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느냐고 묻거든 이 두 삶을 보게 하라
나이의 의미
삶이 어떤지를 보려거든 내 사랑의 크기를 세어 볼 일이다. 며칠 전 우연히 우리 시대의 영원한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만났다. 100세를 훌쩍 넘기신 나이에도 명확하고 또렷하신 모습과 말씀으로 삶의 좌표를 제시해 주신다.
"사랑의 크기가 삶의 크기입니다".
올해 103세 김형석 교수님의 명쾌한 답변이다. 듣고 싶었다.
'나이가 들은 건 아닐까'. '이 나이에 그래도 되나'. '처신머리 없진 않을까'.
떠올려보지 않았던 생각들이 하나씩 슬금슬금 올라오며 움츠려 들려고 하는 즈음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검열하고 통제하려 드는 요즈음에 우리 시대 철학자의 묵직한 한마디는 '깨갱'하게 한다. 나이를 핑계대려고 하는 수작에 불과했던 걸 자백하게 한다.
"나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가족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온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더 크게 사랑하고 더 크게 삶을 역어가 보자. 사랑의 크기를 키워보자.
"사회와 국가를 사랑하면 퇴직 후 죽을 때 까지도 사회에 국가에 오래도록 이름이 머무르더라".
맞다. 안병욱. 김형석이.. 그랬다
그들은 100세가 훌쩍 넘었어도, 아니 이 세상을 떠났어도 여전히 현직이다.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연세대 김형석 교수, 숭실대 안병욱 교수로 현직이다.
"퇴직 전까지는 물고기가 강물에서만 머물더니 퇴직 후엔 바디로 나가서 살게 되더라 "
"본격적인 일은 퇴직 후부터 더라. 더 넓은 바다에서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더라".
퇴직이 한 막을 내리는 듯 공포로 달려드는 여느 범부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오늘날 베이비부머들의 퇴직으로 퇴직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다들 모여 모여 거기서 거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생각들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베이비 부머들에게 김형석 교수님의 한마디는 뒤통수를 세게 한대 얻어맞고 말았다.
그럼 사랑의 그릇을 무엇으로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것은 유한한 물질보다 영원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나누기를 제시하신다.
아무리 많이 가진 자도, 아무리 큰 것을 가진 자도 나누지 않으면 그가 관 속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물질은 의미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정신적 가치는 영원히 남게 되고, 물질도 그가 나눈 것들만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최고의 노벨상 작품이라도 발간하지 않고 혼자만의 관속에 가지고 간다면 그걸로 끝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그 누구도 그 작품의 우수성을 알지 못하지 않느냐.
함께 나눌 때 영원히 남는 법이다.
사랑으로 나눌 때 더 커지는 것이다.
가수가 노래를 만들어 모두에게 나누었기 때문에 영원한 것인 것처럼 말이다".
아, 이 평범한 얘기가 이리도 잘 설득될 일인가. 103세 철학자의 말에는 그 어느 것 하나 유려함도 어려움도 포장도 없다. 너무도 편안하게 스며들게 한다. 김형석 교수님의 건강을 저 밑에서부터 깊이 빌어본다. 앞으로도 오래 그의 목소리로 삶의 푯대를 갖고 싶다.
어릴 적부터 동무로 함께 수학하고 고민하며 생각을 나누던 두 철학자가 북녘 고향을 바라보며 고향얘기를 영원히 나누고 싶어서였을까. 박수근의 미술 혼이 살아 숨 쉬는 양구에 철학자의 집을 지었다. 그들의 삶과 우정이 아름답다. 김형석 교수의 부드럽게 멀리 이어가는 힘찬 항해와 안병욱 교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힘 있는 발걸음이 지축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