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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Oct 12. 2019

고통을 거꾸로 바라보다.
나를 보다.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34화


 나를 산산이 무너뜨렸던 고통의 뿌리가, 내가 분노한 '그들'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었다는 자각이 있은 후로,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명료한 앎들이 물밀듯이 나를 계속 찾아왔다. 
 
 나는 그동안 '의식이 수축된 상태'로 오래 지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세상'이 나를 소외시켰던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으로부터 나를 단절시켰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모두'를 내 의식에서 밀어냈었고, 그 모든 것과의 접속이 끊겼던 나는 자연스럽게 '의식이 쪼그라든 상태'로 살아왔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의식, 정신의 상태가 힘없이 '수축해있었기 때문에' 그 상태로 내가 존재했었기에, 나는 주눅 들어있었고 때론 당당하지 못했고 누구도 믿지 못했다는 것을.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스스로' 나를 그렇게 몰아갔고 만들었다는 것. 그들이 상황이 나를 작고 초라하고 기죽은 사람으로 만든 게 아니라는 것. 그렇게 나에게 '현상으로 나타난 모든 결과들'에는 책임이 없다는 것. 오로지 모든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그것은 내가,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의 땅'의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모두에게 '나의 모든 권리'를 넘겼었고, '존중받을 권리'까지 깡그리 다 넘겨주었던 것이었음을 알았다. 스스로의 주인 자리마저 박차고 나갔던 사람에게, 그렇게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먼저 다가와 손 내밀고 존중해줄 수 있는 세상이란 없다는 것을,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권력'은 실은 나에게 있었다. 모든 권력을 다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건 나의 '무책임함'이었다. 남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직 '나만 보아왔던 사람'이었기에. 나만이 '내가 발 디딘 땅에서 나와' 다른 곳을 서성였고, 결론적으로 남편을 보고 있지 않았었다.


나의 마음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제자리에 있었다


 남편 말이 맞았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남편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고, 시댁 가족들과 섞이려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상태에 머물러있었고 내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너희들'이 이 세상이 불편하다며 투정했고 불평했고 원망했다. 나는, 공중에 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가기 전 남편에게 편지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당신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내 상태가 그러했었다'는 말의 끝에서 나는 '당신이 지난 10년간 스님이랑 살았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처럼 무책임한 마음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결혼을 한 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와 약속마저 방기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만을 바라보고 있던 남편은,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는 아내가 아팠던 것이다. 그 마음이, 그 아픔이 계속 
나를 찌른 것이었다. 나를 좀 봐달라고... 나를 좀 알아달라고... 나 여기 있다고... 그 마음을 매정하게 외면했던 것은, 남편이 아닌 나였다.

 
 그랬다. 나는 그렇게 나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내가 이 땅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힘의 균형이 완벽히 깨져있어서'가 아니었다. 사실은 '힘의 균형이 너무 팽팽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고집, 나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으려는 움켜쥠. 너무 꽉 움켜쥐고 있었기에 그 힘이 너무 팽팽했기에 결국 손가락이 굽어지는 몸의 변화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나의 불행은 '그들 때문'이 아닌 '나의 마음'에 있었다. 나를 놓지 못한 대가였고 나를 비우지 못한 결과였다. 
 
 모든 나를 지우고 싶다며 왔었을 땐, 나의 자존심, 나의 아집, 나의 모든 생각까지 마땅히 다 지워지도록 나 자신을 놓아버렸어야 했다. 융화할 수 없는 땅에 나를 던졌을 땐, 기꺼이 나를 부수고 산화하여 그대로 가루가 되어 훨훨 사라졌어야 했다.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단 하나의 생의 의지 '생존'이라는 본능은 나를 낚아채어 쓰러지고 있는 집의 문지방을 꼭 움켜쥐게 하였었다. 손가락이 다 문드러지도록... 

결국 
그 손을 놓아야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나는 존재 그대로, 강하고 아름다웠다


 그 
나의 '고집'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모든 나의 불평은 원망은, '불편함'이 당연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름'이 당연함을 수용하지 못한 나의 미련함이었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 여겼었기에...
 
그러나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없었다. 그렇게 버티지 않았어도 나는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이 땅에서 그들의 법칙 속에서 또 다른 길을 찾고 또 다른 나를 만났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편지를 주었던 것은 실낱같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그때는 나를 이해해주겠지. 내 마음에 공감해주겠지. 하지만 '이해받고 싶다. 공감받고 
싶다'는 기대감 자체가 '의존증'이었다. 그 '기대하는 마음'이 나를 괴롭게 한 것이었다. 나는 남편으로부터 나의 그 마음을 놓았다.

 
 내가 얽매여있던 감정과 생각을 더 이상 그에게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스스로의 집착을 놓자 실로 '커다란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러자 나를 고통의 한 복판으로 데려갔었던 '그것이 그것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내 마음속에 한바탕 큰 소란이 일었다가 사라진 느낌과, 그렇게 중요했던 가치들이 더 이상 가치롭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편안함만이 가득했다. 모두가 '내가 지은 마음의 현상들'이니 내가 그 마음들과 생각들을 거두어들이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실로 나는 매우 가볍고 자유로운 느낌 속에 있었다. 어떤 가치로운 생각도 어떤 고귀한 염원도 어떤 진귀한 진리도 모두, 마음으로 지었다 사라지는 허상들이라는 것만이 명징하게 떠올랐다.

그 마음들에 힘을 주고 의미를 부여함으로 생겨난 감정들로 인해 우리는, 더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 메인 그림 포함 모든 그림 : 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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