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엘런식 유머와 냉소가 돋보이는 <팔뤼드>
요컨대 지드는 내가 좋아하는 그런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거물급 작가라는 데 이견은 없다
26의 나이에 출간한 <팔뤼드>는 습지라는 뜻인데, 위대한 소설을 완성하려는 포부로 분기탱천한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소설의 주제와 주인공에 대해 기술한 부분을 주변 친구들과 문인들에게 부러 확인시켜 주면서
벌써 위대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처럼 혼자 급급해한다
마치 우디 엘런의 속물적 부르주아지 세계의 군상들이 때마침 나타나
냉소와 무관심 그리고 비아냥을 늘어놓으면서 소설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사람까지 마침내 등장하고, 화자는 이해받지 못한 자신의 작품을 웅변하기 시작하지만, 그의 여자 친구에게서조차 이해를 받지 못하는 그는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과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의구심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점점 소설의 문장들을 완성시켜 가는데…
매우 짧고도 유창한 대사와 특유의 위트가 살아있는 이 세계는 작가 지드가 실제 창작과정을 연기하고 있는 듯하며, 철저히 기획과 소재를 바로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얻었음을 투명하게 밝히는 듯하다
내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밝은 분위기 속에서 조급한 화자는 이미 주제만 완성된 소설의 이해받지 못하는 미덕을 강변하고, 주변 친구들은 소설 보단 소설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위로하는 척 진상을 노출시킨다
편평하고도 헛웃음 터지는 논증과 첨언이 점철되며 작가는 소설 내에서 이런 논평이 소설 속 작품 내부에 침투되는 과정 역시 유머러스하게 드러내 보인다
대단한 자신감이나 위트가 아니고서는 쓰이지 못했을 것 같은 이 소설은
뒤 이은 모든 종류의 자신을 향한 글쓰기를 선취했으며
그 모든 창작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기 풍자와 객관성의 냉소적인 참여 과정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요컨대 젊음의 파격과 심오한 주제를 유지하되 골계를 제대로 갖춘
영원히 젊은 종류의 현대성을 지닌 글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