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응모 후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설렘도 있지만 아무래도 지루함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걸 공공연하게 언급하는 것은 어쩐지 부정 탈 것만 같아 겸허하게 기다릴 뿐입니다. '너무 기대 많이 하는 걸 티 내면 브런치가 괘씸해서(?) 탈락시킬지도 몰라'라는 미신적 사고이지요. 이건 마치 맛있는 요리가 조리되는 걸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심정 같기도 합니다. 궁금해 죽겠지만, 요리가 완성되려면 뜸을 들여야 합니다. 이번 주는 마지막 뜸을 들이는 시점이지만 사실상 '결과 발표 주' 같이 느껴집니다. 다음 주 월요일이 아니라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이번 주 월요일이었기 때문에 금요일까지 이뤄지길 바라는 소원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브런치 관련이고 다른 하나는 주식 원금 회복 (...)입니다. 금전적인 이득이야 (결국 원점이지만) 주식이더 크겠지만, 된다면 당연히 브런치 쪽이 기분이 훨씬 더 좋을 겁니다. 그러나 금요일 장은 마감되었고 브런치 쪽도 보아하니 다른 작가님을 축하드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 같군요. 주식도 그렇고 브런치도 그렇고 때때로 찾아오는 허무함과 막막함을 극복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2
제가 브런치를 하는 것을 아는 지인이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소개에 '의사'라고 소개하는 건 공모전에 불리하지 않을까? 심사위원들이 볼 때 아무래도 '작가가 썼어요'라고 하고 쓴 글이 뭔가 더 잘 뽑힐 것 같은데? 거짓말로도 '사실 나 출간 작가예요'라고 쓰면 더 좋을 것 같고."
그래요. 지인이 대략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습니다. 전 미국의 유명한 두 라이벌 작가 스티븐 킹과 리처드 바크먼이 떠올랐습니다. 평론가들은 당시 인기 작가였던 스티븐 킹을 비판하며 리처드 바크먼을 극찬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리처드 바크먼이 스티븐 킹의 필명임을 알기 전까지는요. 이처럼 '평가'라는 건 어쩔 땐 참 우스울 정도로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티븐 킹은 리처드 바크먼일 때도 '스티븐 킹급'이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급'이 다름은 분명 존재하는 거겠죠. 게다가 누가 봐도 병원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의사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이상해 보입니다.
지인의 생각과 달리 전 의사를 하는 게 브런치를 하는데 불리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꼭 의사가 아니라 다른 어떤 직업이라도 일을 하는 것은 브런치 작가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일단 공모전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거든요. 지금도 예상되는 결과에 솔직히 마음이 상하는데, 다른 일조차 안 하고 있었다면 더 힘들었을 겁니다.
#3
제가 했던 '다른 일' 중에는 강연이 있었습니다. 온라인이지만 의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은 거예요. 그래도 발표 자료 정리하고 한다고 꽤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덕분에 공모전 결과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 수 있었지요. 언젠가는 작가로서도 강연할 일이 있을까요. 한편 강연은 저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를 제시하였습니다.
"강의 잘 들었어. 잘하던데? 혹시 내 유튜브에 출연할 생각 없어?"
선배 A였습니다. A는 구독자 □□만 명의 유튜버입니다. 전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숫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는 명함을 내밀 정도의 유명도 아니라 하더군요. □□만이 별로 안 유명한 거라니... 제 브런치 구독자 수가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유튜브는 대략 구독자 10만 명당 월수입 100만 정도로 예상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규모를 가늠할 때 그렇게 본다더군요. 사람을 돈으로 환산하는 건 별로지만 문득 제 브런치가 생각났습니다. 제 브런치는 유튜브 방식이면 400원 정도 되는군요. 미국의 저질 소설 잡지 '펄프 매거진'이 떠오르는 가격입니다. 아 정정합니다. 펄프 매거진보다 싸군요. 사실 그게 매력 포인트 아니겠습니까.
