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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Jun 08. 2022

잡초 같은 하루의 기분 좋은 다발

비가 오래 오는 동안 정원은 내 손을 떠나 자연이 돌보아왔다. 자연이 돌보니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여기저기 솟아난 잡초는 꽃까지 피웠고, 고르지 않은 잔디는 아름다운 물결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열심히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았던 때 보다 어쩌면 더 편안한 느낌의 아름다운 정원이 된 것 같다. 아예 군락을 이루어버린 잡초 무리가 멋있기도 하다.


화원에서 파는 우리가 찾는 꽃들 말고, 어디서도 팔지 않는 우리가 찾지 않는 꽃들은 작지만 아름답게 피어났다. 잡초도 꽃을 내고 있으니 '잡초'라고 부르기가 미안하다. 부지런히 정원 일을 했으면 만나지 못할 꽃들에 이런 만남을 준 오래 내린 비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비도 비거니와 잡초에도 꽃을 주신 신에게도 감사하다.


잡초 무리 속에 피어난 꽃들을 모아 다발을 만들어 보았다. 근사하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잔디 사이로 난 잡초를, 천덕꾸러기로만 생각했던 잡초들을, 띄엄띄엄 흩어져 있어 빛을 잃었던 잡초들을 하나하나 따서 내 손에 쥐고 보니 훌륭한 꽃다발이 되었다.


이 꽃다발을 쥐고 있으니 시골의 어느 들판에서 햇살 받으며 결혼하는 신부라도 된 것 같다. 흰 드레스만 입고 있었다면 딱인데, 애석하게도 츄리닝 차림의 내 모습이 현타를 날린다. 츄리닝 차림이면 어떤가, 내 머릿속에선 이미 꽃다발을 들고 웨딩마치를 하는 신부가 되어버렸다. 현실 츄리닝 아줌마가 잠깐이나마 상상 속 사치를 즐길 수 있게 한 꽃다발이 고맙다.


정원을 둘러본 잠깐의 시간이 하루 종일 나에게 꽃다발이 되었다.



잡초 같은 나의 하루에 꽃다발을 선물하고 싶다.


잡초 같은 하루에도 잡초 꽃은 피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으면 기분 좋은 다발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라며 내 손에 러브 바이트(love bite)를 하는 고양이의 살가운 입맞춤, 내 한국 이름을 정확하게도 불러주며 택배를 가져다주는 호주 택배 아저씨, 사춘기임에도 날 안아 주고 학교 가는 둘째 녀석의 뒷모습, 아무 말 없이 흘러가는 맑은 하늘의 잔 구름들, 친구가 보내온 한옥마을 사진들, 일부러 내게 다가와 안경이 참 예쁘다며 말을 건네고 지나가는 이름도 모르는 호주 아줌마, 매일 걷는 호숫가에서 만나는 털이 북실북실한 하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콧수염이 하얀 할아버지의 인사, 가라지 문이 열려 있다며 늦은 시간에도 문을 두드려 알려주는 이웃집 아줌마의 다정한 말투...


이 모든 것이 잡초 같은 나의 하루에 기분 좋은 다발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잡초였을 오늘 하루도 잡초 꽃을 하나하나 모아 기분 좋은 다발을 만들어 보니 꽃다발 같은 하루가 되었다. 내가 이 잡초 꽃들을 무심히 지나쳤다면 꽃다발 같은 하루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이 잡초 꽃들을 무심히 밟고 지나갔다면 나의 하루는 잡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잡초처럼 언제 뽑힐지 걱정하기도 하고, 잡초처럼 무관심 속에 홀대받기도 하고, 잡초처럼 존재감이 없는 나의 하루엔 잔디 속에 숨어 피는 잡초 꽃들이 존재했다. 스치고 지나갈 순간들을 모아 보니 보잘것 없던 내 하루도 기분 좋은 꽃다발이 되어 있다.


꽃집에서 파는 꽃다발처럼 꽃이 크거나 색이 화려하거나 오래가는 꽃다발은 아닐지라도, 잡초 같은 내 하루에 주어진 소박한 색을 입은 조그만 꽃들 같은 순간들이 내 손에 쥐어짐에 감사하다.   

소중한 하루의 꽃다발이 선물로 주어졌다.


오늘의 희열카드- 뒷마당 잡초 꽃 카드




<사진: 나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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