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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Oct 14. 2019

집시여인이 가르쳐준 깨달음.
너는 나의 거울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35화


 나 역시,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그들의 고집' 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단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는 그들의 방식 그들의 전통 그것들을 지키려는 그들의 관성은, 괴로우면서도 끝끝내 내 것을 지키려던 '나의 관성'과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나를 단 하나도 포기하지 못했었고 그 나를 놓지 못해 스스로를 고문하기에 이르렀었기에. 모두를 증오하면서... 모든 것을 원망하면서...
 
 그 내 마음의 고집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무의식적 시선에도 그대로 닿아 있었다.
 
 아이 학교에 자신의 아이를 보내던 한 '집시여자'가 있었다. 이 곳에서의 집시란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매일 학교가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엄마들 사이에서 추래한 행색으로 혼자 아이를 기다리던 그 여인에게 그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고 모두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나도 그 여인 가까이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가장 비천한 그 얼굴에서 가장 빛나는 미소를 보았다. 아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오는 그 여인의 얼굴은 세상의 모든 온화함을 담은 부처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목격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너무나 충격적인 경험이었기에. 그 미소는, 냉소적이기만 한 지적인 백인들은 전혀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함으로부터 나온 것이었기에. 
 
 매일 마주치는 그 여인을 볼 때마다 내 안에서는 늘 '불편한 마음'이 일었었다. 그게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 날 난 알게 되었다. 내 무의식은 그 여인을 세상의 편견대로 '더럽다' '불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그녀를 한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고 '아래로 내려보았었다'는 것을. 그러한 나의 시선이 정당하지 못했었기에 내 마음이 그토록 불편했었다는 것을.
 

딱딱하고 부드러운 것. 따뜻하고 차가운 것. 내 안의 대극 간의 전쟁


 그것은 정확히 '오만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여인을 통해 바라본 내 마음에서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마음을 보았다. 내가 어머님이 그토록 싫고 거부감이 들었었던 건, 내가 집시 여인을 보며 '불결하다'고 여겼었던 마음과 같았다. 나만이 '고결하다'고 여겼던 그 마음.
 
 언제나 넘치는 물질에 둘러싸여 있는 어머님의 모습을 나는 '속물적인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마음은, 내 안에 있는 '대극의 요소'인 내 안의 더러움, 탐욕, 물욕 등을 의식에서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온 것이었다는 것을. 나는 내 안의 그림자인 그것들을 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머님'이라는 대상을 통해 계속 저항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것은 여기 사람들의 편견이나 무의식으로 내가 겪은 불쾌감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집시들에게 보냈던 눈길과 마음은, 내가 프랑스인들에게서 받은 '무시받는 느낌'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이 땅의 사람들, '그들의 오만'이라 여겼던 것은 '내가 가진 오만'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그들의 물질주의를 '속물근성'이라 여겼던 마음은, 그들이 나를 바라보던 제국주의적 시선과 내가 집시여인에게 갖고 있던 오만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물질적 우월감'으로 세상을 대하던 마음과, 내가 '정신적 우월감'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마음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똑같이 오만한 마음' 상대를 내려봄으로써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유약함이었다. 그렇게 허약한 땅 위에 서있던 우리는 '똑같이 가여운 마음'이었다. 그처럼 내 안의 가장 더럽고 추한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거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집시들이나 어머님을 통해 느꼈던 '불편함'은 결국 내가 통합해야 할 내 안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새가 자유로워지는 법은, 새장을 없애는 것이었다


 
 한창 고통의 끝으로 치닫고 있던 겨울, 어린 시절의 상처들까지 형상으로 되살아나 나를 괴롭힌 적이 있었다. 그것을 다시 목도한 순간 절망했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생각했던 나는, 여전히 '그 힘'에 압도당하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며 망연자실했기에. 

그 순간 생각했다. 각인된 트라우마는 반드시 복원되어야 하는 거라고. 사랑은 근본적인 복원 코드가 될 수 없다고. 사랑을 주는 것은 '진정제' 같은 것일 뿐 실제로 그것을 해내는 건 '스스로만' 할 수 있는 무엇이었기에. 

그 근본 코드를 입력해야 '백업'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순간으로 돌아가 '각인된 코드를 삭제하는 것'이라 여겼다. 나는 지금 그 '백업키'가 필요한 거라고. 하지만 내내 나는 그것을 찾지 못하였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 백업키의 암호를. 그것은, 
 
'나는 피해자다 
그들은 가해자다. 나는 상처 받았다 그들은 나를 상처 주었다. 나는 옳다 그들은 옳지 않다' 라는 이분법적인 생각, 
대극을 만들어내었고 그것에 힘을 실어주었던 그 생각을 삭제하는 것이었다. 나의 그 생각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모든 경험은 상황이 펼쳐지는 것일 뿐, 본질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는 없기에... 모든 것은 나의 생각이 만들어낸 그대로 인식되는 것이기에.

 이처럼, 나를 정말 힘들게 한 것은 언제나 '외부적인 요소'로 인한 사건들이 아닌 나와 '내면으로 연결되어있는 대상'인 가족들과의 갈등이었다. 그것은, 그들과의 갈등이 '그들의 문제'가 아닌 '나의 내부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명확한 반증이었다.
 
 나에게는 '결정권'이 있었다. 나는 언제든 모든 결정에 참여할 수 있었고 나의 권력을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하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에 만들어져 있던 그들을 향한 '내 감정들'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돌아서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들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들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내 마음이었다. 내 마음이 닫혀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모두를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아닌 '내가'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등졌었기에, 세상 또한 나에게 '마음'을 돌려줄 수 없었다. 그것은 명징한 세상의 이치였다.


 
 



* 메인 그림 포함 모든 그림 : René Magri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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