#4
집에 오는 길에 계속 A가 제안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그저 인사치레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솔직히 가슴 두근거리긴 했어요.
'내가 □□만 명이 구독하는 유튜브에 출연한다고?'
그런데 만약 정말 출연 제의였다고 해도 덥석 출연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그거 한번 나간다고 뚜렷한 이득은 없어 보이고, 내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대화가 꼬투리 잡혀 괜한 상처만 받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근래 일인데, 한 테크 유튜버가 구설에 오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튜버의 아내가 마치 전혀 관계없는 것 마냥 남편을 옹호하고, 경쟁 관계의 다른 유튜버들을 욕하는 댓글을 남긴 것이 들킨 것입니다. 사건 자체야 정치꾼들이 허구한 날 선동질하는 거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지만 어쨌든 잘못은 잘못이었지요. 제가 주목한 건 댓글 창이었습니다. 불구대천의 원수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하진 않을 욕과 조롱들, 그걸 또 여기저기 퍼 나르며 따로 박제하여 조롱하는 다른 유튜버들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인기와 시기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인기 유튜버'인 A는 잘 살고 계시는지 유튜브를 방문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많진 않지만, A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아니 □□만은 유명한 것도 아니라면서요... 보아하니 A가 뭔가 민감한 주제 (의료? 정치?)의 이야기를 했었나 봅니다.
제가 기억하는 A는 모험가였고, 그만큼 정신력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유튜브도 악플 몇 개 정도는 크게 상관하진 않는다는 듯 묵묵히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저는 A의 그 점이 항상 부러웠죠. 저에겐 없는 무언가이니까요. 그렇지만 오랜만에 화면으로 본 A는 어쩐지 좀 수척해 보였습니다. 어쩌면 A조차도 속으로는 병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튜브라는 '광장'에서요.
전... 해보기도 전에 겁부터 났습니다. 아무래도 저에겐 브런치 정도의 '느림'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인가 봅니다. 김칫국은 굉장히 잘 마시면서 말이에요.
#5
인기. 결국은 인기인 것 같습니다.
브런치를 보면 저 같은 '펄프 매거진' 작가도 있고, 고매한 순수 문학(?) 작가님도 계십니다. 장르로서가 아니고 작품과 작가를 대하는 태도가요. 어떤 작가님은 브런치가 작가와 작품을 너무 상업적으로 바라보는 걸 비판하십니다. 저도 비록 작가 비스름한 무언가이긴 해도 그분들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럼 왜 공모전에 도전하는 걸까요. 왜 출간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걸까요. 목적이 돈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일까요. 전 그것이 인기인 것 같습니다.
인기에 비하면 돈 따윈 부수적이고 훨씬 순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기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정치인과 연예인들이죠. 의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서 날고 긴다고 한들 '인기투표'로 뽑힌 정치인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작가 또한 인기와 연관이 큰 직업이지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직업군입니다.
또한, 인기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출간의 기회도 따라오게 됩니다. 저는 최근 A가 책도 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자가 출판 아닙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전 A에게 사실 브런치를 한다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차마 못 했습니다). 브런치의 ㅂ자도 꺼내기가 어쩐지 민망해져서요. A는 이것도 이루고 저것도 이뤘는데 나는 그동안 뭐 했나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참 우스운 일입니다. 인기에 따른 시기를 무척이나 두려워하면서도 부러운 건 또 부러우니 말입니다. 양가감정이 따로 없습니다. 괜히 브런치 앱을 켰다 껐다 하며 저의 브런치북을 어루만져 보았습니다. 10화이지만 99분짜리의 글 모음집. 저는 애정이 있는데, 심사위원들한테는 인정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애잔함을 느낍니다.
공모전에 당선되면 비로소 나도 뭔가 인정받은 느낌이 들 것 같고, 그제야 A나 직장 동료에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기... 그 브런치북 제가 쓴 거예요."라고요. 그러나 지금 봐선 아마 당분간은 또 비밀로 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6
아무튼 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새벽에 홀로 글을 쓰고 계실 어딘가의 작가님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