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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Jun 29. 2020

'프랑스 병'이라 불린 매독,
유럽을 휩쓴 비겁한 변명


 중세 유럽 귀족들을 보면 하나같이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위대하다는 예술가들의 풍성한 은발 머리는 어딘지 고고한 기품까지 풍긴다. 그러나 우아하게 그려진 초상화와는 달리, 그 안에는 웃지 못할 비극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들의 아름다운 머리는 실은 대부분 'powdered wig'라 불리던, 매독으로 인한 탈모를 가리기 위한 가발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말이다.
 
 14세기 초 유럽은 대기근을 지나 흑사병이라는 참혹한 시기를 지났다. 인구의 반이 생명을 잃었고 사람들은 광기에 사로 잡혔으며 혐오는 삶을 잠식했다. 땅 위의 지옥에서 '신'은 설 자리를 잃었고 교회는 더 이상 구원의 중심이 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염세주의에 빠졌고 대중의 공포심은 표적을 필요로 하였다.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유대인과 나병환자, 집시, 여성들은 ‘마녀’로 몰려 증오의 희생양이 되었고 그 형태는 투사된 그림자 깊이만큼 잔혹하였다.
 
 그러나 대기근과 흑사병은 지구가 중세온난기에서 소빙하기로 전환된 초기에 발생한 사건들로 유럽뿐만이 아닌 거의 모든 대륙이 겪고 있던 것이었다. 실제 같은 시기를 겪던 고려 역시 기근과 역병으로 외세의 침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찬란한 문화의 종식을 바라봐야 했다. 
 

가발 쓰고 있는 중세 귀족들. 왼쪽부터 볼테르, 루이14세, 니콜라 버몽
귀부인들의 화려한 머리 장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사들의 다양한 가발(wig) 형태


 그러한 지구 대격변의 배경에는 당연히 '하늘의 변화'가 있었다. 실제 당시 목성 토성 화성이 일직선상에 놓인 '행성 배열'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하늘의 뜻'이 있었다면 그것은, 분노한 신이 아니라 행성 간의 간섭이라는 '우주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무지한 인간들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일어나는 일'에 대해, 증오의 대상을 만들어내고 자신들의 치욕으로부터 손쉽게 빠져나가고자 했다.


 대혼란의 끝에서 사람들은 가치 체계의 붕괴를 겪었다. 사후의 구원에 중심을 두며 금욕과 고행을 강요받던 삶에서 벗어나 현재를 즐기자’(Carpe Diem)는 가치가 급부상하였다. 죽음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자는 쾌락주의’가 만연하게 된다.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가치가 이동하면서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한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자유를 빙자한 성적인 방종은 유럽에 또 다른 비극을 몰고 왔다. 바로 매독이라는 무시무시한 질병이었다. 
 
 민중들의 '신'에 대한 배신감은 자연스럽게 반대편의 극단으로 사람들을 몰고 갔다. 오래도록 쌓여온 억압과 분노와 공포가 뒤범벅된 결과였다. 현재의 기쁨에 집중하자는 에피쿠로스의 '능동적 행복'에 관한 철학은, 대중의 혼탁한 열망과 만나 '방종과 방탕'이라는 무책임한 쾌락주의로 변질되었다. 매춘이 합법화되었던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신분과 남녀 구분 없이 퇴폐적일 만큼 성에 탐닉하였으며 매우 문란하였다. 성직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을 부정하고 오직 인간이 중심이라는 르네상스의 가치는 사실, 극단적 방종이라는 반작용으로 사람들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은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그러나 극단적인 방종은 방탕을 낳았고 문란한 성문화는 질병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참혹하였다. 16세기 전 유럽에 매독이 크게 확산된 이유에 이러한 사회적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혐오스러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탈모와 피부궤양, 마비,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유럽인들은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하였다. 매독이 유럽에 유입된 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후 귀국한 선원들이 '현지 여성들과 성관계 후' '아메리카 풍토병'을 얻어왔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때가 1493년이었다. 마침 유럽에 매독이 확산되던 해가 그 직후였기에 그 말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막상 매독이 퍼지게 된 계기는 프랑스 샤를 8세 군대의 이탈리아 침공 이후였다.  


 1494년부터 1498년까지 5년간 프랑스는 나폴리를 함락시키며 약탈과 학살을 일삼았는데 이때, 프랑스군에 의한 집단 강간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1차 침공 당시 프랑스군 규모는 33,000명으로 알려져있다. 전쟁은 1559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이유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매독을 ‘프랑스 병’이라고 불렀다
당시 유럽은 소총과 화학무기의 도입으로 군대 규모와 전쟁 양상이 커지면서 민간인 학살과 전쟁 성범죄가 만연하였다. 그렇기에 각 나라들은 매독을 상대편 나라의 이름을 붙여 불렀다. 물론 이탈리아인 프라카스토로가 발표한 '시필리스 또는 프랑스 병'이라는 시로 시필리스(Syphilis)가 매독의 정식 명칭이 되면서 '프랑스 병'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긴 했지만, 프랑스군의 성범죄가 대유행에 기여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들은 '매독부대'라 불렸으며 매독은 주로 성행위를 통해 감염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수한 전쟁이 있던 당시, 유럽 군대들의 성범죄에 의해 매독이 급속히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던 것이다. 

