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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ug 14. 2019

프랑스에서 가장 '비천한 계급',
말 못하는 동양인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 나의 인종차별 경험 2편


 빵집 아줌마, 채소가게 아저씨, 동네 할머니, 그 중학생 놈들. 

 
 나에게 '인종차별'이란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해 준 그들과의 에피소드는 비단 나뿐만이 아닌, 그냥 이 땅에 사는 '프랑스 말을 잘 못하는 동양인' 또는 '서방국가에 사는 동양인'에게는 흔하게 일어나는 생활의 한 부분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당시 알고 지내던 한 한국인 친구는 유모차를 끌고 집 앞에 잠깐 나갈 때조차 늘 '잘 차려입고' 나갔었는데, 어느 날 내가 '뭘 그렇게까지 챙겨 입고 나가'라는 말에 이렇게 답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얘네들이 무시해요. 그나마 잘 차려입고 있으면 나아요"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동네를 다닐 땐 '막 입고' 나가고 심지어 선크림을 바르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나갈 때가 많지만, 그 친구의 그 말은 수긍이 되었었다. 
 
 프랑스는 아니지만 당시 스위스에서 생활하던, 그것도 고액 연봉을 받는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동생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을 때에도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제가 여기서 학술지 발표를 하는데 애들이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예요" "왜?" "제 영어 발음이 아라비아어 같다나요. 하하하..." "동네 빵집 갈 때마다 아저씨가 저만 오면 어찌나 티를 내며 기분 나빠하는지.. 근데 빵집이 거기밖에 없어서 계속 가요.. 하하하..." 
 
 그 동생은 하물며 키도 크고 수려한 외모를 소유한 명문대 출신 박사로 한국에서는 언제나 '환영받는 게' 익숙했던 데다 마음씨까지 고와 모두가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러나 그 '인종차별 장벽'은 외모나 스펙과도 인성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무서운 장벽'이었던 것이다. 그 친구가 겪고 있을 쓸쓸함이 무언지 너무 와 닿아서 참 속상했다. 
 
 그렇게 '소소한 에피소드'로 넘어갈 줄 알았던 나의 인종차별 경험 또한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프랑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종합병원에 갔었을 때의 일이다. 접수창구가 여러 개 있었고, 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창구에 늘어서있는 긴 줄을 기다려 담당 의사에게 받은 소견서등의 서류를 제출하고 접수해야만 했던 날. 여름이었고 사람이 매우 많았고 에어컨 시설이 안되어있는 병원 실내는 불쾌지수가 높았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매우 체구가 큰 흑인 여자가 창구에 앉아있었다. 나는 남편이 알려준 순서대로 서류를 제출하였다. 
 
 서류만 제출하면 다른 할 일이 없다고 전해 들었기에 나는 그 여자가 돌려줄 '접수증'만 기다리고 있었건만, 갑자기 그 여자가 내게 아주 긴 문장을 몇 개 휘리릭 묻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말은 불어 왕초급이던 내겐 너무 빠른 속도였다. "죄송한데 말이 너무 빨라서 잘 못 들었어요. 다시 한번 말해줄 수 있어요?" 그러자 그 여자는 다짜고짜 내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매우 긴 문장으로.
 

이 행성은 '오만한 너희들'의 것이 아니건만 

 
 순간 나는 너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멍청하게 서있었다. 엄청난 짜증이 섞인 걸 넘어 분노 수준의 감정을 실어 말을 하자 나는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거기 있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사람들 앞에서 내가 저 여자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지만, 그 당시 나는 그 '무식'에 '순간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만한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급하게나마 본능적으로 다른 서류를 내밀었다. 그제야 그 여자는 진정을 하였고 접수를 끝내었다. 내 뒤로도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었다. 얼떨떨함을 안고 일단 나는 그 자리를 나왔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간단한 한 두 마디도 내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를 그냥 나온 것이 실은 언어 능력이라기보다, 내가 이 나라 말을 잘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온 '주눅듬'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료가 끝나고 병원을 나서려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나에게 '무식함'을 퍼부은 여자에게 '그것은 잘못되었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가야만 할거 같았다. 그 여자는 다혈질일 것이고 날 더운 날 사람들 바글거리는데 나 같은 '말이 어눌한 동양인' 몇 명을 상대하며 이미 짜증이 나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나는 병원 한쪽에서 수첩을 꺼내 그 여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달달 외웠다. 내 입에서 유창하게 나올 때까지. 
 
 그리고 다시 접수창구에 가서 줄을 섰다. 그 여자가 앉아있는 줄로. 내가 다시 앞에 서있는 모습을 본 여자는 뜨끔했는지 이번엔 '저자세'가 되어 나를 멀뚱이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요?"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서요"  그 여자는 순간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저기로 오시죠"라며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사람들 앞에서 '쪽팔리기 싫다'는 거였다. "아뇨. 그냥 여기서 할게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아예 의자에서 일어나 자기가 가리켰던 구석자리로 가버렸다.
그 앞에 나있는 문을 열며 나를 들어오라고 하였다. 김이 새긴 했지만 그래도 할 말을 하고 가면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고 싶은 말 하세요" 그 여자가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되게 귀찮게 하네'라는 얼굴이었다. 나는 말을 시작했다. 그 여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내가 다시 온 이유는, 당신이 내게 한 행동이 부당했음을 얘기해주기 위해서예요. 당신이 스트레스 상태였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당신이 내게 한 행동은 정당하지 못했고 심지어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이었어요. 당신은 당신 행동에 대해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해요. 나는 당신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야겠습니다"
 
그 여자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고 계속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다시 말했다. "알겠어요. 그러니 나에게 사과하세요" 그 여자는 또다시 다른 말들을 늘어놓으며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알겠어요. 사과하세요" 그럼에도 그 여자의 변명 놀이는 그대로였다. 나는 다시 한번 목소리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나의 집요함에 여자가 지쳤다는 듯이 말했다

 "Sorry....."  불어로 하면 될걸 웬 영어? 심지어 그 여자는 갑자기 '공손'한 자세로 서있기까지 했다. 됐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나왔다. 마음이 상쾌했다. 그동안 당했던 다른 것들까지 전부다 보상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나 자신은 내가 지켜야지 누가 대신 지켜주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그것은, 
언제나 내가 스스로 당당해야지만 상대로부터 존중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기도 하였다. 



 



프랑스는 '정통' 제국주의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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