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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Jun 08. 2019

'한 점의 먼지'로 부유하던 그 여름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5화 


"여긴 어디일까.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새 삶을 살아보겠다고 기껏 한국을 도망쳐왔던 그 '긴 여름' 내내 머릿속은 늘 저 상태였다.
 
결혼이란 걸 해보겠다며 고향을 떠나 맞닥뜨린 '이질적인 삶'. 그들과 함께한 일상들 속에서 나는 현실감각을 상실한 듯 보였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포함한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렇게 '멍 때리던' 날들 속, 처음으로 이 나라의 '전형적인 가족 여름휴가'를 함께하게 되었다. 휴가지는 시댁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 시골에 가족별장이었다. 별장이라는 말마저 참 생소하였다. '이 사람들은 그런 것도 있구나' 그저 신기하였다.  
 
 정원이라기보다는 숲이나 공원에 가까웠던 그곳은 그야말로 자연 속에 놓여있는 꿈의 쉼터 그 자체였다. 초원처럼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아름답게 조경된 호수같은 연못은 풍경화에서나 보던 것이었다. 나무가 우거진 숲길 사이로 산책로가 놓여있었고 그 길은 바로 옆의 야생 숲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커다란 돌집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모든 공간은 풍성하고 여유로웠으며 한적한 시골에 어울리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꾸며진 집이었다. 침실과 욕실은 넉넉하였기에 대가족이 모두 모여도 불편함 없이 각자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큰 집을 본 적도 발을 들인 적도 없었다.
 
 시어머님은 이곳만의 특별한 식사를 위해 온갖 정성을 들이셨다. 바닷가 근처였기에 바다음식들이 식탁에 자주 올라왔다. 생선요리, 갑각류와 새우들, 바닷가재들, 삶은 소라와 생굴, 모시조개, 가끔은 싱싱한 청어를 숯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그 작은 청어를 칼과 포크로만 어찌 그렇게 다들 잘 발라먹던지. 물론 소스는 늘 그렇듯 버터와 소금 후추 레몬즙과 마요네즈가 전부였지만,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것들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반가웠다. 
 
 가족들 대부분은 시아버님과 함께 정원을 돌보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병든 나무들을 골라내고 가지치기를 하고 그렇게 모아둔 나무들을 가져와 땔감으로 쓰고 잡초를 뽑고 꽃들을 돌보고. 어느 날 그들은 나무판자들을 사 와 톱질을 하기 시작하더니 3일 정도 후에 정원 한쪽의 작은 개울가에 뚝딱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 다리를 건너면 노루가 더 쉽게 숲에서 넘어올 수 있다고 했다.
 
 정원을 직접 돌본다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나에게, 자기들 손으로 땀 흘리며 다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는 건 놀라운 걸 넘어 '부러운 광경'에 가까웠다. 저들은 저런 것들을 배우며 자랐고 일상에서 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애정이 있는 모든 것에 내 손 때 묻은 정성을 심을 수 있는 능력과 시간을 언제나 '갖고 있었던 사람들'. 
 
 식사를 한 뒤에는 거의 모두가 낮잠을 청하였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느지막이 일어나 아이들과 근처 바닷가를 가거나 정원 한쪽의 넓은 테라스 안락의자에 반쯤 누워 책을 읽곤 하였다. 아이들은 정원에서 뛰어놀거나 연못에서 물놀이를 하였고 가끔 할아버지와 함께 연못에서 낚시를 하였다. 그들의 일주일을 채운 건 이게 다였다. 심심하리만치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는 '진짜 휴가' 였기에. 
 
 그 집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그러나 일주일쯤 인터넷이 없는 건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돼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 '늘어진 시간의 여유'마저 이미 몸에 깊이 배어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모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휴가를 내어 일주일을 꽉 채워 머물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손주 손녀들까지 온 가족이 다 함께 오롯이 일주일을 보낼 수 있다니. 그것도 여러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도 아닌 가족들만의 공간에서. 모든 게 넘치고 풍족하기만 한 '그들의 시간'
 

땅이 없는 곳에 서있기. 한 점의 먼지가 되어 


 부러운 감정도 잠시, 점점 마음 한쪽이 무거워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여유로움 앞에 당장 내 가족들의 고된 일상이, 한국인들의 팍팍한 현실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늘도 동생은 꼭두새벽에 출근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겠지. 아픈 엄마는 동생 아이들을 돌봐주느라 또 입술이 퉁퉁 
불어 텄겠지. 상처 입은 아빠는 오늘도 괜한 엄마에게 화를 냈겠지. 엄마 아빠를 못 본 채로 잠드는 조카들은 또 할머니에게 심술을 부려댔겠지. 알고 있을까. 지구 반대편에 너무도 다른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곳엔 야근도 아무 걱정도 없으며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넘쳐난다는 것을. 


 일요일 점심이었다. 여느 때처럼 '화려한 식사'가 끝나고 시댁 가족들은 모두 커피를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부서지는 햇빛 아래에서 그들은 행복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저마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참으로 '안정돼' 보였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놓여있어 한없이 평화로운 얼굴. 그들의 얼굴에 '근심' 같은 것은 머물고 있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싶었다.


 동생들은 회사에 잘 다니고 있을까. 엄마는 아프던 곳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을까. 아빠는 좀 괜찮으실까. 지금 위로가 필요한 가족들을 뒤로하고 나는, 아무런 위로도 필요 없는 '이 풍족하고 낯선 사람들' 속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고모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오랫동안 불치병으로 고생하시던 고모였다. 동생은 장례식장에서 아빠가 어떤 모습을 하고 통곡을 하였는지도 전해주었다. 결혼식을 앞둔 나에게 일부러 바로 연락하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정원 한쪽 구석으로 가 주저앉았다. 끝도 없이 눈물이 나왔다.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힘든 가족들 곁에 있어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가족의 죽음'이라는 소식조차 뒤늦게 '통보' 받아야 하는 였다. 시댁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내겐 '너무 먼 행복'을 품고 있는 사람들.

 

 그랬다. 저들의 행복과 여유는 '그들의 것'이지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는 '내 가족'에 속해있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어딘가에 홀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곳은 세상과 '단절' 되어있는 곳이었고 나는 그 진공의 공간을 부유하는 '한 점의 먼지'였을 뿐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모두에게서 '이방인'인 채로.  


 나의 눈물조차 갈 곳이 없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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