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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pr 20. 2021

노래 하는 아이, 나의 기쁨 나의 노래

노래를 사랑했던 아이


 아치형으로 된 오래된 교회 건물 안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원형의 공간. 그 정적을 뚫고 몇 마디를 꺼내자 교회 안에는 우리 말소리가 스테레오처럼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해도 깊고 풍부한 소리가 온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런 공간에서는 노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시누이가 대뜸 나에게 노래 한 소절 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나는 손사래를 쳤으나 시누이는 얼른 하라는 손짓과 미소를 계속 지어 보였다. 시누이는 전부터 내 노래 듣는 것을 좋아했다. 늘 내 목소리와 성량이 좋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에게 짧게 한 소절이라도 해줄 것을 미소로 부탁하곤 했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떠오르는 노래가 없었지만, 며칠 전 오랜만에 들었던 자우림 노래가 생각났다. 꺾임 소리를 맛깔나게 내야 하는 노래. 도입부가 아름다운 그 노래 <Something good> 나는 시누이와 아주버니와 조카들 그리고 남편과 아이가 둥그렇게 모여있는 그 텅 빈 공간의 한가운데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적당히 편안한 목소리로.
 
"마치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날이야. 마치 어제까지 나쁜 꿈을 꾼 듯 말이야. 길고 슬픈 꿈에서 눈을 떠. 햇살 예쁜 아침을 맞은 듯. 마음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상처를 잊은 듯..."
 
고요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가 꽤 근사하게 들렸다. 아. 얼마 만에 불러보는 노래인지. 새삼 기억해내었다. 나는 노래를 부를 때 많이 행복했었다는 것을. 나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노래하는 순간 나는 정신이 고양되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내 몸'이라는 울림판을 통해 '내 영혼'이 투과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었다. 


혼과 육체가 하나의 통로에서 함께 섞이는 느낌. 모든 소리에는 고유의 파동이 있듯 노래를 하는 순간 나는, 내 목소리만이 지니는 고유의 파동 속에 내 혼이 실려 춤을 추는 느낌이 들었다.

 일요일마다 교회를 갔던 어린 시절, 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성가대 단원이었고 노래를 곧잘 했던 나는 늘 소프라노 파트를 맡았었다. 파트를 나누는 일종의 테스트를 할 때마다 주어진 미션곡은 언제나 '고향의 봄' 마지막 소절에서 매우 높은음을 안정적으로 내질러야만 깔끔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 떨리는 마음으로 선생님 앞에 섰대도 언제나 우렁차게 노래를 마무리하곤 했었다. 그렇게 나의 노래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매주 일요일마다 갈고닦은 나의 두음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여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 날이 왔었다. 바로 교회의 일 년 행사 중 가장 큰 성탄의 밤 행사 때 소프라노 대표로 차출되어 모든 교인들 앞에서 노래를 하게 된 것이었다. 시내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였던 우리 교회의 그 큰 성전 안에서 마이크를 앞에 두고 노래를 하던 순간의 떨림. 두근대던 교회 오빠들의 시선에도 모든 노래들을 잘 마쳤던 순간.
 
나는 정말로 내가 세상을 밝게 비추는 커다란 악기가 된 것만 같았다.  
 


 교회에서 뿐만이 아닌 학교에서도 가끔 모든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소풍날이었다. 나는 어릴 때 중국어를 배웠었다. 그 이력이 특이했던 나머지 선생님은 소풍날이면 어김없이 나에게 중국 노래를 시키곤 했다. 나는 친구들 앞에 나가 대만 선생님에게 배운 중국 민요들을 불렀고, 친구들은 눈을 똥그랗게 뜬 채 내 입에서 나오는 중국말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중학교를 끝으로 교회를 끊은 나는 더 이상 성가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더는 노래 할 일이 없었다. 그때 발견한 것이 노래방이었다. 나는 유명 가수들 모창도 곧잘 하곤 했는데 특히 이선희의 'J에게'를 정말 이선희님 목소리와 거의 똑같이 부르곤 해서 스스로도 놀라곤 했다.

고등학교 때 언젠가 친구의 '서울대생 사촌오빠'가 놀러 왔을 때에도 나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 날 그 오빠의 고백을 들은 적도 있었다. 설레는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기억이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한참이 지나 대학생 때 성악과 교수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 '라샤 끼오 삐앙가'로 시작하는 노래 <울게 하소서> 그 교수는 내게 왜 성악을 전공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노래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에게


처음으로 내가, 삶에서 무언가를 크게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이었다.

 

 오래도록 부르지 않았던 노래를 마지막으로 불렀던 때는 아이가 어렸을 때였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는 매일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좋다는 태교 노래들은 물론이고 잔잔한 자장가들과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온갖 서정적인 노래들을 틈나는 대로 불러주었다. 특히 맑고 고운 노랫말에 반해 내가 너무나 사랑하던 동요. <예쁜 아기곰>을 난 매일같이 아기에게 불러주었다.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 하얀 털 옷을 입은 예쁜 아기곰. 언제나 너를 바라보면서 작은 소망 얘기하지. 너의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 어떤 비밀이라도 말할 수 있어. 까만 작은 코에 입을 맞추면 수줍어 얼굴을 붉히는 예쁜 아기곰"
  
나중에 알았다. 나는 당시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준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것을.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과 행복감 속에서 나는 나의 기쁨을 노래로서 계속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랬기에 그때 부르던 노래들은 더욱 편안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는 것을. 오래전 성대에 이상이 생긴 후로 전처럼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더욱 선명하게 알고 있다. 나는 노래를 할 때 나를 만나는 기쁨 속에 있고 여전히 행복하다는 것을.
 
요즘엔 틈만 나면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렇게 내 몸으로 다시 내 혼을 내 행복을 연주하는 느낌.

봄이 왔으니, 노래를 부르기에도 행복을 부르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어제는 아주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BTS 찐팬 아미이신 소프라노 조수미 선생님께서 제 책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려주셨지 뭐에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벌어진 일에 너무 감격해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드렸는데 실시간으로 답을 주셨답니다.
"대박나세요!!" 조수미 선생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BTS 아미로서, 보라해 하트를 뿅뿅 서로 날리며 주고 받은 대화. 얼마나 행복했던지요!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인스타 주소 다시 링크 걸어드립니다. 인스타 친구해요 우리! 김송연(@bts_odyssey)


자우림 <Something good>


* 그림들 : 애니메이션 <바다의 노래> 셀키 소녀
   


<BTS 오디세이> 아미의 가슴으로 낳은 저의 이야기. 많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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