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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할아버지 May 11. 2022

우리에게 남은 사랑해야 할 시간들

점점 흐려지는 기억의 조각들이 소중한 이유

또 하루를 보내며


그제는 태풍이 온종일 긴장시키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당신을 보며

행여 길이라도 잃을까 마음을 졸인다

시간이 그대로 멈추어 내일이 오지 않으면

또 새로운 내일을 기억하지도,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텐데

당신과 나에게 주어진
일상의 모든 일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쳐 왔는데

무탈했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지

오늘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어느덧 습관처럼 몸에 밴

공허한 가슴속은

당신의 미동에도 커다란 파문이 일고

세상은 수많은 착각 속에서 움직여지듯

나 또한 커다란 착각 속에 있는 것 같다

홍 여사 혼자 밖을 나가면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이 앞서고

불안함으로 가득하다

이런 모든 것이 혹시라도 길을 잊을까
기억을 잃어가는 당신을 위함이지만

당신을 과보호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우려 때문에

당신을 혼자 내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이런 것에 당신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어느덧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져

급한 일이 있어 외출하려는 나를 보면 
불안해하는 눈빛이 역력하고

쓸쓸히 손을 흔드는 당신의 두 눈엔

"안 나가면 안 돼요?"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아 발길이 무겁다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함을 주던 당신인데

이런 모습, 이런 생각 이건 정말 아닌데...

불필요한 곁가지를 하나 꺾어
땅에 꽂아놓은 토마토도
이렇게 예쁜 열매를 맺었는데

당신의 기억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은

받아 드릴 수도 없고
받아들여 지지도 않아

마음으로 흐르는 눈물이 보일까 봐

애써 헛웃음으로 나를 감춘다


지금 이 순간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런 홍 여사의 모습에도 싫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이유를 대자면 한도 없고 끝도 없다

하지만 항상 애처로움에 가슴이 아려오고

같이 나누지 못함이 미안할 뿐이다

언제나 말없이 내 곁을 지켜준 당신
항상 고맙다는 생각으로 가득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하느님께서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병간호할 사람도 만들어 두신 다더니

홍 여사 아플 것을 미리 아시고

나랑 짝을 지어 주신건 가??


팔 월도 다 지나 가는데

올 해는 꼭 나아지겠다는 홍 여사 말처럼

그대로 되었으면

아직도 해주어야 할 것이 많은데

홍 여사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병원에 갈 때마다
언제나 같은 홍 여사와 의사의 일문일답

"옛날처럼 피부가 하얗게 될까요?"

"당연히 그렇게 되지요!!"

그 말처럼 되었으면

먼 훗날까지

오래도록 옛 이야기 하면서 살았으면

홍 여사가 완쾌된 뒤

내가 먼저 세상에서 잊혀졌으면


2012년 8월 30일

우리에게 남은 시간들이 얼마나 될까 항상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주범이지만 오늘도 또 헛된 시간을 보낸다.

매일같이 쓰는 칫솔대의 색갈이 파란색과 연두색이라 구분을 못하는 홍 여사, 빨간색 칫솔이 있었으면 덜 헷갈렸을 수도 있었겠는데 마켓에 가서 빨강 노랑 칫솔을 사 와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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