점령지의 여성들을 취하고 있는 정복자들의 모습. 이탈리아 전쟁을 일으킨 프랑스왕 샤를8세
콜럼버스가 도착했을 때 인디언들은 금은보화를 내주었고 유럽은 전염병균을 주었다. 이탈리아 전쟁 모습


 그렇기에 매독이 ‘아메리카의 선물’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인디언들이 매독 보균자였다면 그 참혹함으로 그들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스스로 멸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그 반대의 이유였다. 더구나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인들로부터 페스트와 콜레라와 천연두와 홍역 병균이 묻은 담요를 선물 받기 전까지는 그 어떤 전염병도 없던 청정 지역이었다. 오히려 콜럼버스 2차 항해 시 탑승한 1200명의 선원들이 인디언들을 잔인하게 살육하고 강간하였었다. 
 
 매독은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퍼져 유럽 입구의 15%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 후 매독은 동양에도 전파되었는데 마찬가지로 유럽인들에 의해서였다. 1498년 포르투갈인이 도착한 인도에 매독이 상륙했고, 1505년 포르투갈 선박이 입항한 중국에서 매독이 크게 창궐하였다. 1515년에는 조선에도 상륙했다고 전해진다. 영국인들은 매독을 ‘프랑스 수두’라 불렀으며 터키인들은 ‘기독교병’이라 불렀다. 당시 
끊임없는 전쟁을 일삼았던 프랑스군의 활약과 잔악함을 떠올리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프랑스왕 샤를 8세와 프랑수와 1세, 영국왕 헨리 8세를 비롯한 유럽의 왕들과 교황 알렉산더 6세, 에라스무스,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니체, 보들레르, 모파상, 고흐, 고갱, 마네,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은 매독의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세기말 파리 인구의 15%가 매독 환자였을 만큼 1939년 페니실린이 발견되기까지 매독은 400년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특히 매독은 말기에 신경을 공격하여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니체와 고흐의 자살, 히틀러의 광기가 이와 관련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벗은 몸이 특별하지 않고 성행위가 자유로웠던 르네상스 이후, 퇴폐적 쾌락주의가 뿌리내린 유럽
'데카당스'를 부르짖던 유럽인들의 절망과 가치 전복에는 쾌락주의가 함께 있었다. 왼쪽부터 니체, 히틀러, 보들레르


 실태가 이러하였으니 중세 귀족들에게 가발은 치욕을 감추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성적으로 타락해 있던 유럽 상류사회는 말할 것도 없었다. 17세부터 탈모가 진행된 프랑스왕 루이 14세는 48명의 가발 장인을 고용했으며, 역시 탈모였던 영국왕 헨리 2세도 가발 장인들의 고객이었다. 이로 인해 가발 패션은 유럽 상류사회에 더욱 유행하였다고 한다. 가발은 당시 골치였던 ‘머릿 이’에도 효과적이었는데 가발 장인들은 한 번씩 가발을 물에 삶아 이를 제거해주었기 때문이다. 
 
 미국 병리학 연구팀은 콜럼버스 이전인 800년 전의 이탈리아 사체에서 매독을 발견하였다. 석기시대 유골에서도 매독 흔적은 여러 차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매독의 유럽 유입 ‘정설’은 콜럼버스 항해로 귀결된다. 흑사병의 유럽 유입 또한 그들은 ‘동양 탓’을 했었다. 다운증후군의 의학명칭은 아예 ‘몽골’이라고 이름 붙였던 그들이었다. 무언가 기시감이 들지 않은가. 그렇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 인종차별이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똑같은 ‘선전’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유럽이 만든 프레임, 인종차별


* 참고 자료 :  <매독 > 데버러 헤이든 http://bitly.kr/TEXQeD26Ee,  <문명과 질병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  황상익 http://bitly.kr/cfrxl7qaXj, <100명의 특별한 유태인 이야기> 박재선 http://bitly.kr/clgtHto7Lq, <나는 미생물과 산다> 김용빈 http://bitly.kr/RaBWRxaA69, 중세 교황청 매독 이야기 http://bitly.kr/PqyU0WZJ2ge, 중세 전쟁 성범죄와 매독 연관성 기사 http://bitly.kr/WzDUfya9MBE, 매독 '병명' 유례 주경철 박사 http://bitly.kr/UNm1GyjQIKx, 흑사병과 행성 배열 연관성 <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https://url.kr/74qosb, 매독 나무위키 https://namu.wiki/w/매독, 이탈리아 전쟁 위키백과 http://bitly.kr/1VqYgLyKpJ9콜럼버스와 매독 그리고 가발 http://bitly.kr/NoF2ukbWA9o, 중세 가발 이야기 http://bitly.kr/vFaC3nj4QC, 미국 연구팀 800년 전 유럽 사체서 매독 발견 http://bitly.kr/9LEED8aT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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