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스며드는 찬바람에 옷장 냄새가 밴 외투를 꺼내 입는다. 어느새 녹음이 지고 노랗게 물든 가로수가 길을 안내한다.
가을이 온 탓일까? 나는 예민하고 짜증스럽다. 가족이 모여 와글와글한 저녁상에도 난 혼자 섬에 있는 것만 같다.
짜증. 짜증이란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아! 몰라. 짜증 나!"라는 말로 해결되지 않는 불편함과 답답함을 뭉뚱그려버린다.
신경 써서 새로 산 치약 부작용으로 밤낮없이 입안이 화끈거리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추가 메뉴를 시키는 동생도, 간만에 산 옷이 열흘째 '배송 준비 중'인 것도, 본인이 먹고 싶으면 그냥 사면 되는 것을 자꾸만 나에게 생굴이 먹고 싶지 않냐고 충청도 화법으로 묻는 엄마도, 새로 한 크라운이 교합이 맞지 않아 벌써 몇 번째 방문하는 치과도...
손톱 옆 거스러미처럼 불편하고 성가신 일들의 연속이었다.
자질구레한 성가심들이 텍사스 소 떼처럼 밀려와 나를 짓밟아대는 고통스러운 밤.
'이 세상에 없었으면 이것저것 다 겪지 않아도 될 텐데. 이 밤이 어서 지나가길...'
항불안제가 지난달부터 약 처방에서 빠졌는데 그것 때문일까?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인생 그래프를 나도 그려본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을까?
서른살 생일이 떠오른다.
그날은 조금 쌀쌀했었는데 멋을 부리겠다고 얇은 옷을 입었었다. 동료들에게 종일 선물과 축하를 받았다.
생일이라고 간만에 칼퇴를 해서 예약해 둔 레스토랑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 꽃과 선물을 들고 나타난 그의 따뜻한 눈빛을 기억한다. 많고 많은 날 중에, 40번이 넘는 생일 중에 유독 기억에 남은 날.
회사에서도 자리 잡아 힘들지만 재미있게 일하고 있었고,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와도 사이가 좋았다. 심지어 날씬하다 못해 말랐던 시절. 모든 시스템 이상 무.
마흔세살의 가을. 나는 왜 이리도 외롭고 처량한가? 왜 이리도 지긋지긋하고 답답하냔 말이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사람도, 으하하 웃으며 털어낼 술자리도 없다.
그냥 혼자 엉엉 울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