말로 우리의 것보다 더 옳고 고귀하고 훌륭한 것일까. 그 오래된 모두의 선망은 과연 실제와 일치하는 것일까. 이곳은 진정 이상적인 땅일까. 그 물음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이미 ‘프랑스 낯설게 보기’에 실린 <프랑스는 낭만적이지 않다>는 글에 포문을 밝힌 바 있다. 나는 그 커다란 물음표를 건네는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다. 


 비록 프랑스에서 12년째 밖에 살고 있지 않지만, 프랑스에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지만, 프랑스 남편과 프랑스 시댁과 프랑스 친구들과 프랑스 선생님과 프랑스 엄마들을 겪으면서 생활로서 삶으로서 체득한 경험들이 있다. 그것들이 어떻게 내게 이 땅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갖게 하였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나를 불행하게 하였고, 그것들이 어떻게 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는지를 내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았고 여전히 보고 있다. 그 아프고 외로운 시간들을 겪으며 나는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였고 치열한 가르침을 얻었다

그렇기에 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보았고 경험한 것들에 대하여. 그것들을 통해 내가 느끼고 발견했던 것들에 대하여. 


그것들이 내게 깨우쳐준 것들에 대하여 나는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할 뿐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나라, 그 많은 그림 중에서도 유독, 이 그림만이 그토록 훌륭하고 아름답고 위대한가? 그 기준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여전히 많은 이들은 침묵하고 싶은 듯 하다


 전에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매거진을 쓰면서 느꼈던 건, 전 세계의 많은 교민분들께서 생각보다 더 많이 내가 느낀 고독과 슬픔에 대해 공감한다는 것이었고, 그것들이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이 서방국가들에 내재한 오만함과 딱딱함과 무관하지 않음에 대해 깊이 공감해 주신다는 것이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이러한 우리만의 ‘소수의 공감대’는 이미 ‘다수의 공감대’로 영역을 옮겨갔다고 생각한다. 서방국가들이 지닌 한계는 이제 더 이상, 이국 땅에 외롭게 고립되어 있는 우리만의 답답함이나 말 못 할 고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 땅을 겪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프랑스와 유럽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고국에 있는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된 실체도 모른 채 주입되어 온 ‘유럽이라는 환상’에 대해, 어쩌면 처음으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럼으로써 실체 없는 환상을 올바로 볼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 그렇게 보아주면 감사하겠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 이미 나의 뜻을 헤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나의 글에 공감과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프랑스 낯설게 보기'의 단초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  https://brunch.co.kr/magazine/grandesolitude


https://brunch.co.kr/@namoosanchek/192


https://brunch.co.kr/@namoosanchek/5


https://brunch.co.kr/@namoosanchek/134


https://brunch.co.kr/brunchbook/france-odyssey


* '유럽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은 종료된 매거진입니다. 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프랑스 낯설게 보기' 매거진을 구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프랑스의 모든 '낯선 이야기'들은 거기에 쓰여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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