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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Oct 18. 2019

내 안의 상처 받은 아이.
고통의 씨앗을 품다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39화


 나에게 찾아온 명징한 '앎'들은 나의 인식을 바꾸고 나를 바꾸어 놓았다. 그럼에도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무엇이 여전히 내 안에 웅크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을 찾아내야만 했다.
 
 나의 고통스럽다는 느낌은, 남편으로부터 공감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했다는 감정, 어머님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이 사회로부터 거부당했다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들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감정을 받아들인 '나'만 있었을 뿐.
 
거부당했다는 느낌, 외면당했다는 느낌, 소외당했다는 느낌으로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야말로 그 자체로 '의존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것들'에 의해 작아지거나 흔들리는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두면 될 일이었기에. 나는 나대로 의연하면 될 일이었기에. 하지만 나는, 상대방의 감정을 '내 것'으로 가져와 나를 작게 만들고 나를 위축되게 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이 아닌 '내가'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 안에는 이미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감정이 '고통'으로 인식되도록 자리 잡혀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나를 '프로그래밍' 해놓았었다는 것을. 그것은 아주 오래전 내 어린 시절로부터 넘어온 거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남편의 조금만 차가운 눈빛에도 조금만 냉정한 표정에도 조금만 딱딱한 말투에도 그토록 민감했었고, 아이의 생생한 감정 표출에조차 그토록 예민했었다는 것을. 그것은 그들이 '나쁜 마음'을 먹었거나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이 그것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었다는 것을.
 
 모든 감정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흐르도록 두면 되었었다하지만 미련한 나는 그것을 '붙잡고' 나의 모든 분노를 그 안에 '투영' 했었다. 내 안의 그림자를 보고 싶지 않던 두려움 때문에...

그 두려움은, 그러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초라한 나'를 나약한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던 마음이었다. 
 
거부당했다는 마음, 이해받지 못했다는 마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마음... 

그 오래된 외로움과 슬픔이 '분노'가 되어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지금 '그 마음들'이 내 앞의 '상대를 통해' 다시 살아나 나를 집어삼켰던 것이었다. 

 

아픈 나무는 아픈 가지를 뻗었다. 제 스스로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그것은, 언제나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이 '그렇지 못한 나'를 밀어낸 결과였다. 나는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었고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으며 누구도 나의 외로움을 알아주지 않았다는... 내 심연의 뿌리를 흐르고 있는 낡은 분노의 감정이었다.

내가 안아야 할 것은, 나의 그 감정이었다. 어린 시절 혼자 서럽게 울고 있었던 그 '상처 받은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얘기해주는 것이었다. 네가 못나고 사랑받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 네가 혼자 남겨진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너는 너 자체로 가치롭고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거부당해서 아픈 마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초라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며 건강한 마음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너는 너대로 이대로 삶을 이어나가면 되는 거라고 속삭여주는 것이었다. 더 이상 움츠려있을 필요가 없는 거라고 세상으로 걸어 나오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 모든 두려움은 이제 없는 거라고 저 찬란한 햇살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나를, 꼬옥 안아주는 것이었다. 오래전 상처 받았었던... 그리하여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던 내 '내면의 아이'를. 
 
그 아이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수 있던 건 그 마음이 출발했던 곳, 나의 마음뿐이었기에.  
 

결국은 '나로부터' 온 것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분노하게 한 것은 '내 낡은 감정' 나도 모르게 나를 점령했고 내 살을 베어 물었던 나의 마음이었다.
 
 
내가 그 마음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면 찾아오지 않을 경험이었다. 내가 내 삶의 과제를 미루지 않고 완수했었다면 생겨나지 않을 시간이었다. 내 온 생을 삼켰고 불태웠고 내 뼈마디를 으스러뜨려놓은 것의 뿌리, 그것을 내가 지금껏 제대로 보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 순간 속으로 진정으로 들어가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것은 나를 다시 찾아온 것뿐이었다. 
 

이제 내 손을 잡아.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곳으로 가자


 모든 곳을 기웃거려보아도 찾을 수 없었던 내 고통의 씨앗, 그것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바로 '내 마음 안에' 있었다. '나만이' 찾을 수 있는 곳에.
  
 내가 찾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때 그것은 언제나 꼭꼭 숨겨져 있었고, 내가 찾고 싶은 마음을 내었을 때 그것은 가장 정직한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가장 큰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여지기 위하여.
그랬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건 '내 안의 상처 받은 아이'였다. 언제나 나를 가로막고 넘어 뜨려 왔던 아이, 사랑을 믿지 못하게 했던 아이, 세상으로부터 내 마음을 닫게 했던 아이. 어찌 보면 나의 생은 온통 '그 아이를 세상으로 나오게 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본다. 억만년 된 깊은 울음을 토해내며...
 
"네가 웅크리고 있던 곳은 너무나 어둡고 습한 곳이었구나... 그 추운 곳에 지금껏 혼자 두어서 미안해... 더 일찍 너를 꺼내 주지 못해 미안해... 더 빨리 너를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 너를 잊어버린 체하고 살아와서 미안해... 
너를 만나려고 나는 온 우주를 헤매 다녔어... 하지만 언제나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었지... 기어이 난 우주의 끝에 나를 내동댕이쳤고... 그 어둠의 끝에서 너를 발견한 거야... 가장 깊은 어둠 속... 네가 있던 곳은... 가장 큰 어둠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내가 내 심장을 찢으며 어둠 속으로 들어갔던 이유는... 너를 찾아내기 위함이었음을 알았어...
그러기 위해 나는 죽어야만 했음을... 너를 살리기 위해 나는 나를 버려야만 했음을... 
 
이제 우리 따뜻한 집으로 가자... 이제 너는 혼자가 아니니....
"




* 메인 그림 : Gustav Kli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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