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목표를 정해야 하는데..
달리기를 시작한 지 6개월째, 올림픽 공원에서 진행했던 올림픽 데이 런 2022 대회에서 10km를 목표했던 시간 안에 완주했다. 무릎 연골 연화증에 걷기도 힘들었던 내가 처음 1km도 제대로 못 뛰었는데 10km를 뛰다니..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다. 대회를 준비하기 2주 동안은 혼자 훈련했는데, 그 과정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대회는 아침에 시작하니 2주 동안은 이 루틴을 맞춰보려 출근하기 전 한 시간 일찍 일어나 광교 호수공원을 6km, 8km씩 뛰었다. 공복 상태에서 아침에 뛰는 건 생각보다 힘든 경험이었다. 나는 아침을 챙겨 먹는 타입이므로 더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모든 러너들이 그렇겠지만 운동화를 신고 나가기 전까지가 제일 힘들지만.
대회 시작 전, 300m 정도 가볍게 뛰면서 둘러보는데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보니 내가 이 무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냥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군중 속에서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10km A조가 먼저 출발해 나도 그 후미에 서서 출발 신호에 맞춰 대기하고 있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선두 그룹이 나가면서 나도 발을 굴리기 시작했다. 같이 참여했던 회사 대표님과 동료분은 인사하며 끝나고 보자며 웃으며 멀어져 갔다. 항상 같이 뛰던 동료들도 이제는 내 옆에 없다. 모두 같은 티셔츠를 입고 뛰었지만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순간 외로움이 엄습했지만 그냥 앞만 보고 가자. 나의 레이스에만 집중하자 이것만 생각했다.
처음엔 6분 50초 후반대로 뛰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뛰기 시작하면 초반부터 힘에 부쳐 멈춰 버리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욕심은 버리자고 생각했다. 멈추지 말고 걷지 말고 완주만 하자고. 하나둘씩 나를 추월해 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앞만 보았다. 가끔 응원해 주는 시민들과 서포터즈들과 눈인사를 했을 뿐.
3km, 5km에서 조금씩 속도를 올려갔다. 속도를 올릴 땐 급하면 안 된다. 천천히 조금씩 나조차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속도를 높여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1cm씩만’ 보폭을 늘이면 된다고 했던 스승님의 말을 떠올렸다. 속도가 조금씩 늘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올림픽 공원의 풍경도 어느 순간 보이지가 않는다.
처음 구간엔 나지막한 차도를 뛰다가 점점 공원에 들어서면서 흙길과 매끄럽지 않은 길이 나타났다. 7km 이상부터는 좁은 길에 자전거도 다니고 가끔 산책을 하는 시민들과도 길이 겹치면서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자전거를 못 타 실망한 어르신의 표정부터 데이트를 나왔는데 수많은 사람들에 놀란 커플의 대화까지 들릴 정도로 달리기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발도 어느 순간 무거워졌다.
8km쯤 도달했을 때 길안내를 해주는 서포터즈가 “2km 남았어요!! 파이팅!!” 라며 응원해주기에 나는 있는 힘을 조금 짜내어 손을 들어 응답했다. 그래 다시 집중해서 뛰어보자. 거의 다 왔다. 마음을 다 잡지만 발은 여전히 무겁고 호흡도 의식적으로 신경 써야 원래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1km 남짓 남았다는 나이키 어플의 알림 소리가 들렸다.
9km에 도달했을 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곧 끝난다는 안도감에 머릿속으로는 더 빨리 뛰어보자 생각했다. 그런데 다리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두 다리가 이렇게까지 달려준 것에 일단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더 속도를 내보려 두 팔을 더 앞으로 뻗어보았다. 200m 조금 남은 구간에선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팔과 보폭을 더 늘였다. 그렇게 뛰다 보니 어느새 Finish 라인 안에 내가 있었다.
결국 나는 내가 목표했던 1시간 10분 보다 5분 빠른 1시간 5분에 10km를 완주했다. 멈추지 않고 안전하게 완주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함을 느꼈다. 이 대회에 나가는 것을 응원해 주고 함께 뛰어준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첫 대회를 마치고 삼일 뒤 나는 오스트리아로 휴가를 가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앞으로 어떻게 달릴까 고민했다. 여행지에서도 아침마다 뛰었지만 사실 이 고민에 대한 답이 쉽게 내려지지는 않았다. 여행을 다니며 읽기 위해 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도 보았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여행을 다니며 완독 하지는 못 했으나 한국에 도착한 주말의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이 책까지도 다 읽었으나 나의 달리기 방향성은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했지만.. 가장 좋았던 구절을 소개하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 다다를 수도 있다.
달리기는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나는 단거리 러너보단 장거리 러너이고 싶다. 뚜렷한 목표와 즉각적인 도파민 성취보단 느려도 오래오래 이 행위를 유지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달리기인 것 같다. 아침에 눈 뜨면 아침밥을 먹듯이 그렇게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는 순간으로 계속 달려 나가 봐야겠다.
사실 오늘이 여행에서 돌아온 지 7일째인데 시차 적응을 이기지 못한 몸을 질질 끌고 일주일 동안 한 번 밖에 뛰지 못했다. 정말이지 이 달리기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기 까지가 제일 힘들다. 이번 달부턴 힘 빼고 다시 즐겁게 뛰어보는 걸로~
오스트리아에서도 짧게 꾸준히 뛰었다.
https://youtu.be/8M8yEKDim4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