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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할아버지 May 08. 2022

홍 여사의 구약성서 필사를 마친 날

펜을 잡을 힘도 없던 홍 여사의 구약성서 필사를 마치던 날  그 대견함에

산길을 지나다

작은 연못 하나를 보았습니다

누군가 흘러가는 물이 아쉬운 듯

작은 웅덩이에 잡아 가둔 연못이었습니다

흐르던 물은 더 이상 흐를 수 없게 되고

자기만의 세상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물은 물이끼 가득한 짙은 녹색으로 그 빛을 잃었지만

자유롭게 흐를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늘빛 영롱하던 날 이 작은 웅덩이를 떠날 수 없었던 물은

대지의 녹음을 간직하고 또 하늘을 품었습니다


비록 몸은 병마에 시달려 예전의 당신 모습은 잃었지만

당신 스스로 또 다른 당신의 모습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펜조차 제대로 쥘 수 없던 그런 손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던 성서

그 많은 시간 뒤에 구약성서 필사를 끝내는 것을 보고

당신 스스로 그 병을 이겨 낼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고

환한 당신의 웃음이 나에겐 또 다른 삶의 이유가 되었답니다

아픔이 긴 만큼 애틋함도 더 깊어져만 갑니다.


올해 초 만해도 이런 시간들이 올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매일매일이 마지막 일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더더욱 당신이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당신이 해주는 밥을 먹으며 그 밥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당신의 말대로 올해 안에 신약 필사도 끝내고

당신의 병도 훌훌 털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그 해 여름은 무척 더디고 힘들게 지나갔다.

하지만 중간중간 나를 즐겁게 하는 일들도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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